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제 봉투·부직포 가방 누가 사겠나" 편의점주 한숨

윤혜인 2022. 10. 22. 00: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회용품 내달 24일부터 금지
편의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회용 비닐봉투. [뉴스1]
“비닐봉투 사용이 많은 매장이라 유료화 때도 손님들이랑 갈등이 심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벌써 걱정됩니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봉투가 무료라는 인식이 강하거든요. 제가 있을 때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린 아르바이트 친구들에게 얼마나 뭐라고 하실지…”

서울 성북구에서 12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설모(53)씨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일회용품 규제 정책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다음달 24일부터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전면 확대되며 편의점 및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판매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이번 규제는 지난해 12월에 개정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것이다. 사용 가능한 봉투는 순수한 종이 재질로 만든 종이봉투, 원지 종류·표면처리 방식 등을 명시한 단면 코팅 종이봉투, 다회용 봉투, 종량제 봉투로 제한된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계도기간 운영 여부에 대해 환경부는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편의점, 9월부터 비닐봉지 발주 중단

편의점 업체들은 재고소진을 위해 일찌감치 비닐봉지 발주를 중단했다. GS25는 지난 7월부터 해당 내용을 점포에 공지했고, 9월부터 발주를 중단했다. 세븐일레븐도 9월부터 순차적으로 가맹점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현재 점포 내 비닐봉투는 거의 소진 상태로 최대 1주 분량 정도 남아 있다”고 밝혔다. CU 역시 이달부터 발주를 정지했고, 이마트24는 오는 28일부터 발주를 중단할 계획이다. 비닐봉지 소진에 따라 이달 말부터 일부 점포에서 종이봉투 등을 판매할 예정이다.

점주들은 고객과의 갈등을 우려하고 있다. 비닐봉지보다 최대 20배나 높은 대체재 가격 때문이다. 비닐 대신 구매할 수 있는 종이봉투는 100~250원, 부직포 장바구니 등 다회용 봉투 가격은 500원이다. 종량제 봉투는 크기에 따라 최소 200원에서 최대 1000원이다. 설씨는 “손님의 50%는 물, 술 등을 많이 사는 관광객인데 종이는 물 세 개만 넣어도 찢어질 것”이라며 “그렇다고 누가 편의점에서 500원이나 내고 부직포 가방을 사겠나”라고 우려했다. 오피스 상권인 종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모(65)씨는 “종량제 봉투는 이 지역에서만 쓸 수 있어 직장인들이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품 과대 포장은 그냥 두고 비닐 봉투를 금지하는 게 실효성있는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 일회용품 규제 안내문이 붙어있다. 윤혜인 기자
규제가 시행되는 다음달 24일부터는 카페 및 음식점 내에서 일회용 종이컵 및 플라스틱 빨대, 젓는 스틱 사용도 금지된다. 옥수수 전분이 함유된 생분해성 플라스틱(PLA) 빨대도 금지 품목이다. 포장이나 배달 손님이 아닌 매장 이용 고객에게는 종이, 쌀, 대나무 등 플라스틱이 아닌 다른 재질로 만든 빨대를 제공해야 한다. 비 오는 날 대형마트, 백화점 등 대규모 점포 입구에서 제공하던 일회용 우산 비닐도 자취를 감출 예정이다. 야구장이나 축구장 등 체육시설에서는 더 이상 일회용 응원봉을 사용할 수 없다.

