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대신 장기칩으로 실험하는 시대, 곧 올 것"
인터뷰 І 장기칩 개발업체 에뮬레이트의 로나 이와트 박사
외국선 신약 후보물질 스크리닝에 활용 시작
간·결장·십이지장·뇌·신장 5가지가 개발 초점
약물 안전성 평가에도 곧 쓰일 것으로 기대
약물 개발이 활발해질수록 실험에 쓰이는 동물도 늘어난다. 2021년 국내에서 각종 실험에 쓰인 동물은 488만마리에 이른다. 10년 전인 2012년 183만4천마리와 비교하면 166%가 증가했다. 특히 고통을 가장 심하게 야기하는 실험 E등급(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또는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동반)에 이용된 동물 비율이 44%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외에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동물 대신 첨단 기술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기술로는 컴퓨터 기반의 독성 예측 또는 빅데이터 분석과 같은 기술, 사람 세포 기반의 오가노이드, 사람의 신체를 모사하는 장기칩 기술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장기칩(organ-on-a-chip 또는 organ-chips)이란 인체 내 복잡한 생리현상을 재현하고, 실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해석할 수 있도록 생체를 모사한 칩을 말한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일부 선진국에서는 신약 후보 물질 스크리닝을 위해 이미 활용을 시작했다. 국내 연구개발 사업 정보를 제공하는 국가과학기술정보지식서비스(NTIS)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2013년부터 장기칩(organ-on-a-chip) 연구 지원이 시작됐다. 이후 장기칩 연구 사업 비용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연구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미 국내 기업의 연구 기술로 개발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국제적인 표준방법으로 검증받은 동물대체시험법도 활용이 부진한 상황이다. 2020년에서야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 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발의된 상태다(대표발의 남인순 국회의원).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을 실제 활용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생명공학기업 에뮬레이트의 최고과학책임자(CSO)인 로나 이와트 박사와의 영상 인터뷰를 통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살펴봤다.
보스턴에 기반을 둔 에뮬레이트는 미세생체조직시스템(Microphysiological Systems), 즉 사람 세포를 기반으로 한 장기칩을 전문적으로 연구, 개발, 판매하고 있다.
장기칩 기술 연구가 넘어야 할 5가지 벽
―장기칩(Organ-on-a-chip) 기술이 요즘 동물실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만 비전문가들에게는 아직 낯선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기칩이란 무엇인가요?
“장기칩은 사람의 세포를 기반으로, 사람 장기의 구조, 기능 및 특성을 실제와 유사하게 구현한 환경을 칩으로 구현하여 세포를 연구하는 기술입니다. ‘사람의 장기와 유사한 칩을 만들어 세포의 반응을 연구하면 실제 사람 장기의 반응과 유사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즉 장기칩 연구를 통한 데이터가 사람에 적용되었을 때 정확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장기칩 같은 기술을 연구하는 데는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대표적으로 5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개발자, 연구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입니다. 미세유체(microfluidic) 플랫폼으로 연구를 진행할 때 시험 결과 데이터가 항상 균등하게 나온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연구 자체에 대한 신뢰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품질이 좋은 세포를 얻는 것입니다. 세포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장기칩을 이용한 데이터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좋은 품질의 사람 세포를 이용해야 좋은 모델이 나오고, 이를 이용해서 최대한 결과가 높은 확률로 예측될 수 있도록 시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는 시험 과정의 간소화입니다. 데이터를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장기칩 연구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한 설득이 중요합니다. 연구기관과 정부기관이 ‘다른 시험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장기칩을 선택하는가?’라고 물을 때 설득력 있는 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표준화 과정입니다. 현재 장기칩을 연구하는 여러 기관이 있는데, 기관마다 장기칩 크기, 모양 등이 다른 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표준화되어 있지 않은 다양한 장기칩 모델로 인해 해당 연구와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모델 표준화 과정이 진행되어야 연구가 가속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시에 표준화를 너무 서두르는 것은 전반적인 이노베이션 개발에 제약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럼 장기칩 도입을 위한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규제를 받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해외의 규제 상황은 어떤가요?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미국과 유럽연합에선 정부 기관이 표준화 과정을 방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정부 기관은 오히려 장기칩을 동물 모델을 대체하는 유력한 방법으로 환영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정부 기관에서 특히 관심을 두는 부분은 장기칩 기술이 최대한 사람에 대한 반응과 유사한 데이터 도출 가능성과 이 데이터의 신뢰성(reliability), 재현가능성(reproducibility)입니다. 규제 부처에서는 장기칩 기술을 이용한 안전성 데이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신약 후보가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가기 전 얼마나 사람에게 안전한지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유효성 평가가 굉장히 중요한 과정입니다. 신약후보 물질이 임상시험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장기칩 모델이 사람의 신체 반응과 연관성이 높을수록 규제기관의 확신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규제기관은 장기칩을 이용한 약품 유효성 평가를 하는 데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물실험을 대체한다면 동물 사용 수도 감소할 수 있겠지요.
