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거래 재개로 검증 완료..연내 신규 물질 1상 진입"
신라젠의 주식 거래가 재개됐다. 2020년 5월 전(前)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로 중단된 지 2년 5개월 만이다. 신라젠은 지난 2년여 간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자금을 확보했다. 새로운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도 도입해 단일 후보물질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에서도 벗어났다.
거래정지 기간 절치부심한 신라젠은 ‘좋은 약’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 지난 19일 만난 김재경 신라젠 대표는 “거래 재개를 위해 개선계획 이행 내역에 대한 검토뿐 아니라, 향후 발생할 리스크에 대해서도 선제적인 검증을 모두 마쳤다”며 “이를 통해 그간의 우려를 200% 해소했다”고 강조했다.
신규 물질 도입으로 파이프라인 경쟁력 확보…연내 美 1상 진입
김 대표는 거래 재개 이후 신라젠이 할 일은 신약개발 바이오벤처의 핵심인 파이프라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라젠은 최근 스위스 제약사 바실리아로부터 유사분열관문억제제(MCI) ‘BAL0891’을 도입했다. 회사는 이번 기술이전으로 항암바이러스 중심의 파이프라인 구조에서 벗어나게 됐다. 간판 파이프라인이었던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펙사펙’ 외에 신규 기전의 후보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기술이전에 따라 신라젠은 바실리아에 계약금 1400만달러(약 200억원)를 지급했다. 향후 개발 단계별로 지급해야 할 단계별기술료(마일스톤) 3억2100만달러를 포함하면 전체 계약 규모는 3억3500만달러다.
김 대표는 “1상 마일스톤은 계약금에 포함돼 있고, 이후 마일스톤의 90% 이상을 상업화 직전인 신약허가신청(NDA) 단계에 지급하게 돼 있다”며 “당장의 연구개발 자금에 대한 우려는 없다”고 설명했다.
신라젠은 기술이전을 마무리하기 위해 내달 초 연구개발(R&D) 총괄 임원을 포함한 직원들을 스위스 현지에 보낼 예정이다. 연내 미국에서 임상 1상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초 이중인산화효소억제제…이달 말 전임상 결과 공개
일각에서는 BAL0891이 1상에도 진입하지 않은 초기물질이라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1상부터 진행하는 것이 더욱 좋을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개발 단계보다는 도입한 후보물질이 어떤 데이터를 갖고 있는 물질인지, 계약을 맺은 바실리아가 어떤 회사인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바실리아는 2020년 10월 로슈에서 분사했다. 항생제와 항진균제, 종양 관련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신라젠이 도입한 BAL0891은 바실리아가 2018년 키나제(인산화효소) 저해제를 개발하는 네덜란드의 바이오텍 NTRC 테라퓨틱스에서 도입한 물질이다.
바실리아는 지난해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BAL0891의 전이성 고형암 대상 임상 1상을 승인받았다. 하지만 연초 비(非)항암 파이프라인이 임상에 실패하면서 파이프라인의 정리에 들어갔다. 다섯 개의 항암 파이프라인을 외부에 팔고 있고, 이 중 하나가 BAL0891이다.
김 대표는 “신규 파이프라인 도입을 위해 총 82개 물질을 검토했다”며 “기술이전에 의지가 있던 바실리아와의 조건이 잘 맞으면서 빠르게 기술이전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BAL0891은 두 가지 인산화효소를 저해하는 저분자 화합물이다. 인산화효소는 신호전달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BAL0891이 표적하는 건 종양의 유발과 성장에 관여하는 ‘트레오닌 티로신 키나제(TTK)’와 ‘폴로-유사 키나제1(PLK1)’이다.
TTK는 비정상 분열(mitotic override)에 관여하고, PLK1은 세포 분열이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과정(mitotic block)에 개입하는 효소다. 이들의 활동을 저해함으로써 암세포의 비정상 분열을 유도하는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분열된 암세포는 결국 사멸한다.
김 대표는 “이들 두 효소를 각각 표적하는 항암제는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상업화된 사례는 없다”며 “이 둘을 동시에 표적하는 후보물질은 BAL0891이 세계 최초(first in class)”라고 말했다.
오는 26~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2022 EORTC-NCI-AACR’ 심포지엄에서는 BAL0891의 전임상 효능 연구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신라젠은 BAL0891의 1상은 단독요법으로 개발하고, 향후 화학요법과의 병용을 고려하고 있다. 향후에는 기술이전을 통해 수익을 낸다는 구상이다.
펙사벡·SJ-600 등 기술이전 추진
신라젠은 현재 미국 리제네론과 신장암을 대상으로 펙사벡과 ‘리브타요’의 병용 2상도 진행하고 있다. 연말 환자 투약을 마치고 내년에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새로운 항암바이러스 플랫폼 ‘SJ-600’에 대해서도 기대하고 있다. SJ-600은 정맥 투여가 가능한 항암바이러스를 만드는 기술이다. 조만간 논문을 통해 전임상 결과를 공개하고, 내년 1상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신라젠은 최근 서울대 의대에서 수행한 SJ-600 후보군의 항암효능 평가를 바탕으로 국내 및 국제(PCT) 특허를 출원했다. 현재 등록 심사를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항암바이러스 계열의 약물은 개발 초기 단계에서 기술이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후속 실험을 마치는 대로 기술이전 논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SJ-600은 플랫폼 기술이기 때문에 파이프라인을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추가적으로 파이프라인을 도입할 계획은 없다”며 “우선 펙사벡 BAL0891 SJ-600의 연구개발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내고, 이들에게서 일정 성과를 확인한 후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도입해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예나 기자 ye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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