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게임 덕후가 철저히 파헤친 '마블스냅'
'하스스톤'의 아버지 벤 브로드가 다시 한번 카드 게임으로 돌아왔다. 글로벌 인기 IP '마블 유니버스'를 소재로 만든 세컨드디너의 '마블스냅'이 그의 복귀작이다.
마블스냅은 공개 초창기부터 초호화 개발진으로 유명세를 탔다. 개발사 세컨드디너에는 벤 브로드 외에도 하스스톤 전 프로듀서 해밀턴 추와 용 우 등 '진짜베기' 개발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스스톤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들에게 팬들의 기대가 모여졌다.
온오프라인 막론하고 카드 게임이라면 다 해보는 이른바 '카드 게임 덕후'인 기자도 정식 출시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직접 플레이를 해보니 벤 브로드 표 CCG는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매직 더 개더링, 유희왕, 포켓몬 TCG, 하스스톤, 섀도우버스 등 가지각색의 카드는 다 만져본 기자도 지금까지 이런 형식의 카드 게임은 보지 못했다. 마블스냅은 6턴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카드 게임을 표방했다.
일각에서는 "카드 게임이 6턴 동안 뭘 할 수 있냐"라고 평가절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고인물의 선입견이다. 물론 깊은 맛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마블스냅은 카드 게임에 익숙치 않은 신규 유저들도 부담 없이 입문하여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게임이었다.
장르 : 턴제 전략 카드 게임
출시일 : 2022년 10월 18일
개발사 : 세컨드디너
플랫폼 : PC / 모바일
■ 근본 카드 게임의 첫 번째 포석 '유명 IP'
카드 게임이라면 기본적으로 룰과 카드 밸런스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이 모이고 게임의 롱런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이다. 어쨌든 유저가 많이 모여야 게임이 유지될 게 아닌가.
룰과 밸런스 이전에 먼저 갖춰야 할 요소가 있으니 바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카드에 담긴 '서사'다. 지금까지 흥행한 카드 게임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원작 IP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블리자드 하스스톤은 '워크래프트', 사이게임즈 섀도우버스는 '신격의 바하무트'가 소재다.
하스스톤 출시 당시를 생각해 보자. 카드 게임에는 전혀 관심 없던 유저들도 '제이나', '가로쉬', '카드가' 등 워크래프트의 영웅을 카드 게임으로 즐길 수 있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게임을 시작했다. 결국 비주류 장르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위해선 IP 파워를 빌릴 수밖에 없다.
마블스냅은 '마블 유니버스'라는 엄청난 아군을 등에 업었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토르' 등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던 멋진 히어로를 카드로 만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블 팬들에게는 이미 상황 종료다.
히어로 대 빌런이라는 원작의 대결 구도 역시 카드 게임을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다. 기존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 게이머들에게도 구미가 당기는 포인트다. 이로써 마블스냅은 대중적인 카드 게임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을 이미 갖춘 셈이다.
■ 진입 장벽 확 낮춘 간단한 게임 구조
마블스냅은 진입 장벽을 확 낮췄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간단한 게임이다. 가벼운 게임 방식이 매력적이다. 한 판이 5분 내외로 종료될 만큼 호흡이 짧다. 덱도 12장의 카드에 불과하다.
최근 하스스톤, 섀도우버스 등 기존 카드 게임은 '솔리테어' 덱이 늘어남에 따라 소요 시간이 늘어나는 추세다. 솔리테어란 단어 자체의 의미는 '혼자 하는 카드놀이'를 의미한다. TCG 용어로 좁혀 봤을 땐 "상대의 플레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카드만을 사용하여 게임을 끝내는 덱"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벽 덱'이라고 표현한다.
상대가 어떤 플레이를 하던 관계없이 자신의 콤보 완성에만 집중한다. 일방적으로 상대 플레이어에게 여지를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연계성이 우수한 솔리테어 덱은 승률이 매우 높다. 이기는 것이 중요한 랭크 게임에서는 이런 류의 덱을 사용하는 유저가 많을 수밖에 없다.
마블 스냅은 이와 같은 추세와 정반대의 길을 걷기로 했다. 신규 유저들의 유입을 도울 뿐만 아니라 호흡이 길어지는 메타에 피로를 느끼는 기존 유저들에게도 어필할 무기로 마블스냅은 '간단함'을 선택했다.
다만, 기존 카드 게임이 선사하던 심도 있는 플레잉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하스스톤이나 유희왕 등에서 해왔던 폭발적인 콤보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카드 풀 자체가 좁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카드가 많아진다고 12장의 카드와 6턴이라는 짧은 제한 시간 안에서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진 않는다.
■ 심리 싸움이 일품인 땅따먹기식 승리 조건
마블스냅과 기존 카드 게임과의 차별점은 승리 조건이다. 기존 게임은 상대를 공격하여 체력을 모두 깎는 것이 조건인 반면 마블스냅은 '땅따먹기' 방식을 채택했다. 게임 필드 중앙에 있는 세 개의 지역 중 두 곳에서 더 높은 포인트를 얻는 쪽이 승리한다. 더 많은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해 카드 효과를 활용한 다양한 전술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덱과 카드뿐만 아니라 지역 효과도 승패를 좌우한다. 필드 중앙에 있는 세 지역은 각각 고유의 효과를 가졌다. 그리고 각 지역은 1턴마다 순차적으로 효과가 개방된다. 가령 '스타크 타워'는 5번째 턴이 끝나면 해당 구역의 모든 카드에 +2 파워를 부여하는 규칙이 부여된다.
