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내각 돌아온 이탈리아, 불안한 눈빛 못 감추는 유럽

박용하 기자 2022. 10. 2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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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신임 총리 국정 시작
100년 만의 극우 총리 취임식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대표인 조르자 멜로니가 22일(현지시간) 대통령 관저인 퀴리날레궁에서 총리 취임 선서를 한 후 의장대를 사열하며 걸어 나오고 있다. 로마 | EPA연합뉴스
총리 ‘우크라 지지’ 밝혔지만 연정 파트너는 친러 성향 짙어
여당선 “에너지 위기 악화 땐 연대 어려워”…서방, 예의주시

지난 9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 연합을 이끌고 압승을 거둔 극우 정치인 조르자 멜로니(45)가 이탈리아의 신임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1922년 총리로 집권한 지 100여년 만에 극우 내각을 맞이하게 됐다.

AFP통신 등 외신들은 22일(현지시간) 멜로니 신임 총리와 24개 부처를 이끌 각료들이 이날 대통령 관저인 로마 퀴리날레 궁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국정 운영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새 내각은 다음주 상·하원에서 신임 투표가 예정돼 있다. 다만 우파 연합이 지난 총선에서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기에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장관에는 전임 마리오 드라기 내각에서 경제개발부 장관을 지냈으며, 비교적 온건하고 친유럽연합(EU) 성향으로 알려진 잔카를로 조르제티가 선임됐다. 외교장관에도 친유럽파인 안토니오 타야니 전 유럽의회 의장이 임명됐다.

멜로니의 총리 등극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대표였던 그는 지난달 25일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Lega),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전진이탈리아(FI) 등과 우파 연합을 결성해 압승을 거뒀다.

총리 지명 권한을 가진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상·하원 의장, 각 정파 지도자들과 면담한 끝에 멜로니를 총리로 지명했다. 중도 좌파 정당들은 극우 성향의 멜로니가 총리에 지명되면 임신중단권이 축소되고, 성소수자의 인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파 연합은 총선에서 FdI를 원내 1당에 올려놓은 멜로니를 총리로 지명할 것을 만장일치로 요청했다.

극우 성향의 멜로니 총리 취임에 국제사회는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2012년 네오파시스트 성향의 정치단체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의 가치를 이어받아 FdI 창당을 주도한 인물이다. 반이민과 반EU 등 선명한 극우 색채를 바탕으로 지지세를 확장했으며 ‘여자 무솔리니’로도 불렸다.

서방국가들은 특히 그의 취임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멜로니 총리 본인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거듭 밝히고 있으나, 연정 파트너인 살비니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친러시아 성향이 짙다. 이탈리아 매체들은 최근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발언을 담은 녹취록을 통해 그가 생일을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편지와 선물을 교환했으며, 전쟁의 책임이 우크라이나에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FdI의 고위 인사는 이탈리아 매체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경제위기 상황에 전쟁이 장기화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친밀감이 약화될 수 있으며, 연대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가 악화되면 멜로니 내각의 정책 노선 변화가 본격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멜로니 총리는 아직까지 유가 상한제 등 EU 차원의 에너지 문제 대응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방국가들은 이날 멜로니 총리의 취임을 축하하며 협력을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의 일원으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는 것을 비롯해 인권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존중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구축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멜로니 총리가 이탈리아의 첫 여성 총리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가 함께 직면한 도전에 대해 이탈리아 새 정부와 건설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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