개혁개방 노선과의 결별, 시진핑의 정체성 정치
이변은 없었다. 중국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은 덩샤오핑 시기 이후 어렵게 유지해 온 관례와 관행을 깨고 총서기에 다시 선출되면서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집중영도체제’를 세웠다. 그동안 리커창 총리를 비롯해 비교적 개혁적이라고 평가받던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 그룹은 대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대신 총리로 내정된 리창 상하이시 당서기를 비롯해 시진핑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친위그룹인 이른바 시자쥔(習家軍)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했다. 덩사오핑 시기 당과 정부의 분리, 당내의 견제와 균형이란 정치개혁의 전통은 ‘당이 모든 것의 관건’이라는 한 마디에 추진 동력이 소진되었다. 이렇게 보면 시진핑 체제의 위기 처방전도 다양성과 유연성을 버리고 확실성과 단일대오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이번 당 대회에서 수정한 당장(黨章)에는 시진핑 개인에 대한 권위와 중국공산당의 지도방침인 ‘시진핑 사상’ 견지를 확립해야 한다는 이른바 ‘두 개의 확립’을 반영하면서 ‘인민의 영수’인 시진핑 시대를 구축했다. 과거 중국의 정책결정 과정은 비록 암상자와 같았지만, 적어도 예측 가능성이 있었던 후계구도도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향후 신 지도부 내에서 시진핑에 대한 충성과 업적경쟁을 둘러싸고 무성한 소문이 난무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시진핑 체제의 변화는 ‘백년대변국’을 과도하게 강조할 때부터 예견되었다. 즉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공급망 디커플링, 복잡한 지정학적 리스크, 코로나 팬데믹 등 전지구적 위기의식을 고양하면서 강한 리더십, 강한 중국, 권력집중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단결만이 힘이고 단결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당대회 기치도 역설적으로 위기를 동원해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또 다른 장치였다.
한편 이번 당대회에서 시진핑 3기 체제의 국가대전략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인 2049년 무렵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달성한다는 로드맵, 2035년까지 이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행동계획을 제시했다. 시진핑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향후 5년은 이를 추진하기 위한 관건적 시기라고 못 박았다. 화려한 수십 개의 정책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그 기본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한다. 당이 국가를 통치한다는 기조와 함께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와 시대화를 선언했다. 향후 중국공산당의 집권 방향은 마르크스주의 기본제도에 기댈 것이며 향후 서구와 서사와 담론경쟁을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시진핑 이데올로기의 ‘짜르’로 불리는 왕후닝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재보임하고 새로운 당내 이데올로그를 파격적으로 발탁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둘째, 중국식 현대화를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한다. 즉 모든 국가는 실정에 부합하는 고유한 현대화의 길이 있고, 중국도 더는 서구 현대화의 길을 추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인구 대국 현대화, 공동부유 실현,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공생, 평화발전은 ‘중국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셋째, 산업과 핵심기술의 자주화이다. 미국은 최근 발간한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로 다시 간주했고, 대중국 공세도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전개될 것임을 밝혔다. 특히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도 중국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대중국 공급망 디커플링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도 불가피하게 참호를 깊이 파고 최대한 버티면서 미래를 도모하는 지구전으로 대응할 것이다.
넷째, 중국식 제도 구축과 핵심이익의 보호이다. 중국은 힘의 한계 때문에 선제적으로 현상타파를 시도하지 않겠지만, 미국의 약한 고리를 찾아 미국의 대중전략을 무디게 하는 한편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과 다자주의 등 중국에 유리한 제도를 구축하고자 할 것이다. 다만 중국의 핵심이익 중에서도 핵심이익인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비타협적 태도를 보일 것이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외부세력의 대만독립 개입이 분명해진다면 헌법에 명시한 대로 ‘비평화적 수단’을 사용할 것도 분명히 했다.
새로 출범한 공산당 지도부는 우선 미국의 공급망 압박,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제상황, 정책 피로를 겪고 있는 코로나 봉쇄에 대한 해법을 찾아 신념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지만, 경제전문가가 눈에 띄지 않는 새 지도부의 면면과 정책 기조를 보면 단기적으로는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하는 방식 이외의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중국공산당이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들과 ‘가치의 거리’는 더욱 벌어졌고 그만큼 협력공간도 줄어들었다. 다만 자국의 주변을 회유하거나 설득을 통해 미국의 예봉을 피하고자 하겠지만, 주변국들이 대미 편승을 분명히 선택하거나 중국과 거리 두기를 구체화한다면 명시적 또는 묵시적 보복을 통해 국면 전환도 시도할 수도 있다.
시진핑 신 지도부를 보는 한국의 고민도 깊다. ‘연성화된 북한’처럼 보이는 낯선 사회주의 체제와의 마음의 거리는 넓어지고 있고, 한·중 간 전략적 소통도 긴밀하지도 않으며 상호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도 존재한다. 우리 정부의 ‘담대한 구상’도 중국의 동의를 쉽게 구하기 어렵고 중간재 수출 중심의 현재의 한·중 무역구조나 중국에 쏠린 한국의 반도체 투자 등의 현상은 중국의 산업과 기술 자주화 속도의 추이에 따라서는 힘겨운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반면 북·중관계는 기존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이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수한 친선관계’라고 강조하면서 시진핑 연임을 축하하는 고무된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중국의 축제 기간 휴지기에 들어간 북한의 제7차 핵실험도 북·중관계의 마지막 레드라인을 넘는 것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략적 명확성만으로 이 국면을 돌파하기는 상황이 엄중하다. 가치와 이익을 섞는 외교적 위선, 사안별로 복합방정식을 푸는 창의적 상상력, 대중정책을 위한 합의와 타협, 시진핑 시대를 함께 읽고 연구하는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한·중 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해 소통 부재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희옥(성균관대 교수, 성균중국연구소장)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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