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권 30년 사이클, 한국의 정점도 지나간다 [박건형의 홀리테크]

박건형 테크부장 2022. 10. 2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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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일본 배우지 않는다면 한국도 같은 길 간다, 반도체 전문가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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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 수출 상품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반도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찾기 힘듭니다. 반도체,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압도적입니다. 삼성전자는 대만 TSMC가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 확대를 목표로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사업 다각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반도체 강국 코리아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급격한 수요 위축을 겪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가 차세대 동력으로 키우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TSMC의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는 추세입니다. 올 3분기(7~9월)에는 대만 TSMC가 미국 인텔과 삼성전자를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분기 기준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매출 기준)으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은 양국 시장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갖고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반도체라는 특정 종목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한국 경제 입장에서도 분명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2021년 기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이런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를 기술 중심의 국제 관계로 풀어낸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저자인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서울대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공부했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연구본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반도체 신소재를 개발해온 공학자이자 첨단 산업 전략가입니다. 이른바 한·미·일·대만의 ‘칩4동맹’에 대한 한 유명 유튜브 채널 강연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그는 신간 ‘반도체 삼국지’에서 “과거 반도체 패권을 가졌던 일본의 흥망성쇠와 차세대 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전략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17일 성균관대에서 권석준 교수를 만났습니다.

반도체 삼국지를 펴낸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

◇”반도체 패권 30년 사이클, 한국은 이미 정점 지나고 있다”

-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리포트나 책은 이미 많습니다. 언론 기사와 외신도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죠. 이 책의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제에서 어떤 비중을 갖고 있는지, 국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책들이 기존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전략 중심으로 투자 관점을 제시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첨단 기술의 맥락을 읽고, 다양한 관점을 동원해 다음 세대에 진정한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블로그나 소셜미디어에 각 사안이 있을 때마다 정리하고 분석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했습니다.

- 왜 하필 반도체 삼국지인가요.

→ 반도체는 미국이 원조입니다(반도체의 개념 자체는 영국에서 나왔다). 지난 역사를 보면 반도체 무게중심은 1960년대부터 계속 서진(西進)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던 반도체 시장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그 다음에 한국과 대만이 현재의 패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 다음 가장 유력한 패권국은 중국입니다. 특히 이 반도체 패권은 대략 30년의 사이클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은 기존 사이클대로라면 이미 정점을 지나고 있는 셈이죠. 한국이 계속 반도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에 앞서 패권을 거머쥐었던 일본이 왜 몰락했는지를 알아야 그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대만과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최선두에 올랐거나 쫓아오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대비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이 세 국가를 삼국지라는 시각에서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엘피다의 반도체 제품

- 우선 일본이 반도체 패권을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부터 말씀해주시죠.

→ 아시다시피 일본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서 대기업이 생겨났고, 인적 자본과 기초과학 저변이 넓어졌습니다. 특히 1930년대부터 반도체의 기반이 되는 산업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고무, 기계, 화학, 엔진회사들이죠. 그러다 일본 정부가 오일쇼크를 겪으며 일본 산업을 한번 더 업그레이드한다는 명분으로 통상산업성 주도로 ‘초LSI기술연구조합’이라는 민관 연합체를 꾸려 반도체 산업 육성을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반도체 6공주로 불리는 회사들이 있었는데 바로 NEC(일본전기),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미쓰비시, 마쓰시타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글로벌 반도체 상위 열 개 기업 가운데 이 여섯 곳이 모두 포함돼 있었습니다. 정부 주도의 이런 개발 방식은 효과적이었습니다. 설계는 누가 하고, 웨이퍼 기술은 누가 개발하고 하는 식으로 철저히 분업을 하다 보니 중복 예산 투자를 막을 수 있었죠. 당시 일본 정부는 “글로벌 진출을 위해서는 기술 중복을 방지해 시간과 비용을 아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재, 공정 장비, 부품, 화학 약품 같은 중소기업이 대거 성장하면서 강력한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습니다.

- 정부 주도의 육성이 후발주자였던 일본이 미국을 제칠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건가요.

