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회용기 대여업체 곽재원 대표 "정부 보증제 시행 또 미룬 까닭에 일회용컵 2억개 감축 기회 놓쳐"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만 1년 동안 일회용 플라스틱컵 28억개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를 줄여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일회용 컵 감소 정책은 되려 후퇴하고 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시행까지 3주를 앞둔 지난 5월 6개월이 미뤄졌다. 2020년 6월 자원재활용법 개정 이후 2년간 준비를 해오고도 환경부는 또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9월에는 제주·세종 등 ‘선도 지역’에서만 우선 시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환경단체의 연대체인 한국환경회의는 “전국 시행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보증금제를 또 다시 유예하겠다는 결정”이라며 비판했다.
환경단체,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 등 시민단체 80여 개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지지하는 시민 1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와는 관련이 적어 보이는 ‘다회용 컵’ 업체 트래쉬버스터즈의 곽재원 대표도 있었다. 트래쉬버스터즈는 다회용기를 카페 등에 대여한 뒤 수거·세척까지 해주는 업체다.
곽 대표는 왜 이날 시위에서 함께 목소리를 낸 것일까.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만난 곽대표는 “일회용품 (감소)제도가 뒷걸음질 칠 때마다 일회용품을 다회용 컵으로 바꿀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때, 전국에서 시행됐다면 (지금보다 일회용 컵 사용을) 2억개는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곽 대표는 지난 4~5월 매년 일회용 컵을 약 2억개 정도 쓰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와 다회용 컵 사용을 논의했다. A업체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 비용과 다회용 컵 서비스 비용을 비교한 뒤 다회용 컵 사용에 무게를 둔 참이었다. 그러나 보증금제 시행이 유예되면서 결국 다회용 컵 사용은 없던 일이 됐다. 곽 대표는 “업체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유지 안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굳이 지금 상황에서 다회용 컵을 먼저 사용하는 ‘위험’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환경부가 카페·식당 내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단속 등을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유예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트래쉬버스터즈는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만 사용하는 카페 약 100여 곳과 다회용 컵 사용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점주들은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 사용이 금지되면, 다회용컵으로 아예 바꿀 계획이었다. 하지만 환경부가 이를 유예하면서 “지금대로 쓰기”로 했다.
곽 대표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일회용 컵에 보증금 300원이 붙으면 사람들은 컵이란 원래 ‘반환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면 수거율을 높여 일회용 컵이 더 많이 재활용될 수 있게 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이 업체에도, 환경에도 이익이 된다. 곽 대표는 “같은 보증금을 내고 다회용 컵을 이용하면서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면 고객들은 다회용 컵을 선택할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가 잘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은 2024년쯤일 것이라고 밝혔다. 곽 대표는 “환경부는 제주·세종에서라도 컵을 반납하는 사람들이 번거롭지 않도록 컵 반납 기계를 많이 설치해야 한다”며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가 전면 도입되고, 성공적이어야 더 나아가서 폐기물 자체를 줄이는 다회용컵 보증금 제도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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