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항암제, 롯데는 공장..해외 M&A로 돌파구 찾는 바이오 업계

김명지 기자 2022. 10. 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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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바이오로직스 BMS공장 인수 이어
LG화학 표적 항암제 개발한 美바이오 기업 인수
SD바이오센서는 2조원 美동종기업 인수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부사장)이 14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2019’에서 강연하고 있다./조선비즈

LG화학이 이달 18일 미국 신약 개발 기업 아베오 파마슈티컬스 인수한다고 밝혔다. 연매출 500억원 규모의 신약 개발 회사를 8000억 원에 인수한다는 소식에 국내 언론들은 ‘깜짝 발표’ 라는 표현을 썼다.

LG화학의 기업 규모로 봤을 때 인수 금액이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LG의 보수적 기업 문화를 감안하면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LG는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제약 사업에 진출했다. 생명과학 부문은 고(故) 구자경 LG그룹 전 명예회장의 지원 아래 아래 1991년 폐렴 항생제 ‘팩티브’ 개발을 성공시키고 2002년 LG생명과학으로 분사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팩티브 사업화 실패와 2003년 LG카드 사태 이후 암흑기를 겪었다. 그룹의 연구개발(R&D) 투자는 급감했고, 우수한 인재들은 회사를 빠져나갔다.

2017년 LG화학으로 ‘신성장동력’이라고 흡수 합병됐지만, 통풍 당뇨 등 기존 파이프라인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베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받은 3세대 표적항암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LG화학은 이번 인수를 통해 생명과학 부문 사업 중심 축을 항암제로 완전히 옮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인수 작업을 주도한 손지웅 LG화학 사장은 다음 날 열린 ‘아베오 인수 관련 설명회’에서 “파이프라인 정리하고 미국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항암제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 2조 2000억 8000억...글로벌 M&A에 돈 쓴다

국내 대기업들이 과감한 해외 인수합병(M&A)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 채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수조원의 비용을 들여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도, 미래 전망이 서지 않고, 경쟁력이 없다면 과감히 매각하고 신성장 동력을 찾아 새 분야에 뛰어드는 것이다.

‘유통 업계’의 간판 대기업인 롯데그룹은 올해 초 1억6000만달러(약 2280억원) 규모의 미국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을 인수하며 바이오 의약품 사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지난 5월에 롯데 지주 산하에 바이오 자회사인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신설하고 미국 법인도 설립했다. 지난 20일에는 공장 인수자금 조달 및 운영을 위해 240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훈기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장(오른쪽)과 이원직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왼쪽)가 '2022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이하 바이오USA)'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설명을 하고 있다. ⓒ 뉴스1

롯데케미컬의 화학 기술과 바이오 의약품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유통 식품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다변화하겠다는 의도도 깔렸다. 롯데바이오로직스 이사회 의장인 이훈기 롯데지주 전략기획실장은 지난 6월 기자들에게 “바이오 투자를 위해서 현금이 창출되는 사업이라도 유망하지 않다면 매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체외 진단 기업인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지난 7월 미국 메리디언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15억 3000만 달러(약 1조 9897억원)로 지난해 이 회사의 연매출(약 2조원)과 맞먹는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작년부터 미국 진단기업 인수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수를 통해 미국 및 글로벌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것이 이 회사의 포부다. 한국의 진단 의료기기 기술은 세계적 수준인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턱없이 낮다고 한다. 자체 기술의 우수성과 미국 기업의 현지 네트워크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포석이다.

◇ ‘바이오 성공모델’ 변화 이끌었다

국내 제약 바이오 대기업은 기업 M&A에 소극적이었다. 여유 자금이 생기면 자체 기술 개발을 하거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안정 추구형 투자 관행은 기업의 체질을 약화시킨다. 그런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기업 M&A로 ‘바이오’라는 새로운 업종에 뛰어드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공모델이 있기에 이런 체질 개선이 가능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LG화학의 아베오 인수를 두고 언론은 ‘깜짝 발표’라고 했지만, 제약 바이오 업계의 반응은 달랐다. 국내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라고 했다. “예상보다 늦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로 바이오의약품 CDMO(위탁개발생산) 분야에 입지를 굳힌 삼성과 달리 LG는 바이오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LG생명과학이 LG화학으로 흡수합병되면서 신약 개발은 곁다리가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11일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 시설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이재용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 모습(삼성전자 제공)

그런데 이번 인수 소식에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신약 개발로 승부를 보려고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대차증권의 엄민용 바이오 담당 연구원은 “(신약 개발) 생명과학 사업부가 LG화학 성장의 축임을 확인했다”라고 했다.

LG의 결단이 예상보다는 좀 늦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반응이 나온 배경에는 이번 인수를 주도한 손지웅 LG화학 사장이 있다. 서울대 의학박사 출신인 손 사장은 한림대 의대 임상면역학 교수를 거쳐,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아시아태평양 총괄, 한미약품의 신약개발본부장 부사장을 거친 인물이다.

지난 2017년 손 사장이 LG화학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업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 당시 손 사장은 글로벌 신약 시장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해, 사업화하는 것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특히 ‘항암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한미약품이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에 수출했던 3세대 비소폐암 표적항암제 ‘올리타’가 대표적인 사례다.

경쟁약품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가 한발 앞서 출시되면서, 2016년 기술 반환되긴 했지만, 글로벌에서 필요로 하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정확히 짚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런 손 사장이 LG화학으로 간 지 5년만에 인수합병 소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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