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이 ‘시속 30㎞’이어야 하는 까닭…어린이의 눈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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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32㎞ 넘으면 속도 구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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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의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생후 42~48개월에 받는 6차 영유아건강검진에서 처음으로 시력표를 이용한 시력검사를 하는데, 아이의 시력이 0.6이 나왔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둘 다 눈이 나빠 아이에게 평소 텔레비전은커녕 스마트폰 화면도 보여주지 않았건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어진 소아과 전문의의 말은 반전이었다. 아기의 출생 직후 시력은 약 0.05로, 만 3살 때 대략 0.6에 도달한 뒤 만 8~9살에 비로소 시력 발달이 완성된다고. 즉, 현재 시력이 ‘정상’이라고 했다. 시력이란 것이 눈은 물론 대뇌피질과 중추신경계 등이 긴밀하게 협력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모든 구조물이 현재 부지런히 발달 중인 아이의 시력도 서서히 좋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많은 부모가 이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어른이 어린이의 눈과 관련해 모르는 게 비단 시력뿐만은 아니다.
자기 신체 작으면 물체 더 크게 인지
어렸을 땐 그토록 광활해 보이던 학교 운동장이 어른이 되어 다시 가보니 너무나 작아 보인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이런 일화는 신체 크기가 작은 관찰자일수록 사물을 더 크게, 신체 크기가 큰 관찰자일수록 사물을 더 작게 인식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저서 <과학과 방법>(Science and Method)에서 잠자는 동안 신체를 포함해 전 세계가 1천배 더 커지는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그 결과는? 잠에서 깬 뒤 이런 엄청난 변화를 눈치챌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푸앵카레는 그 이유로 “우리 몸이 좌표축 시스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의 신경과학자 헨리크 에르손 연구팀은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험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에게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씌워 인형을 간지럽히는 모습을 실시간 촬영해 보여주면서 동시에 참가자의 몸을 간지럽히면, 화면 속 인형을 자기 몸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연구팀은 이런 과정을 거쳐 실험 참가자들을 키 30㎝~4m의 다양한 인형을 자기 몸처럼 인지하게 한 뒤, 블록의 크기나 블록까지의 거리를 맞히도록 했다. 그 결과, 30㎝ 인형으로 실험한 사람들은 블록을 실제보다 더 크다고 추정했고 블록 간의 거리도 더 먼 것으로 평가했다. 4m 인형으로 한 사람들은 정반대였다. 블록을 더 작다고 느꼈고, 거리도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움직이는 상황에서도 어린이는 어른과 다른 세상을 본다. 보통 일상생활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볼 때 보행자의 두뇌는 수직 고도, 즉 차의 높이 변화를 보고 속도와 거리를 추정한다. 만약 지형이 달라지면 상당한 오차가 생긴다. 도로 경사가 1°만 감소해도 시속 50㎞로 접근하는 차량의 높이는 실제보다 4배 더 먼 거리에 있는 자동차의 높이와 똑같아 보일 수 있다. 이런 오차를 다른 정보로 보정할 수 있어야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어린이에겐 이런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영국 로열홀러웨이대 심리학과 존 완 교수팀은 6~11살 어린이 100여명을 대상으로 자동차가 달리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어린이가 안정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접근 속도를 계산했다. 그 결과 성인은 시속 80㎞까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던 반면, 어린이는 시속 32㎞보다 빠른 차는 얼마나 빠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는 어린이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시각적 감지 메커니즘의 발달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조심해도 빠르게 접근하는 차를 미처 보지 못할 수 있다.
어른이 보기에 엄청 빠르게 달려오는 자동차도 어린이의 눈에는 어쩌면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지금처럼 어린이보호구역의 제한속도가 자꾸 오르는 상황이라면, 어린이의 안전 의식을 오로지 교육을 통해 바꾸려는 노력은 한계가 뚜렷하다. 제한속도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눈으로 들어온 시각정보 결합 안 해
시각적 세계에 대한 경험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인의 두뇌는 시각과 후각, 청각, 미각, 촉각 등 다양한 종류의 감각정보를 결합한다. 단일 감각만 사용할 때의 불확실성을 줄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를 감각 융합이라고 한다.
시각이라는 감각 하나만 쓸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실생활이나 3차원(3D·입체) 영화를 볼 때 두 눈의 망막에는 서로 다른 상이 맺히는데, 이를 ‘양안의 시차’라고 한다. 두뇌는 이 두 가지 상을 통합해 입체를 파악한다. 한쪽 눈을 감더라도 표면 무늬의 해상도, 즉 ‘질감’을 보고 거리를 추정할 수 있다. 예컨대 모자이크를 눕히면 나와 가까운 쪽 네모는 크게, 먼 쪽 네모는 작게 보인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런던 버크벡대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에게 3D 안경을 씌운 뒤, 알록달록한 모자이크 같은 평면 두 개를 제시하고 어느 것이 더 평평한지 판단하게 했다. 이때 경사도를 판별할 수 있는 정보는 위에서 설명한 양안 시차와 질감이다. 실험에서는 두 정보를 모두 제시하거나, 둘 중 하나만 나타냈다. 그 결과 성인은 두 가지 정보가 다 있을 때 응답이 월등히 정확해진 반면, 12살 미만 어린이의 답은 유의미하게 나아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두 번째 실험에서 양안 시차와 질감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 특수한 3D 원반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두 눈으로 보면 더 뉘어 있는 원반인데, 정작 모자이크를 이루는 네모들의 크기 분포를 살피면 마치 서 있는 원반과 같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성인은 이 원반의 경사가 기준 원반과 같은지 다른지 판단하는 데 서툴렀다. 성인 두뇌는 양안 시차와 질감 정보의 평균을 취하는 경향이 있는데, 상충하는 정보가 시각 체계를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반면, 6살 어린이는 차이점을 알아차리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어린이의 두뇌는 감각 융합을 피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는 길, 종종 무릎을 굽혀 앉아 눈높이를 맞춰보곤 한다. 기대와는 달리 앞에 보이는 나무까지의 거리나 높이 따위는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위 연구에 따르면, 나무와 비교되는 나의 신체 크기가 그대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에피소드처럼 정체불명의 음료를 마신 뒤 몸이 작아지거나, 아예 거인국에 뚝 떨어지는 상상을 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아이의 시력은 0.6이고 서로 다른 정보를 두뇌 안에서 통합하지 않는 것까지 고려하면, 시각적 세계에 대한 아이의 경험은 나와는 꽤 다를 테다. 도대체 왜 코앞 담장 위에 앉아 있는 까치를 발견하지 못하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칼럼니스트
육아를 하며 과학 관련 글을 쓴다. 과학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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