지역 효과는 심리 싸움에 풍미를 더한다. 우선 지역을 먹기 위해선 상대보다 더 높은 파워를 얻어야 한다. 다시 스타크 타워를 예로 들어 보자. 스타크 타워는 카드 1장 당 +2 파워를 부여하기 때문에 카드 수가 많을수록 그 효율이 높다.
그렇다고 스타크 타워 앞에 무턱대고 카드를 투자하면 상대가 포기하고 다른 지역에 투자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되면 내 카드는 과투자한 셈이 되고, 다른 지역의 힘 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카드를 적게 놓았다간 지역 효과로 한 순간에 전세가 뒤집힐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와의 줄다리기를 하며 '눈치 싸움'을 하는 것이 게임의 백미다. 하나의 지역에 최대 4장의 카드만 놓을 수 있다는 제약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CCG에서 어그로 덱처럼 저비용 카드를 빨리 내려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의미다. 저비용 카드 4장이 모여봤자, 고비용 카드 1장에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눈치 싸움만 있다면 좋은 게임이 될 순 없다. 카드게임은 상대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몇몇 카드들의 효과로 상대의 움직임에 제약을 줄 수 있다. '제시카 존스'라는 카드는 다음 턴 이 카드의 구역에 카드를 내지 않을 경우 +4 파워를 부여하는 효과를 지녔다. 이 효과를 통해 상대는 +4점을 허용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카드를 내야 하는 이지선다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즉, 각 카드의 효과와 지역 효과는 자칫 건조해질 수 있는 게임 양상에 의외성을 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블스냅은 단순한 게임일지라도 유저들이 즐거움을 느끼고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충분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 쫄리면 죽어야 하는 스냅 시스템
'마블 스냅의 랭크 게임은 '코스믹 큐브'라는 승점으로 결정된다. 비유하면 카지노의 '칩' 같은 느낌이다. 승자는 해당 판에 걸려있는 코스믹 큐브를 모두 얻고, 패자는 잃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냅'이란 조미료가 더해져 맛이 확 살아난다.
만약 플레이 도중 누군가 스냅을 사용하면 다음 턴부터 베팅한 큐브의 개수는 두 배가 된다. 6턴에 들어가면 거기에 또 두 배가 된다. 첫 시작에는 큐브 1개가 걸리기 때문에 플레이어 모두 스냅을 한다면 6턴째는 총 8개의 큐브가 판돈이 된다. 스냅은 포커의 레이즈 개념이다.
스냅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단순히 코스믹 큐브를 많이 얻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바로 '블러핑'이다. 영화 타짜나 포커 경기 등에서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의 패를 알 수 없으니 스냅을 통해 계속 판돈(큐브)를 올린다면 죽을지 받아칠지 고민하게 되기 마련이다. 영화 '타짜'의 명대사 "쫄리면 뒈지시던지"가 떠오른다.
개발팀은 튜토리얼 단계부터 스냅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강조한다. 스냅을 단순히 판돈을 키우는 용도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활용하길 원한다. 계속 지르는 상대에게 큐브를 모두를 잃는 것보단 과감하게 게임을 포기해서 큐브 1개만을 잃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기자는 스냅 시스템을 '요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게 뭐라고 경쟁심을 엄청나게 자극한다. 영화 속의 타짜가 된 기분이다. 적어도 마블스냅에서는 손모가지가 날아가진 않으니 패가 어지간히 안 좋지 않은 이상 "상대가 지르면 나도 지른다"의 마인드로 게임을 하게 된다. 그렇다. 곧 죽어도 묻고 더블로 가는 것이다.
■ 다양한 게임 플레이 방식의 부재
앞서 설명했지만, 카드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카드에 담긴 서사다. 정말 중요한 요소임을 알기 때문에 기존 CCG 게임들은 서사를 풀어내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하스스톤의 모험모드나 섀도우버스와 유희왕 마스터듀얼의 스토리 모드가 그 예다.
카드 자체에 대한 스펙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카드에 담긴 인물이 대체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싸우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스토리는 카드 게임 자체의 재미에 한층 더 몰입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마블스냅에는 스토리 모드와 같은 캠페인이 없다. 마블 팬들에게는 여간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좋아하는 히어로로 게임도 즐기고, 그 히어로의 스토리를 더 깊게 알 수 있었으면 일석이조일 텐데 말이다.
마블을 전혀 모르는 유저들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남들 다 봤던 어벤져스도 안 본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만큼 마블의 주인공들이 어떤 히어로인지 잘 모른다.
헐크나 아이언맨 정도는 알겠는데 '아메리카 차베즈', '아포칼립스', '안젤라' 같은 히어로는 난생처음 봤다. 게임 본연의 재미 말고는 도통 몰입할 여지가 없었다. 섀도우버스를 한창 즐겼을 때 좋아하는 캐릭터를 보기 위해 스토리 모드를 열심히 했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마블스냅 역시 초기 오픈 스펙이기 때문에 앞으로 출시될 여지는 충분하다. 마블 유니버스만의 매력적인 세계관을 활용한 스토리 모드 혹은 다양한 캠페인을 만들면 좀 더 게임에 몰입하며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 규칙이 빠르고 간단해 부담없이 즐기기 좋다
2. 눈치 싸움과 블러핑 등 심리적인 수 싸움이 매력적이다
3. 마블 히어로 카드를 하나하나 수집하는 재미가 있다
1. 간단한 만큼 플레이의 깊이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2. 스토리 모드나 캠페인 등 다양한 플레이 방식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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