→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우리가 세계 최고이자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고 자신하는 사이 일본은 정부가 짠 전략대로 움직이면서 선행기술과 반도체 산업 클러스터에 엄청난 투자를 했습니다. 생산 수율과 품질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게 된 상황에서 엔저 호황으로 막대한 자금력까지 갖추면서 미국 AMD, 마이크론, 인텔 같은 기존 강자들을 상대로 치킨게임을 벌일 수 있게 된거죠. 당시 일본의 위세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세계 최초 낸드(NAND) 플래시메모리 반도체 기술 개발, 세계 최초의 킬로바이트급 디램(DRAM) 양산 공정 개발, 세계 최초의 CMOS 이미지센서 양산, 세계 최고 성능의 수퍼컴퓨터 개발이 모두 일본의 성과였습니다. 일본의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미국 언론들이 일본의 반도체 치킨게임을 ‘제2의 진주만 습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일본 반도체 산업의 쇠망이 미국의 견제 때문에 시작됐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입니다. 보복관세를 물리고, 쿼터제를 도입한 반도체 협정 말이죠.

→ 네. 미·일 반도체 협정과 미국의 무역 제재가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복과 제재가 시작된 이후에도 10년 이상 일본의 시장지배력은 유지됐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1980년대부터 팹리스(설계)와 파운드리 영역이 분리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죠. 1980년대 이전에는 반도체를 한 기업 또는 한 그룹에서 모두 하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설계-소재-부품-공정-후공정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수직계열화했습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과 인력, 시행착오가 필요한 생산 공정과 수율 관리를 포기하고 설계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정과 수율에만 집중하는 파운드리 업체도 생겼죠. 대표적인 게 대만 TSMC입니다. 처음에는 수직계열화가 분리 전략보다 나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설계와 제조가 이원화된 회사들이 각 분야에 특화된 기술을 더 집중적으로 개발하면서 강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IDM으로 불리는 종합반도체 회사를 추구하던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은 차츰 희석됐습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결국 한 세대가 지난 시점에는 시장점유율이 한자리수(7%)까지 떨어졌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반도체 시장에서 이름이 남아있던 기업은 소니 한 곳 정도인데, 그나마 CMOS 이미지센서 매출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무역협회 제공

◇수율에 집착한 엘피다 vs 전략적으로 움직인 삼성전자

- 일본 기업들이 모두 한 회사도 아니고 똑같은 사업만 하는 것도 아닌데, 동시에 시장지배력을 잃는 것도 쉽지 않은 일 같아 보입니다.

→ 물론 각 기업마다 다양한 의사결정 실패와 외부 요인이 있었습니다. 플래시메모리의 최강자였던 도시바의 몰락은 주력이었던 전력반도체 사업 수익성과 악화, 미국 원전 업체인 웨스팅하우스 인수로 인한 그룹의 재무 상태 악화가 결정적이었죠. 그런데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익성이 없는 사업은 유지하고, 수익성이 있는 사업은 매각하는 악수를 뒀고 실패했습니다. 일본의 IBM으로 불리던 NEC는 메모리 시장에서 1985~1991년 글로벌 1위, 1991~2001년에는 인텔에 이어 2위였습니다. 하지만 대만·한국 후발주자들과의 가격 경쟁, 수익성 악화, 선행 개발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면서 세계 시장에서 조금씩 밀려났습니다. 결국 정부의 의지에 따라 히타치와 합병했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서 이 회사 역시 실패했습니다. 후지쓰는 플래시메모리 시장에 선도적으로 뛰어들었지만 각 셀이 병렬형태로 연결된 ‘NOR형’ 플래시메모리를 주력으로 내세웠습니다. 초창기에는 AMD와의 제휴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져가기도 했지만 메모리 용량이 급격히 늘어나야 하는 시대가 되자 셀이 직렬형태로 연결된 ‘NAND형’ 플래시메모리가 대세가 됐습니다. NAND형 플래시메모리는 데이터를 읽는 속도가 NOR형에 비해 느리지만, 데이터를 덮어쓰거나 지울 때에는 훨씬 빠릅니다. 또 제조단가가 싸고 대용량 확장이 용이합니다. NAND형 메모리에 NOR형이 밀리는 과정에서 후지쓰는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라인 증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파나소닉도 비슷한 길을 겪었습니다.

