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 칼럼] 국회의 '셀프개혁'이 가능하려면

기자 2022. 10.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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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가 아무리 어지럽고 정쟁에 휩싸여 있지만, 정치의 시계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지난 11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2024년에 열릴 총선을 향한 험준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선거구 획정은 고사하고 어떠한 법안의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험악한 여야관계를 생각하면,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우리 공직선거법은 중앙선관위에 해당 위원회의 설치를 선거일 18개월 이전에 하도록 규정하였으니, 우리 정치와 선거에서 그나마 법이 지켜진 사례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더 중요하게, 차기 총선을 준비하는 어느 정치 신인은 자신이 출마할 선거구가 어느 동네와 마을을 포함하고 있는지 하루라도 빨리 알고 싶을 것이다. 실제 우리 선거법은 선거구 획정을 선거 13개월 전(내년 3월)까지 마무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그러나 그 일정이 그렇게 수월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선거구 획정은 공직선거법의 한 부분이며, 여타 선거제도의 요소들, 예컨대 지역구 의원정수가 정해지기 전에 선거구 획정을 논의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21대 총선을 치렀던 현행 공직선거법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이상을 한국의 현실에 접목하려다 오히려 위성정당을 대거 출현시켰던 그 공직선거법이다. 정치학 교과서에 실려야 할 정도로 복잡하고 불필요한 비례대표 배분 공식을 3개씩이나 본문에 포함시키고, 이를 부칙에서 또 다른 공식들로 뒤집은, 바로 그 공직선거법이다. 이 선거법으로 다음 총선을 치를 수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선거법을 포함하여 우리가 ‘정치관계법’이라고 부르는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는 것은 아마 헌법을 개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정치적 질서에서 승리자인 현직 국회의원들이 현재의 정치적 질서를 약간이라도 흔드는 일에는 매우 소극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이해당사자이며, 이해충돌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이해와 양보’를 강요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들도 현재의 정치가 지속된다면 우리 공동체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며, 누군가가 자신에게 지나친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정치개혁 과제를 대신 진행해 주었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따로 설치한 것도 이런 목적일 것이다. 정치를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것인가. 어떤 개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며 어떤 방향의 변화가 바람직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정개특위는 던지고, 그 답변을 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이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퇴색되고 변질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가장 큰 딜레마는 입법권이 국회에 속한다는 당연하고 단순한 사실. 어떤 개혁 법안이나 헌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하고, 발의된 법안에 대한 수정 또한 막기 힘들어서, 의원과 정당들의 이해충돌을 완전히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독특한 지위와 제도적 설정을 참고한다면, 정치개혁 과제들을 수행하는 데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개혁안을 논의하고 만드는 과정은 국회가 외부의 다양한 도움을 받아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회(정개특위)가 학계와 법조계의 추천을 받아 중앙선관위에 위원을 추천하여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 그리고 이것이 중앙선관위에 설치, 운영되는 복잡한 절차를 감안해보면, ‘셀프개혁’에서 외부의 도움을 받아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치관계법에 대한 개혁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을 때, 이것을 무기한 처리하지 않거나 의원들이 수정하는 것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 현재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경우, 1회에 한해서 국회에서 재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제출된 원안에 대해서는 수정 없이 본회의 가부 표결을 하도록 하는 등 국회에 대한 일정한 제한 장치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당법 개정안은, 중앙당 서울 소재 요건이나 창당 시 5개 시·도 5000명 당원 요건 등 대표적인 오랜 독소조항을 제거함으로써 정당설립 요건을 완화하는 법안이다.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핵심 정치개혁 법안이며, 그 통과 여부는 국회의 ‘셀프개혁’이 가능한지 보여주는 리트머스 테스트가 될 것이다. 의원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런 개혁입법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일 것이다. 해당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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