카페 운영자들은 플라스틱 빨대 대체재를 고심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카페 ‘메모아르’를 운영하는 온예린(25)씨는 환경을 생각해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손님에게 쿠키를 제공하고, 플라스틱 빨대보다 5배 이상 비싼 PLA 빨대를 사용해왔다. 종이 빨대도 사용해봤지만 내구성이 약하고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PLA 빨대가 그나마 찾은 대안이었다. 하지만 이번 규제로 매장 내 이용 고객에게 PLA 빨대 제공이 어려워지면서 최근 대나무 풀 빨대를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특유의 향이 난다’고 꺼리는 고객이 있어 다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온씨는 “고객이 만족할 만한 뚜렷한 대안이 없는 데 그냥 쓰지 말라고 하니까 난감한 입장”이라며 “하는 수 없이 다시 종이 빨대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회용컵에 담겨 나온 카페 음료. [뉴스1]
플라스틱 빨대 대신 가장 많이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건 종이 빨대다. 플라스틱 빨대보다 개당 3배 이상 비싸지만 그나마 대체 빨대 중에서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빨대의 시중 판매가는 개당 6~8원, 종이 빨대는 16~25원, 대나무 빨대는 80~90원, 유리 빨대는 500~1500원이다. 종이 빨대 중에서도 더 내구성이 좋고 친환경적인 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수성 코팅 빨대 제조사의 매출도 오르고 있다. 접착제, 플라스틱 코팅층이 없는 종이 빨대를 판매하는 ‘저스트페이퍼’의 운영사 씨앤제이글로벌의 이번 달 종이 빨대 매출은 지난달보다 5배 이상 늘었다. 차원규 씨앤제이글로벌 대표는 “중소형 카페 체인부터 시작해서 대형 업체, 개인 카페 등에서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우뭇가사리와 미역추출물을 활용한 코팅제를 활용한 종이 빨대 제조사 누리다온의 총판 담당 이상길 대표도 “최근 견적 문의와 샘플 요청이 많이 늘었고 매출도 20% 정도 증가했다”고 전했다.

에코백·텀블러 등 오래 써야 친환경적

야구장 내 일회용 응원용품 사용도 금지된다. [뉴스1]
문제는 빨대 가격 부담이 음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장수 전국카페사장연합회 회장은 “협동조합 차원에서도 품질 좋은 대체 빨대를 찾다가 테스트에서 고객의 반응이 가장 좋은 쌀 빨대를 선택했다”며 “쌀 빨대의 가격은 개당 45~55원으로 기존 플라스틱 빨대 가격의 10배”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이어서 “빨대로 인한 비용 부담이 추후 음료 가격에 반영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대체 품목의 친환경성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환경부는 종이 빨대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플라스틱 빨대보다 평균 72.9% 낮다는 전과정평가(LCA) 자료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원료 취득 및 제품 생산’까지만 평가한 것이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소각·재활용 등 폐기과정을 검증하지 않아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친환경적이라고 보기엔 부족하다”며 “일반쓰레기로 배출된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더 환경에 안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종이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플라스틱 원료 폴리프로필렌보다 5배 이상 많다고 분석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실제로 종이봉투, 에코백, 텀블러 등이 플라스틱보다 더 친환경적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여러 번 사용해야 한다. 영국 환경청과 캐나다 환경단체 CIRAIG에 따르면 종이봉투는 3회 이상, 에코백은 131회 이상,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220회 이상 써야 플라스틱보다 더 친환경적이다. 소비용품보다 산업쓰레기 규제가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마포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넷플릭스 환경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에서 해양 쓰레기의 46%는 폐그물 등 어업 쓰레기라고 하더라”며 “이런 것부터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마이클 셀렌버거 역시 저서 『지구를 위한 착각』에서 “매년 바다에 버려지는 900만t의 플라스틱 쓰레기 중 플라스틱 빨대의 비중은 0.03%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내 환경 운동가들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므로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어업 쓰레기 회수나 배달쓰레기 관리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아직 없기 때문에 시행을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그나마 대안이 있는 일회용품 규제부터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종이 빨대의 친환경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화석연료를 없애자는 것이 국제적인 방향이므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우선 대체해보자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친환경 제품 전문 제로웨이스트 매장인 알맹상점의 고금숙 대표는 “산업 쓰레기가 심각한 것은 맞고,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정책을 짜야 하지만 산업 쓰레기 규제와 일회용 쓰레기 줄이기가 동시에 못하는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산업 쓰레기 규제의 필요성이 플라스틱 빨대 금지 정책을 중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고 대표는 “생활폐기물과 산업 쓰레기 모두 줄이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