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흥망성쇠로 보는 거대한 미국사

박성준 2022. 10. 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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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꿈꾸는 식민지 애틀랜타
산업도시서 황폐화된 필라델피아
인디언 비애 간직한 래피드시티 등
현지인에 미국사 가르쳤던 韓 교수
美 만든 주요도시 역사·문화 정리

30개 도시로 읽는 미국사/김봉중/다산초당/1만8800원

보스턴-역사와 문화를 가득 담은 가장 미국적인 도시. 애틀랜타-유토피아를 꿈꾸는 식민지, 새로운 남부의 중심지. 밀워키-반항아들의 천국, 가장 미국적인 도시. 뉴올리언스-크리올의 자부심과 전통이 묻어 있는 도시….

남한 면적의 대략 98배에 달하는 미국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처럼 미국 주요 도시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본다. 미국 웨스턴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톨레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샌디에이고시립대학 강단에 섰던 저자였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김봉중/다산초당/1만8800원
가령 미국 독립 기념관과 ‘자유의 벨’이 도시를 대표하는 필라델피아의 오늘날 모습이 그렇다. 식민지 시대부터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었으며, 그 이상을 추구한 도시이다. 헬라어로는 ‘형제애의 도시’. 19세기 내내 필라델피아는 미국 산업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76년 세계 박람회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미국 최초로 세계 박람회가 열린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타자기, 재봉틀, 전화기와 같은 새로운 발명품에 매료되었고, 자유의 여신상의 일부가 될 손과 횃불 동상에 감탄했다. 무엇보다도 박람회의 수많은 건물과 전시물에 동력을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증기기관에 압도당했다.

그러나 발전을 거듭하던 필라델피아는 1929년 대공황으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대공황의 어둠이 걷히고 나서도 필라델피아의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다. 도심은 황폐해져 갔고 백인 중산층은 도시를 빠져나갔다. 대신 남부에서 올라온 흑인들이 도심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흑인 대이동의 중심지가 필라델피아였다. 미국 산업화가 필라델피아에 집약된 만큼 그것의 황폐화는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켄싱턴 거리는 마약에 중독된 ‘좀비의 거리’가 되고 말았다. 도로는 마약에 중독된 노숙인들로 가득하고, 그들은 마치 영화 속의 좀비 같은 괴이한 몸동작을 하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최정상에 있는 미국의 모습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

가장 미국적인 가수로 꼽힐 만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명곡 ‘필라델피아의 거리들’ 뮤직비디오에서도 쓰레기통을 뒤지는 흑인들 사이를 지나치는 남루한 옷차림의 스프링스틴과 함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서부 대개척 시대 인디언이 겪어야 했던 미국 역사가 아로새겨진 미국 내륙 래피드시티는 우리에게 낯선 도시다. 1874년, 사우스다코타 검은 언덕에서 금이 발견됐다. 언덕의 입구에 위치한 래피드시티는 전국에서 몰려든 야심가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검은 언덕은 수족 계통인 라코타 부족의 오랜 생활 근거지였다. 미국 정부도 1868년 그 땅을 ‘파인 리지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지정해서 백인들의 침탈로부터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금이 발견되자 수많은 백인들이 ‘파인 리지 보호 구역’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땅과 인디언들을 유린했다.
‘미친 말’은 미 대륙 원주민의 삶의 터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백인과 투쟁을 벌인 용사로 추앙받는다. 리틀빅혼 전투에서 수족 전사를 이끌고 미국 기병대를 전멸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수족의 한 갈래인 라코타 인디언들은 미국 국부 4인의 얼굴을 새긴 마운트 러시모어에서 27㎞ 떨어진 선더헤드(Thunderhead)라는 바위산 한 면을 깎아 1939년부터 거대한 크레이지 호스의 상을 조각하고 있다. ‘미친 말’의 얼굴은 1998년 완성됐고 지금은 그가 타던 말 부분이 만들어지고 있다. 미친말기념재단 홈페이지 제공
1876년 6월 25~26일 ‘미친 말(크레이지 호스)’이 이끄는 수족 전사들과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 연방군 간의 전설적인 리틀 빅혼 전투가 벌어졌다. ‘미친 말’의 대승이었다. 600명 규모 커스터의 군대 중 무려 268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역사상 인디언 최대 승리로 기억되는 전투이다.

하지만 사실상 인디언의 마지막 전투이기도 했다. 인디언 삶의 구명줄이었던 버펄로가 대륙횡단철도 건설 등 서부 팽창으로 사라지면서 인디언들은 계속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부족들은 하나둘 항복을 했고 결국 ‘미친 말’도 항복했다.

1890년 12월 9일, 미국 기병대는 ‘파인 리지 인디언 보호 구역’에 거주하던 수족을 무장 해제하려고 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젊은 전사 ‘검은 이리’는 총을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쳤고, 그 과정에서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고 말았다. 기병대는 인디언들이 공격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기관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약 300명의 인디언들이 사망했다. 기병대는 큰 구멍을 파서 인디언 사망자 시체들을 몰아넣었고, 부상자들을 방치한 채 떠나 버렸다. 이것이 미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디언 학살 사건으로 기억되는 ‘운디드니 학살’이다. 학살에 가담한 20명의 미군들이 명예 훈장을 받았다. 2001년 미국 인디언 의회에서 그 메달을 비판하며 연방 정부가 그것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학살 현장은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학살 100주년인 1990년에서야 미 의회 상하 양원은 공식적으로 학살에 대한 ‘깊은 사죄’를 표명했다.

‘검은 언덕’에 서린 인디언의 비애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게다가 하필 이곳에 들어선 게 마운트 러시모어 국립공원. 미국 건국 영웅으로 추앙받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얼굴이 ‘검은 언덕’ 바위산에 새겨진 것(1927∼1941)이다. 그나마 마운트 러시모어에서 27㎞ 떨어진 곳에 ‘검은 언덕’을 가리키고 있는 ‘미친 말’ 얼굴이 미국 대통령 얼굴보다 훨씬 더 큰 크기로 새겨졌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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