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in포커스]브라만 출신 '인도계' 수낵, 英 첫 非백인 총리 유력

이서영 기자 2022. 10. 2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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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가정이지만 인도계 최상위 브라만 계급에 엘리트 코스 밟아
존슨 내각때 재무장관으로 고속승진 했지만 '배신자 '역할 하기도
리시 수낵 전 영국 재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선출이 유력한 총리 선거를 앞두고 런던의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이서영 기자 = 리시 수낵(42) 전 재무장관(chancellor)이 총리가 되면 영국 최초의 ‘비(非) 백인 총리’가 탄생한다. 현재로서는 당선이 유력하다.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지만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금수저 정치인'이다.

24일(현지시간) 마감되는 영국 보수당 대표 후보 등록 결과 수낵 전 장관이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다. 유일한 대항마는 먼저 출마를 선언한 페니 모돈트 보수당 원내대표지만 경선 출마에 필요한 의원수를 충족하지 못해 수낵 전 장관의 당선이 확실시 된다.

이에 따라 수낵 전 장관이 단일 후보가 되면 별도 절차 없이 바로 보수당 대표 겸 영국 총리로 취임하게 된다. 영국 역사상 최초의 비 백인 총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낵 전 장관은 1980년 5월 생, 42세로 1812년 로버트 젠킨슨 이후 210년 만에 최연소 총리가 될 전망이다.

수낵 전 장관은 인도계 이민자 가정이다. 그러나 ‘브리티시 드림’을 안고 영국에 안착한 이민자 가정이 아니다. 신분제도가 있는 인도에서도 수낵 가문은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 계급이다.

아버지는 영국 의대로 진학해 의사가 됐고 이민 1.5세인 어머니도 약사였다. 이 같은 환경 아래, 수낵 전 장관은 영국 최고 명문 사립 기숙학교인 윈체스터칼리지에 이어 옥스퍼드대 PPE(철학·정치·경제학),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를 거쳐 골드만 삭스에서 일했다.

수낵 전 장관의 아내도 상당한 재력가다. 아내 악샤타 무르티와는 미국 유학 시절 만났다. 악샤타는 ‘인도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억만장자 나라야나 무르티 인포시스 창업자의 딸이다. 악샤타가 가진 인포시스 지분만 6억9000만 파운드(약 1조930억 원)다.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수낵 부부의 총 자산은 7억3000만 파운드(약 1조1560억 원)에 달한다.

정치계에서도 이른바 ‘꽃길’만 걸었다. 2015년 하원의원에 당선해 정계에 입문한 뒤 테리사 메이 전 총리 내각을 거쳐 2020년 2월 정부 내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재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금융인의 길을 걷던 수낵이 ‘총리 유력 후보’에 오르기까지 존슨 전 총리의 파격 박탈이 결정적이었다. 정치계에 수낵 전 장관을 본격 입문하게 도운 것이 존슨 전 총리인 셈. 그러나 존슨 전 총리 입장에서 수낵 전 장관은 ‘배신자’이기도 하다.

존슨 전 총리가 최측근인 크리스토퍼 핀처 보수당 하원의원의 성 비위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원내부총무에 기용한 후 거짓말로 해명했다는 논란이 생기자 가장 먼저 사임했다. 이후 내각 핵심 인사들도 사표를 던지며 존슨 전 총리는 벼랑 끝에 몰렸고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수낵 전 장관은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각종 지원책을 발표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등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내각 경험이 길지 않았음에도 코로나 대응으로, 유급휴직 등 적극적 지원 정책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수낵 전 장관은 지난 경선에서도 원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당원 투표에서는 패했는데, 아직 밑바닥 민심을 얻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슨 전 총리에 대한 ‘배신자 이미지’가 악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낵 전 장관은 당시 경선에서 트러스 총리가 내건 대대적인 감세안에 대해 ‘이는 비합리적이며 영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트러스 총리는 결국 이 감세안의 역풍으로 영국 헌정 사상 최단임 총리라는 불명예를 쓰게 됐다.

한편 새 총리가 누가 되든, 첩첩산중이다. 야당들은 "보수당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며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보수당 출신 총리가 5번 바뀌는 등 보수당은 영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지 못했다.

최대 현안은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경제 문제다. 새 총리 취임 직후인 31일 재무부가 새로운 예산안을 내놓을 예정인데, 어떤 안을 내놓아도 여론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을 예정이다. 예산안에 증세, 공공지출 축소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면 보수당의 리더십이 또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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