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조르자 멜로니. 무솔리니 이후 최초로 집권한 극우 정당의 당수인 그의 미래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반복하는 것이다."
이번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FdI는 상·하원에서 각각 26% 이상을 득표하며 제1당으로 올랐고, 우파 연합 전체 득표율도 상·하원 각각 40% 이상으로 나타났다. FdI와 연정하는 우파 정당은 마테오 살비니 전 부총리가 이끄는 '동맹(Lega)’,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대표인 '전진이탈리아(Forza Italia)’ 등이다.극우 정당, 신나치 등으로 불리던 FdI 그리고 멜로니 대표는 온갖 정당들의 합종연횡과 잦은 내각 해체를 겪어온 이탈리아 정치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이들은 '안정적인 정치’를 고대하던 유권자들의 마음을 서서히 움직였고, 2018년 총선에서 겨우 4.3% 지지를 받았던 '시야 밖 정당’은 4년 만에 집권당으로 급부상했다. 거대한 지각 변동이다. 무솔리니 이후 최초의 극우 정당 집권의 파장은 유럽 전체로 퍼지고 있다.
그렇다면 '위험인물’로 지목됐던 멜로니는 어떤 배경을 갖고 있을까. 1977년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홀로된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로마의 '가르바텔라’ 지역으로, 대표적인 노동자 계층 거주지다. 좌파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성장했지만 멜로니는 15세이던 1992년 네오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 사회운동’(MSI)에 가입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 하원의원, 2008년 최연소 청년부 장관 등을 거치며 꾸준히 성장했다. 2012년에는 민족주의와 가족주의를 강조하는 FdI를 창당하기에 이른다. 올해 선거에서 이변을 일으킨 이 정당의 강령은 '하느님, 가족, 조국’이다. 유럽연합(EU) 내 3위의 경제력을 가진 이탈리아, 프랑스·독일과 함께 유럽의 상징과 같은 이 나라의 운명은 당분간 이 45세 여성의 손에 맡겨졌다.
교황 "이민자를 배제하는 건 추잡한 일"
"나는 조르자, 나는 여성이고, 나는 어머니고, 나는 이탈리아인이고, 나는 기독교인이다."2019년, 멜로니를 더 유명하게 만든 한 문장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 짧은 문장으로 녹여냈다. 그를 좋아하는 이든 싫어하는 이든 영상을 퍼 나른 결과, 유튜브 조회수 1200만을 찍었다. 민족주의, 가족주의, 동성혼 반대, 불법 이민 반대, 대러시아 제재 반대, 유로존 탈피 등이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이다.
멜로니는 동성애, 이민자, 낙태 등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입장이다. 싱글맘의 자녀로 자란 그는 역설적이게도 '정상 가족’을 강조한다. 동성혼 반대, 동성 부부의 육아도 반대한다. 지난 6월 한 연설을 통해 "정상 가족에 찬성, 성소수자 로비에 반대"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며 '이탈리아 민족주의’를 강조한 것도 일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멜로니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신속한 본국 송환과 엄격한 망명 규정을 약속했다. 지나치게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우려된 탓인지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나섰다. 10월 9일 미사를 집전한 자리에서 교황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건 눈앞에서 그들이 죽는 것을 보겠다는 것"이라며 "이민자를 배제하는 건 추잡하고, 혐오스러우며, 죄스러운 것이자 범죄"라고 강조했다. 또 "지중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라고 꼬집었다. 아프리카인의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해안 봉쇄 등을 주장한 멜로니의 총리 취임을 앞두고 교황이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 입장도 선명하다. 비록 선거가 다가오면서 멜로니는 드라기 총리의 친우크라이나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희석시켰지만 그의 연정 파트너인 살비니 전 부총리 등 주요 인사들은 여전히 '친러시아 친푸틴’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무기, 물자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EU 및 미국 정부의 입장과 전면 배치된다.
멜로니가 러시아에 대해서만 우파 연합과 다른 목소리를 내온 것은 아니다. 유로존을 떠나야 한다는 주장을 10여 년간 공개적으로 해온 그다. 지난 2014년 "지금 시대는 이탈리아가 유로존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후에도 유럽연합 통합에 방해가 되는 발언을 지속했다.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한 작년부터 멜로니는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우리는 유로존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멜로니의 부상을 지켜보던 EU는 선거 전부터 그를 압박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9월 23일 미국 프린스턴대 연설에서 "EU 집행위는 이탈리아의 어떤 민주주의 정부와도 협력할 용의가 있다"면서도 "상황이 어려운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이탈리아와 겨룰 도구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도구’는 자금 지원 중단을 의미한다. 최근 집행위는 헝가리 정부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이유로 75억 유로(약 10조 원)의 자금 지원을 중단한 바 있다. EU가 2026년까지 이탈리아에 제공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구호 기금 약 2000억 유로(약 277조 원)를 받으려면 멜로니 정부도 딴생각을 하기 어렵다.
게다가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탈리아의 2023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를 0.4%로 전망했다. 더딘 경제 성장,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관광업 침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 및 극심한 인플레이션, 빙하가 녹는 급격한 기후변화까지 멜로니의 앞날은 어두운 게 사실이다.
상반된 각국의 반응
반면 러시아를 비롯해 EU에서 늘 '다른 목소리’를 내던 폴란드, 헝가리 등은 환영했다. 크렘린궁은 "우리들에 대한 적대로 가득했던 기존 주류 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 어떤 정치 세력도 환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반겼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8월 중순, 멜로니의 급부상에 대해 "그의 인기를 설명하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정책에 대한 일관성"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지난 정권에 크게 실망한 사람들은 유일한 야당으로 남아있던 정당을 선택한 것이다. 더불어 젊은 나이와 여성이란 점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탈리아엔 무려 세 번이나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6) 등 연로한 정치인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국내외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유권자들의 심리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탈리아 정치구조 특성상 많은 이의 우려와 같은 극우적, 퇴행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례로 이탈리아 신문 '도마니’ 편집국장 마티아 페라레시의 9월 26일 자 '뉴욕 타임스’ 기고문 'Giorgia Meloni Is Extreme, but She’s No Tyrant(멜로니는 극단적이지만 폭군은 아니다)’를 살펴보자. 페라레시 편집장은 "취약한 정치 시스템과 멜로니의 파시스트적 성향 등 다양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20곳의 준자치지역과 8000곳에 달하는 지자체로 분산된 시스템이 중앙집권을 제어하는 방화벽"이라며 "헌법재판소는 정치 영향력에서 충분히 벗어나 있다"고도 설명했다. 여전히 '다수의 트럼프 지지자 보유국’인 미국보다 더 민주주의적일 거라는 냉소적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고 역시나 시민들은 갈라졌다. "좌파든 우파든 정책의 일관성을 가지고 안정적인 정치를 하길 바란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50년 전 무솔리니 시절로 돌아가는 정치적 퇴행"이라는 강력한 비판이 공존한다. 우파 연정 내 '분열의 씨앗’(친러시아)과 갈라진 여론 앞에서 멜로니의 행보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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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뉴시스
이승원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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