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멘터리] 조력사, 품위 있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나를 죽여줘”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은유적인 제목? 아닙니다. 말 뜻 그대로 제발 내가 죽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킬 미 나우(Kill Me Now)”라는 연극이 원작입니다. 하지만 감독과 제작사는 영어 제목을 써서 에둘러 가는 대신 거칠다 싶을 정도로 정직하게 제목을 달았습니다.
한때 유망한 작가였던 민석(장현성)은 선천적 지체장애인 아들을 돌보며 힘들게 살아갑니다. 아들이 점점 자라 자신도 친구와 독립해서 살겠다고 요구해서 고민이 깊어가는 시점에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낍니다. 몸이 점점 굳어가는 불치병에 걸린 겁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나중에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게 됩니다. 어느 날 민석은 사랑하는 여자 친구에게 호소하듯 털어놓습니다.
아들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용감하던 아버지는 극심한 신체적 고통과 무너져 내리는 자존감 속에서 자신에게는 죽을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의지대로 안된다는 죽음 앞에서 말입니다.
"끝내고 싶으니 도와 다오. 듣고 있어?"
병상에 누운 아버지 앙드레(앙드레 뒤솔리에)가 딸 엠마뉘엘(소피 마르소)에게 차마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합니다. 지난달 개봉한 프랑스 영화 “다 잘된 거야”에서도 “나를 죽여줘”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 한쪽이 마비된 아버지가 딸에게 ‘끝내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조력사, 안락사, 존엄사.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신의 행위라는 죽음에 인간의 개입이 다소 간에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같은 범주 안에 있습니다. 대중에게 가장 먼저 가장 널리 알려진 ‘안락사’(Euthanasia)’는 그리스어로 ‘좋은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가운데 어근인 타나토스가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의 신입니다.
최근에는 조력사를 다룬 책들도 한 주 간격을 두고 잇따라 출간됐습니다. 외국 저널리스트가 쓴 ‘죽음의 격(원제:The Inevitable)’과 한국인 작가가 쓴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라는 책입니다. 후자는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호주 교포가 스위스에 가서 조력자살을 하는 과정을 지인인 저자가 4박 5일 동안 동행하며 지켜본 기록입니다. 아마 한국에서는 조력 자살을 동행 기록한 첫 번째 책일 겁니다.
“다 잘된 거야”의 앙드레처럼 조력사를 선택한 교포는 스위스 바젤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도시 외곽의 허름한 가내 공장’의 ‘그런대로 안온한’ 내부 공간 중 ‘평소에는 사무실 한편의 보조 공간으로 쓰는지 침상 주변에 집기나 물품 등이 쌓여있어 다소 어수선’한 방의 침상에 누워 ‘I am sick. I want to die. I will die(나는 아프고 죽길 원하며 죽을 것이다)’라는 말을 직원 안내에 따라 녹화한 뒤 스스로 밸브를 돌려 약물을 주입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작가는 조력사를 지켜본 지 넉 달 뒤에, 그러니까 인간의 자유 의지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지켜본 후 어떤 계기로 크리스천이 됐습니다. 그리고 애초 자신의 마지막을 기록해 달라는 지인의 의도와는 달리 명백하게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책을 끝마쳤습니다. 작가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물질 만을 다루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며, 인간은 물질적 존재 이상이고, 신은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삶이 인간의 자유 의지로 주어지지 않았듯이 죽음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력사든 안락사든 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자살일 뿐이라고요.
이런 작가의 주장에 대한 철학적 반론과 재반론은 중세 이래 끝도 없지요. 어느 쪽도 아닌 불가지론자로서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영혼과 정신의 존재를 100% 부정하지도 않지만 자유 의지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품위 있고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무엇이 품위 있는 죽음이고 어떻게 죽는 것이 존엄하게 죽는 것인지 그 기준은 다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요.
여전히 어려운 질문들이 머리 속을 맴돕니다. 죽음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이 천륜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치지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느 정도까지가 인위적인 개입이고 어디서부터가 아닐까요? 심각한 수준의 침습적 치료 또한 본질적으로는 인위적인 개입이 아닌가요? 앞으로 과학 기술이 더 발달하고(발전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생명은 더 연장될 겁니다. 첨단 기술은 비용이 많이 들지요. 빈부에 따라 죽음을 선택(당)할 수도, 생존을 선택(당)할 수도 있는 세상이 열릴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나를 죽여줘”에서는 주인공인 민석이 홀로 남겨질 지체장애인 아들에게 갈 보험금 때문에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근데 진짜 문제는 말이야. 내가 자살해 버리면 얼마 안 되는 보험금도 싹 날아간다는 거야. 그나마 이 집 건사할 돈이라도 받으려면 내가 살아있는 수밖에 없어. 너무 비참해.”
여러분은 어떤 죽음을 맞고 싶으신가요? 그에 앞서, 우선 죽음에 대해 생각은 해보셨나요? 의외로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죽음의 문제는 결국 좋은 삶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하루하루 죽어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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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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