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미·중관계사] 일본의 진주만 습격 유발한 딘 애치슨

2022. 10. 2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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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고군분투했다.

미국은 중국 국민당 정부에 군사적·재정적 지원과 함께 제재로 일본의 침략 의지를 꺾으려 했다.

미 정부 내에서 일본의 미국산 원유 수입 제재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 이유다.

하지만 미국이 그해 11월 텅 빈 유조선을 일본에 보내자 일본은 진주만을 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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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고군분투했다. 미국은 중국 국민당 정부에 군사적·재정적 지원과 함께 제재로 일본의 침략 의지를 꺾으려 했다. 미 정부 내에서 일본의 미국산 원유 수입 제재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 이유다. 당시 루스벨트 행정부는 제재 수위를 놓고 갈등에 빠진다. 일본이 미국 원유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외교적 수사만으로도 일본의 야욕을 잠재우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여겨 실제적인 제재 조치는 내심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행정부 내에서 누군가 이를 단행하며 일본의 진주만 침공에 빌미를 제공했다. 그가 딘 애치슨이었다.
애치슨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두 개의 재앙을 불러온 장본인이다. 그의 판단과 결정으로 미국이 두 개의 전쟁에 빠졌다. 하나는 일본의 원유 수입 제재 결정이 촉발한 1941년 12월7일 미 하와이 진주만 기지 습격이다. 다른 하나는 1950년 1월12일 그가 그린 미국의 동아시아 방어선, 이른바 ‘애치슨 라인’이다. 한반도를 제외시킨 그의 선 하나가 북한에 남침 빌미를 제공했다.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는 모습. 출처:세계일보 자료사진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7월부터 논의된 일본 제재를 정책에 국한시키고 싶었다. 일본의 미국 내 금융자산 거래에 타격을 주기 위한 행정명령(8832호)에서도 그런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해당 명령은 일본 지분이 25% 이상인 자산의 동결만 규정했다. 실제로 그런 일본 기업이 없었기에 미국 내에서 일본의 구매력을 제약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미 정부 심사를 까다롭게 해 구매 절차를 어렵게 하려는 의도뿐이었다.

이들은 제재를 중국의 평화와 해방의 지름길로 확신했다. 제재에 대한 일본의 반격이 없을 것으로 믿었다. 미국에 대한 공격은 곧 패망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그해 11월 텅 빈 유조선을 일본에 보내자 일본은 진주만을 습격했다. 핵실험 이전에 미국의 제재를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북한에 미국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진주만 습격의 역사적 교훈이 트라우마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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