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유럽 맹주 흔든 시진핑의 초청장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2022. 10. 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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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프랑스, 시 주석 연임 직후인 '11월 초 방중' 놓고 고심
경제 실익 크지만 "대관식 들러리 서나" "반중동맹 균열" 비판이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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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세 번째 5년 임기 확정을 앞두고 독일과 프랑스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두 나라 정상은 11월초 방중 초청을 받았는데, 이 시기에 중국을 찾는 데 대해 논란이 적잖기 때문이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7월 “중국이 11월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국 정상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11월 중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베이징에 들러달라고 한 거죠.

그런데, 초청 시기가 묘합니다. 11월은 시 주석이 20차 당 대회에서 연임을 확정한 직후가 되죠. 장기집권의 길을 연 시 주석이 유럽 주요 정상을 베이징으로 불러 성대한 ‘황제 대관식’ 모양새를 연출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겁니다. 당나라 시대 주변국이 조공을 바치러 오는 ‘만방래조(萬邦來朝)’를 연상시키죠.

4개국 중 독일과 프랑스가 초청에 응했다는 게 서방 언론의 보도인데, 양국 정부는 모두 방중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합니다. 독일 정부는 “총리 해외 방문 일정은 1주일 전에 공개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더군요.

◇중국의 외교적 노림수

2020년 코로나 19사태가 터진 이후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왕따’ 신세가 됐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코로나 19 확산에 대한 중국 책임론이 제기되자, 비판 상대국을 거칠게 공격하는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로 맞섰다가 고립을 자초했죠.

국가보안법으로 홍콩을 사실상 통합하고, 대만에 대해 대대적인 군사 위협을 가하면서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도 나빠졌습니다. 위구르족에 대한 ‘제노사이드(종족말살)’ 논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지원 등으로 인해 그나마 우호적이었던 유럽 국가들도 중국에 등을 돌렸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노아 바킨 트위터

중국이 시 주석 연임 확정 후 서방 정상을 베이징으로 초청한 것은 이런 외교적 고립에서 탈출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깊이 얽혀 있는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11월에 예정대로 중국을 방문한다면 시 주석으로서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겠죠. 국내적으로는 ‘황제’의 위상을 과시하고, 밖으로는 미국 주도의 서방 반중동맹에 균열을 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선물 보따리’의 유혹

가장 흔들리는 쪽은 독일의 숄츠 총리입니다. 숄츠 총리는 작년 12월 취임 이후 전임 메르켈 총리 시절의 친중노선과 결별할 것이라고 선언했죠. 취임 후 첫 아시아 방문국도 중국 대신 일본을 택했습니다. 지난달 유엔 총회 연설에서는 신장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인권 침해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죠.

숄츠 총리의 사민당 연립내각에 참여한 녹색당 출신의 경제, 외무장관도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일 것이라고 공언해왔습니다. 중국에 투자한 독일 기업에 대한 투자 보증 한도 축소 등 구체적인 방안도 거론했죠.

중국 증시에 상장된 주요 반도체 기업 리스트. 사장과 부사장, 재무책임자 등 고위 임원 대부분이 미국 국적을 보유한 중국계 미국인이다. /트위터

그랬던 독일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에밀리 하버 주미독일대사는 트위터글에서 “좋든 싫든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며, 고위급에서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썼더군요. 숄츠 총리 자신도 미국 주도의 공급망 탈중국 정책에 대해 “세계화는 많은 사람에게 번영을 가져다준 성공 스토리를 써왔으며 이를 지켜야 한다. 탈동조화(decoupling)는 잘못된 해법”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대중정책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독일의 경제적 이익이겠죠. 중국은 독일의 황금시장입니다. 폴크스바겐은 한해 차량 판매 대수의 절반을 중국에서 팔아요. 벤츠의 중국 매출액은 미국시장 매출액의 3배 수준이라고 합니다. 에어버스는 올해 370억 달러나 되는 물량을 중국에서 주문받았고, 화학기업 바스프는 2030년까지 중국에 97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해요.

독일 정부는 공식 확인을 피했지만, 블룸버그통신 등은 숄츠 총리가 11월3일부터 1박2일 간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은 그 대가로 적잖은 선물보따리를 챙겨주겠죠.

◇미, “동맹 흔드는 ‘위험한 불놀이’”

미국은 분노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10월18일 자에서 “대서양 동맹에 균열을 내는 위험한 불놀이”라고 비판했더군요.

이 매체는 “기후변화 등 중국과 협력해야 할 분야가 있겠지만, 방문 시기가 너무 안 좋다”면서 “독일과 프랑스 정상의 중국 방문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중국 지도자를 대담하게 할 것이며 민주 진영의 협력국을 소외시키고, 중국의 경제적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숄츠 총리가 폴크스바겐, 지멘스 등 중국 시장에 올인하고 있는 소수의 독일기업 경영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고도 했어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숄츠 독일 총리의 방중을 '위험한 불놀이'라고 비판한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의 칼럼. /조선일보DB

이런 반발 때문인지 숄츠 총리 방중 연기설도 나왔습니다. 독일 마셜 기금 아시아프로그램 노아 바킨 선임연구원은 9월30일 트위터글에서 “사적으로 총리실에 물어보니 11월 첫째 주 방중은 연기했고, 연말 전에는 방문할 것이라고 하더라”고 썼어요. 방중은 하더라도 ‘대관식 들러리’는 서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방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12월1일 마크롱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는 발표가 먼저 나왔습니다. 혹시 중국을 방문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미국 편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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