- 책에서 엘피다와 삼성전자를 비교한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 엘피다는 NEC, 히타치, 미쓰비시의 핵심 인력과 기술이 합쳐진 회사였습니다. 2005년 기준으로 당시 최신 제품이던 512Mb DRAM에서 엘피다의 수율이 98%였는데 삼성전자의 수율은 80%를 갓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엘피다가 이 높은 수율을 만들어낸 공정 기술의 고도화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고 집착했다는 겁니다. 삼성은 굳이 엘피다의 98% 수율을 쫓아가는 대신 메모리 칩의 크기와 웨이퍼 한 장에 집적할 수 있는 칩의 숫자에 주목했습니다. 시장의 니즈를 읽은거죠. 삼성의 512Mb DRAM 칩 면적이 70제곱밀리미터였는데, 엘피다는 91제곱밀리미터였습니다. 결국 지름 300밀리미터 실리콘 웨이퍼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전자는 웨이퍼 한 장에서 1000개의 칩을 생산했는데, 엘피다는 714개를 생산한 셈입니다. 삼성은 수율 80%로 170개의 불량품을 제외하고도 830개를 만들었고, 엘피다는 98%의 수율로 불량품이 14개 뿐인데도 700개 밖에 못 만든 겁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미세 패터닝 공정에서 엘피다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웨이퍼 처리 공정의 속도 전체가 엘피다보다 두배 이상 빨랐습니다. 이런걸 종합하면 양사의 생산 용량 차는 2.4배에 이릅니다. 엘피다는 98% 공정 수율 달성을 위해 품질 검사에 과도한 투자를 했습니다. 엘피다의 DRAM 영업이익률은 3%, 삼성전자는 30%였습니다. 삼성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차세대 공정과 설계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면서 수율과 생산능력 모두에서 엘피다를 앞서는 것은 물론 글로벌 1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과도한 기술 자신감, 혁신에 밀린 수익률,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 일본 반도체 쇠락의 원인”

- 일본 반도체 기업 성장의 비결이 결국 쇠락의 원인이 됐다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 기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은 세계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력 저하를 가져왔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더 나은 기술을 만들 여력이 있다면 굳이 스펙을 낮추거나 수율을 희생해야할 이유를 찾지 않았습니다. 사업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데 말이죠. 기술의 발전 경로는 하나가 아닌데, 자체적으로 최고라고 자신하고 그 길만 파다보니 다른 경로가 등장하면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기술이 사장되면서 쇠락하는 식입니다. 일본 기업들은 시장을 뒤흔들 파괴적 혁신의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기술 지상주의가 판치다 보니 일본 회사들은 연구개발 인력만을 우대하고, 주요 의사 결정도 마케팅이나 양산 인력보다 기술개발 인력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인텔은 개발과 양산 부서를 동등하게 대했고, 의사결정에서도 양산 부서의 의견에 귀 기울여 원가와 시장 조사를 중시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아예 개발과 양산을 구분조차 하지 않습니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뛴다는 ‘무어의 법칙’에서 알 수 있듯이 반도체 산업의 시장 변화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 빠릅니다. 시장 변화에 귀 기울이지 않은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몰락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 기술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은 IT업계의 진리 아닌가요.

→ 일본 통신기업 NTT와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사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980년대 NTT는 25년간 고장 없이 작동할 수 있는 통신용 칩셋과 메모리반도체 납품을 기업들에 요구했습니다. 반도체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극한의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결국 NTT 기준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25년을 버티는 고내구성, 고신뢰도의 반도체칩을 만드는 건 길어야 5년 정도의 수명이 필요한 보통 반도체칩과는 완전히 접근이 다릅니다. 훨씬 더 많은 공정 비용을 지불해야 하죠. 문제는 통신 장비와 메모리 반도체 모두 기술 변화가 빠른 시장이라는 거죠. 기술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결국 스스로를 옭아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 국가 주도의 반도체 산업 육성도 결국 독이 됐다고 봤습니다.

→ 초창기에는 정부가 보호막이자 비용 절감과 정보 공유를 가능하게 해 준 든든한 보호막이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꼴이 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중흥하겠다며 대규모 프로젝트 여러 개를 기획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일본 정부는 기업들이 경영 효율화를 위해 결정한 분리나 정리를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을 막기에만 급급했던거죠.

- 2019년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 특히 반도체 산업 관련 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가 일본의 의도대로 됐다고 보시는지요.