젊은 연구자들 가세로 분위기 좋아져
―장기칩을 이용한 실험에서 안전성을 확인한 사례가 있는지요?
“현재 규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후보 약물은 보통 큰 쥐와 개를 대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동물실험을 진행해야 합니다. 에뮬레이트는 2019년 11월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큰 쥐, 개, 사람의 간(liver) 칩을 동시에 개발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각 동물종에 따라 특정 독성 반응을 보인다(species-specific toxicity)는 것을 증명했죠. 중요한 것은 사람에 적용할 경우 관련이 없는 독성물질도 밝힐 수 있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후보 약물의 독성 평가가 가능하고, 특히 사람 간(liver) 칩에서 밝혀지는 독성물질은 임상시험 단계로 넘어가기 전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규제 부처들은 이런 기술이 사람에 대한 예측성과 연관성이 높은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직까지 동물실험 대신 장기칩을 사용한 안전성 평가 사례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제약회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식이 곧 들려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에뮬레이트의 장기칩 상용화는 어느 정도까지 왔나요?
“에뮬레이트는 현재 여러 연구기관, 제약회사 및 미 식품의약국(FDA) 같은 정부 기관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미 개발된 장기칩을 이용해 트레이닝을 하기도 하고, 공동으로 개발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간, 결장(colon intestine), 십이지장(duodenum), 뇌, 신장 5가지 장기에 초점을 맞춰 개발하고 있습니다. 저희 협력업체들은 70가지 이상의 모델 또는 플랫폼 등을 개발한 상황입니다.
상용화는 ‘휴먼 에뮬레이트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2018년 시작했습니다. 칩, 미세유체(microfluidic) 장비, 소프트웨어 등을 상용화했습니다. 5개 주요 장기 세포 ‘바이오키트’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대신 시험을 진행해 주는 경우도 있죠. (에뮬레이트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아스트라제네카를 비롯해 로쉬, 머크, 얀센(J&J), 다케다 같은 제약회사, 미국 식품의약국과 로스앤젤레스 시더스사이나이병원과 파트너십을 맺고 여러 장기칩을 신약개발 또는 치료제 개발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동물실험을 지양하고자 하는 학계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한국에서 동물대체시험 연구와 활용이 활성화될 수 있으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동물 모델을 대체하는 분야에서 정말 여러 모멘텀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성장을 하면서 동물실험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고 기술도 굉장히 앞서 나가고 있고요.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연구기관과 정부기관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십 관계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야 변화가 가능합니다.
한국에서 동물대체시험을 촉진하는 법안(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 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이런 법 제도를 통해 연구자들은 동물모델이 아니라 최신 기술을 이용한 방법을 활용하게 되리라 봅니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법안에 대한 논의가 되고 있고, 유럽연합도 연구자들이 다르게 생각하는 관점을 가지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함께 사람의 신체를 보다 정확히 모사하는 기술을 이용해야 사람을 위한 바이오 신약 개발 분야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동물대체시험 촉진 법안을 마련하고, 정부에서는 ‘타깃(target)’이 있는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서 타깃은 ‘동물을 사용하지 않으며 사람에 대한 인체 모사가 가능한 방안에 대한 연구 투자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제약사들이 새로운 시험방법을 적극 사용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서보라미/한국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한국HSI) 정책국장 bseo@hs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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