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리커창..시진핑에 눌린 2인자의 조용한 퇴장
임기 초중반엔 개혁 나섰지만 시진핑에게 권력 넘어가며 '관리' 역할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조용한 2인자로 활동하던 리커창(67) 중국 국무원 총리의 퇴진이 확실시됐다. 22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2일자 기사에서 리 총리를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로키'(low-key) 총리였다고 평가했다.
리 총리는 이미 자신의 퇴진을 넌지시 예고했었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서 "중국 총리로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이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전임자인 원자바오 총리와는 달리, 리 총리는 자신의 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업적을 과시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었고, 총리로 지낸 10년을 돌아보는 데 아쉬움도 나타내지 않았다.
SCMP는 내년 3월 전인대에서 그가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사임할 때 리 총리가 큰 박수를 받진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취임 당시 대중의 기대를 크게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 총리는 중국 지도부에서 가장 학벌이 좋은 인물 중 하나다. 베이징대 법학과를 나왔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어도 유창하고, 중국 경제의 맥을 제대로 짚기 위해 일련의 지표들을 채택하기도 했다.
2007년 리 총리는 랴오닝성 당서기로 있을 시절 주중 미국 대사에게 철도 화물량과 전력 소비량, 은행 대출 등 더 세분화된 데이터를 활용해 부풀려진 GDP를 정확하게 개선해 큰 주목을 받았다.
6년 후 총리에 취임한 그는 단기적 고통을 장기적 이익과 맞바꾸는, 경제 구조조정과 시설투자 촉진을 강조한 '리코노믹스' 정책을 도입했다. 이 정책은 천문학적인 정부 부채와 과도한 인프라 투자로 불균형해진 경제의 구조를 개선하는 게 골자였다.
리 총리는 중국의 가장 만성적인 문제인 대기오염과의 싸움에도 발벗고 나섰다. 2014년에는 환경보다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오랜 정책에서 벗어나 "공해와의 전쟁을 단호히 선포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모든 도시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최소 10%까지 줄이도록 요구하는 행동계획도 세웠다.
조지 매그너스 옥스퍼드대학 중국센터장은 리 총리의 경제 정책이 진보적인 개혁주의 쪽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지방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민간 부문이 국영 기업과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기 초중반까지의 이야기다. 2015년 이후 중국에선 경제뿐 아니라 군사, 외교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위원회와 지도 그룹이 출범하면서 시 주석을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됐다.
매그너스 연구원은 "이후 리 총리의 스타성은 희미해졌고 중국 경제의 긍정적인 면이나 기대를 거는 면을 더 이상 그와 결부시킬 수 없게 됐다"며 "시 주석의 의사결정 장악력이 강화되고, 시 주석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포함한 중요한 의제들을 부총리들에게 맡기면서 리 총리의 역할은 더욱 희미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리 총리가 "상사(시 주석)에게 짓눌리고 밀렸다"고 평가하면서 "진정한 개혁가였던 주룽지나 세계 경제의 모멘텀에 올라탔던 원자바오와 비교할 수 없다. 리 총리는 어떠한 장점도 없었고 그저 명목상의 최고위자(figurehead) 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리 총리는 시간이 갈수록 명목상의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 그쳤고, 시 주석의 정책을 집행하는 데 몰두했다. 주룽지 전 총리가 국가 부문에서 어려운 개혁을 추진하고, 원자바오 전 총리가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는 다른 행보다. 분석가들은 리 총리가 재임했던 지난 10년 동안 중국이 정치 개혁 측면에서 거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봤다.
상하이정치법률대 교수를 지냈던 정치 평론가 천다오인은 리 총리가 국무원의 행정권을 위해 싸웠어야 했고, 최고 지도자인 고 덩샤오핑이 1980년대 당 간부들의 정부 개입을 막기 위해 만든 개념인 "당과 정부 사이의 분리" 원칙을 옹호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천씨는 "안타깝게도 리 총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비록 중국의 정치 서열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그는 비전을 가진 정치인이 아닌 그저 관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전임자들과 비교했을 때, 분명히 리 리는 가장 영향력이 없다"고 혹평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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