→ 물론 여전히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분야도 있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2019년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가 손해가 있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 조치가 장기적으로는 제 살 깎아먹기에 불과하다는 경고가 나왔죠. 일본의 조치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대체재를 찾도록 부추긴 결과가 됐습니다. 실제로 대체재 찾기에 성공한 분야들이 생겨나면서 일본 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든 사례도 많습니다. 규제 품목에 포함되지 않은 분야에서도 대체재를 찾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결국 일본이 노렸던 소·부·장 제재는 자국 기업들의 신뢰도 저하와 수익률 급감으로 이어지는 자충수가 된 셈입니다.

◇”팹리스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 1위”

- 자 그럼 중국과 대만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중국의 반도체 상황은 어떻습니까.

→ 위에 언급했지만 대만은 2000년 들어 설계(팹리스)와 생산(파운드리)을 분업화하는 반도체 기업들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TSMC와 UMC라는 두 기업이 두 파운드리 기업이 대만을 사실상 세계 최대의 반도체 제조 공장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중국은 2010년대 들어서 중국 전역에 연평균 10개 이상의 반도체 생산기지를 신규로 건설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집중 투자의 결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매출은 2010년대 후반이 되자 2010년대 초반 대비 두 배 이상인 2400억 위안까지 늘어났습니다. 만약 중국 정부의 계획이 현실화되면 중국은 2020년대 후반에는 미국, 일본, 대만, 한국을 앞지르게 될 겁니다. 여기에 중국은 반도체 설계, 즉 팹리스 업체가 무수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1990년대 76개에 불과했던 중국 팹리스 회사는 현재 1400개가 넘고 2020년대에는 3000개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중국 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반도체 소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도체 생산과 설계 모두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거죠.

-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사실상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 성장세는 높지만,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여전히 턱없이 낮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16.7%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미국의 중국 기술 견제 기조로 실질적인 자급률(외국 투자와 기술 도입 없이 생산할 수 있는 칩의 비율)은 더 낮아질 수 있습니다. 2025년까지 70%의 자급률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실패할 것 같습니다. 현재 10나노 이하급 초미세 패터닝 공정 가능 파운드리 분야에서 중국은 여전히 양산 기준으로는 14나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 SMIC가 7나노 생산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시험 생산 수준이고 당장 수익 창출이 가능한 공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중국의 가장 큰 문제이자 고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투자, 눈먼 투자, 중복 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업계의 ‘수퍼 루키’로 꼽히던 파운드리 업체 우한훙신(HSMC)은 자금난으로 공정 건설을 중단했고, 사실 사업 자체가 정부의 보조금을 노린 사기극으로 드러났습니다.

중국 파운드리 1위 업체 SMIC 상하이 공장.

- 미국의 대중 제재가 중국 반도체 굴기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입니까.

→ 화웨이와 중국 1위 파운드리 업체 SMIC 제재를 예로 들어보죠. 화웨이는 자사 제품에 탑재하는 칩셋과 시스템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고 위탁 생산했는데 더 이상 해외의 파운드리 업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화웨이는 가장 크게 의존하던 TSMC 대신 자국 기업인 SMIC를 활용할 수 있는데, 문제는 SMIC까지 제재 대상이 된 겁니다. SMIC는 화웨이의 시스템반도체를 14나노 핀펫 공정으로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SMIC는 AMD, TSMC, 삼성전자 인력을 대거 영입하면서 기술 개발과 양산에 매진했는데 제재로 인해 삼성전자와 TSMC가 생산하고 있는 7나노 이하 공정 개발 가능성이 낮아졌습니다. 공정에 필요한 각종 광학계, EUV 같은 노광 장비 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충분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된다면 이런 부분까지 다 국산화할 수도 있긴 합니다만 단시간 내에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 미국은 왜 이렇게 중국의 첨단 산업 굴기를 견제하는 겁니까.

→ 간단히 얘기하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거스르며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이 더 강력해지기 전에 싹을 자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핵심 타깃인 화웨이 같은 경우 거대한 자국 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뒤 해외 시장에서 성공했습니다. 단순히 초저가 공세가 아니라 기술 수준도 높이 평가 받으며 2013년 통신장비 시장 1위가 됐죠. 그런데 화웨이의 성공에는 기술IP 침해에 대한 통제가 없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캐나다 노텔의 기술문서와 연구개발 보고서, 영업계획서, 특허출원문서 등이 해킹으로 대거 유출됐는데 실제로 화웨이 제품의 소스코드 일부에서 노텔 기술과 동일한 부분이 발견됐습니다. 미국 시스코도 화웨이의 해킹을 주장하며 소송전을 벌였습니다.

