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원명원, 그리고 레 미제라블[박준우 특파원의 차이나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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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노트르담', '레 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1856년 제2차 아편전쟁 당시 베이징(北京)으로 쳐들어가 황제의 여름 궁전인 원명원을 파괴한 영국과 프랑스를 이같이 비난했다.
당시 청나라가 인근에서 아편 밀수와 해적질을 하던 선박 애로호를 단속하면서 배에 걸린 영국 국기를 훼손했으며, 이로써 영국이 위협을 받았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전쟁을 선언했던 영국과, 이에 편승해 자국 선교사의 처형을 이유로 참전했던 프랑스는 베이징을 점령하고 당시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자 도서관으로 꼽혔던 원명원을 3일간 약탈한 뒤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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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나인사이드
“국기 훼손했다”며 전쟁 건 영·프에 당했던 중국
이제는 “주석 사진 훼손했다” 영국에서 시위대에 폭력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어느 날 강도 두 명이 원명원에 들어가 한 명은 약탈하고 한 명은 불을 질렀다. 강도의 승리였고, 두 승자는 함께 원명원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레 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1856년 제2차 아편전쟁 당시 베이징(北京)으로 쳐들어가 황제의 여름 궁전인 원명원을 파괴한 영국과 프랑스를 이같이 비난했다. 당시 청나라가 인근에서 아편 밀수와 해적질을 하던 선박 애로호를 단속하면서 배에 걸린 영국 국기를 훼손했으며, 이로써 영국이 위협을 받았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전쟁을 선언했던 영국과, 이에 편승해 자국 선교사의 처형을 이유로 참전했던 프랑스는 베이징을 점령하고 당시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자 도서관으로 꼽혔던 원명원을 3일간 약탈한 뒤 불태웠다. 중국의 중학교 역사시험에는 위고의 저 발언을 제시하고 ‘강도’에 해당하는 두 국가가 어딘지를 묻는 문제가 자주 출제된다.
10월 18일, 당시 방화와 약탈이 이뤄졌던 마지막 날인 이날 폐허만 남은 원명원이 매년 무료로 개방된다. 지난 18일 원명원을 찾았던 중국인들은 “열강에 침탈당한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현장학습을 나온 듯한 어린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에 “제2차 아편전쟁의 결과를 다시는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팻말을 든 채 폐허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고, 인솔교사들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아이들에게 교육했다. 원명원 터 한켠에는 자국과 영국의 ‘전쟁범죄’를 강하게 비난했던 위고의 동상과 그의 비난 서신을 새긴 조각이 있는데, 많은 중국인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공권력에 당당했던 위고를 기렸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행사 하루 전날, 영국 맨체스터 주재 중국 총영사관 직원들은 관사 앞에서 홍콩 민주화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갑작스럽게 끌고 들어가 폭력을 휘둘렀다. 폭행 이유에 대해 총영사관 측은 “이들이 우리 주석을 모욕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시위를 했다”며 “누구라도 이같은 상황에서 나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외교부 브리핑에서 왕원빈(王文斌) 외교부 대변인은 이번 사건에 대한 논평 요구에 “시위대의 행위로 총영사관이 위협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해당 답변은 공식 질의응답 목록에서 삭제됐다. 이유를 떠나 사건을 자국 내에서 은폐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의 해명은 놀랍게도 약 150여 년 전 영국이 청나라에 전쟁을 선언하면서 했던 황당한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과거 제국주의시절 유럽 열강의 식민지 지배 등을 늘상 거론하며 비판해왔던 중국이 그들과 차이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위고의 동상 앞에서 그의 강한 비판 정신에 예를 표하던 중국인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라 당황스럽다. 위고의 항의 서한이 단순히 ‘이성의 전당에 대한 무차별적 파괴와 제국주의에 대한 경고’가 아닌 ‘중국인들을 편들어줬던’ 서한으로 격하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마저 든다. 갑작스런 폭력을 당한 희생자나 총영사관 관계자나 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하는 당국자, 그리고 사건이 은폐되는 가운데 위고에 경의를 표하는 사람들 모두 위고가 말한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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