◇”TSMC와 SMIC 언제든 전략적 동반자로 돌아갈 수 있다”

- 실제 중국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 칩 설계 능력과 공정 기술을 보죠. CPU를 생산하는 중국 자오신의 최신 제품은 인텔 제품의 3분의 1 정도입니다. AMD의 두 세대 이전 제품과 비슷합니다. 소모 전력까지 고려하면 수준은 9분의 1 정도라고 볼 수 있으니 선진 업체 대비 1~2세대는 뒤져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발전 속도를 보면 상황이 다릅니다. 국유기업 YMTC의 경우 2021년 9월 128단 3차원 QLC NAND 플래시 생산을 시작했고 올해 5월에는 192단 샘플을 선보였습니다. 올해 6월을 기준으로 보면 중국 파운드리 1위 업체 SMIC와 대만 TSMC의 기술 격차는 적게 잡아도 3년 정도 됩니다. TSMC가 EUV 기반 3나노 공정 샘플 생산, SMIC는 7나노 공정 샘플 생산 수준입니다. 그나마 EUV가 없기 때문에 과거 기술인 DUV를 기반으로 했죠. 다만 TSMC와 SMIC는 전략적 공생관계입니다. 두 회사의 창업자들은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오랜 시간 같이 근무했습니다. 특히 TSMC 같은 기업은 업계 1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전 세대의 칩 주문을 SMIC 같은 후발 주자에 넘기면서 앞으로 나가는 방식으로 일합니다. 돈 되는 고객은 본인들이 계속 잡고 가면서, 파운드리 생태계의 뒷부분은 후발주자들에게 넘기는 거죠. 지금은 미국 제재 때문에 TSMC가 SMIC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미국 제재가 느슨해지는 순간 언제든 다시 원래 동반자 관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 삼성전자와 TSMC가 벌이고 있는 초극미세 패터닝 공정 경쟁에 중국이 뛰어들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 현재로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 계획 가운데 가장 현실화되기 어려운 기술적 장벽입니다. 현재 이 공정을 할 수 있는 EUV 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단시일내에 EUV 장비를 확보할 방법은 없는 셈이죠. 결국 중국은 2020년 8월 ‘난니완’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여기서 난니완은 1930~40년대 항일전쟁 당시 중국 공산당 팔로군이 끝까지 항전하며 게릴라전을 벌였던 중국 동부 산시성 난니완 협곡을 뜻합니다. 기술을 자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종합하면 중국의 반도체 기술굴기는 2020년대의 10년이 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 입장에서는 10나노의 벽을 2020년대 중반까지 뚫을 수 있느냐가 1차적인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럴 수 없으면 아예 다른 개념의 반도체를 도입하는 결단을 내릴 것인지가 2차적 관건이 될 겁니다.

대만 TSMC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 중국의 문제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책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 2019년 기준 삼성전자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3.2%로 7.3조원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11.4%를 화웨이에서 벌었습니다. 하이테크 산업 전체로 확대하면 삼성은 중국 매출 비중이 24%, SK하이닉스는 46.4%나 됩니다. 두 회사 뿐만 아니라 국내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들의 중국 매출 의존도도 높습니다. 2019년 기준 한국 반도체 관련 수출품의 57%가 중국과 홍콩이 수입했습니다. 중국이 제재를 받는 상황이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아주는 것이라며 한국에 득이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분사해야 TSMC와 경쟁 가능

-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은 삼성전자와 TSMC의 파운드리 경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TSMC는 고객이 주문한 칩에서 나타나는 잠재적 문제나 저성능 요소가 발견되면 그것에 대한 설루션을 적극적으로 제공합니다. 애플의 A13 칩 제조 공정에서 TSMC의 설루션이 빛을 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애플은 이를 계기로 아이폰, 아이패드는 물론 애플실리콘으로 불리는 자체 반도체 생산까지 인텔에서 TSMC로 바꿨습니다. 철저히 파운드리 부문에만 집중해 전세계 주요 팹리스 고객사들이 믿고 제품을 맡기는 ‘수퍼을’을 지향하는 회사죠. 파운드리에만 국한된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산업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메모리반도체 제조에서 오랜 기간 쌓은 미세 공정 원가 절감과 공정 노하우를 살린 성능 개선으로 삼성은 10년만에 파운드리 분야 2위가 됐습니다. 하지만 파운드리가 삼성전자와 독립된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경쟁 업체들의 신뢰를 충분히 확보하기는 어렵습니다. 삼성은 자사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리즈 갤럭시에 탑재되는 AP인 엑시노스 시리즈를 생산하는데 이는 애플의 A시리즈, 퀄컴의 스냅드래곤 시리즈와 시장이 겹칩니다.

-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분사해야 한다는 건가요.

→ 앞으로 더욱 수요가 고도화될 글로벌 반도체 위탁 제조 사업 모델을 고려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성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고객사와의 신뢰 구축을 위해 파운드리 사업의 인적, 물적 분사가 필요합니다. 이미 시스템LSI 물량 담당 부서와 외부 고객사 담당 부서가 완전히 분리되어 관리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객사에 대한 영업이 맞춤형으로 설정돼야 TSMC와 경쟁할 수 있습니다. 분사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고객사 다양성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죠. 삼성은 지난 7월 EUV를 활용한 3나노 공정 개발을 발표했는데, 그 첫 고객은 중국 암호화폐 채굴전용 칩 설계 업체였습니다. 최첨단 공정의 최대 수요자가 애플, 구글, 퀄컴, AMD,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IT업체가 아니라는 것은 삼성의 파운드리 생태계 다양성이 TSMC보다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고객사가 다양하고 생산할 수 있는 칩의 종류가 많아지는 것은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정원철 상무(왼쪽부터),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가 화성캠퍼스 3나노 양산라인에서 3나노 웨이퍼를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2022.6.30/뉴스1

- 그런데 삼성전자가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삼성전자의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의 기술력과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엑시노스 같은 자사 칩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파운드리가 삼성전자 안에 있으면서 재정과 인력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고, 그 덕분에 개발 일정을 앞당기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딜레마인 셈이죠.

- 삼성전자와 TSMC 모두 3나노 공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패터닝을 하기 힘든 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실제로 패턴을 보면 주욱 바르게 선이 그어진 것이 아니라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한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선폭이 좁아지면 결국 이 과정에서 전자가 손실되고 신호가 사라지거나 복원이 되지 않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걸 보완하려면 20단계였던 공정이 30단계가 되고 원가도 껑충 뜁니다. 물론 그 비용을 지출하고도 주문을 하는 업체들은 있지만, 공정의 효율성은 결국 파운드리 업체가 감당해야할 부분입니다. 삼성전자와 TSMC 모두 2나노, 1나노 로드맵을 계획대로 실현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 사이 메모리 사업부에서 전문가들을 파운드리로 보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는데, 과거 선폭 경쟁을 하던 때와는 트러블슈팅(문제해결) 방식이 완전히 달라 잘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업계에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지배력 유지 비결은 선행기술 투자 뿐”

- 한국이 메모리반도체 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선행기술 개발을 위해 집약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삼성이 구현한 CXL DRAM이나 SK가 구현하겠다고 한 수백단 3D NAND 플래시 메모리 공정 기술 같은 차세대 반도체 기술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전부터 연구개발에 뛰어든 덕분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또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기술표준 선점 경쟁에서의 우위를 확보해야 합니다. 일본처럼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기 위해섭니다. 정부가 산업 자체에 손을 대는 것보다는 이런 표준화 제정 과정에서의 외교적 지원이나 기초 재료/소자/공정 연구에 투자해야 합니다. 네덜란드 ASML이 EUV를 처음 연구하기 시작한게 1987년이었습니다. 시장에 나오기까지 27년이 걸렸습니다.

이재용(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반도체 장비업체 ASML를 방문,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반도체 인력 양성이 화두인데요.

→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딱 잘라서 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반도체학과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과 기술은 대개 과거의 기술입니다. 실제 현실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회사에 들어가면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산업에서 필요한 것은 미래 반도체와 공정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반도체학과를 만들고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저변을 넓히는 기초 인력을 양성하는 쪽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부터 제조까지, 차세대 개념 기술 탐색에서부터 공정 최적화까지, 이론의 수립부터 수율의 제고까지 광범한 범위를 포괄합니다. 특정한 기술만 가르친다고 내실화가 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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