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궁 복원되면 황제는 이사람.."17년째 적통 임무중" [인터뷰]
▷단순하게 말하자면 '황실의 적통을 잇는 자손'이라는 뜻이다. 실현될 가능성은 '0'에 가깝지만 황실이 복원된다면 가장 먼저 황제가 될 사람이기도 하다. 2005년부터 최근까지 17년간 대중과 언론을 상대로 무수히 많이 설명했지만 스스로도 가끔 호칭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말 자체가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황태손'이라는 칭호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 열강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의 기상을 조금이나마 더 기리자는 차원에서다.
―황실 가계도로 자신을 소개한다면.
▷고종 황제의 증손자 중 한 명이다. 태어나기로는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이강)의 9남 이충길(황실명 이갑)의 장자로 태어났다. 대한제국의 적통은 고종, 순종, 영친왕, 이구 황태손 등을 거쳐 현재로 이어진다.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순종은 후사가 없어, 즉위하던 해에 자신보다 23세 어린 둘째 동생 영친왕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이구 황태손은 영친왕과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대한제국의 마지막 적통 직계손이다. 2005년 이구 황태손도 후사 없이 타계하며 사후 입양 형태로 내가 명목상 양자가 됐다.
―삶의 궤적이 크게 바뀌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황사손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시 현대홈쇼핑에서 방송본부장으로 근무하며 분마다 수백만 원이 오가는 치열한 경쟁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그런데 이구 황태손 빈소에서 전주 이씨 500만명을 위해, 또 국가의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대의를 위해 황사손으로 활동해줄 것을 호소하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황사손의 삶과 사회인의 삶을 병행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낙선재에서 3년상을 치르는 동안 잠시 그 같은 삶을 살아보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황사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
―황사손의 역할은 무엇인가.
▷황실의 대표로서 제사를 주관한다. 황제는 황실의 5대 제향이라 불리는 조경단대제, 종묘대제, 사직대제, 건원릉대제, 환구대제의 초헌관(제사 지낼 때 첫 잔을 올리는 사람) 역할을 맡는다. 조선왕릉 40기에 모시는 제사 또한 황사손 소관이다. 황실 제사는 준비하는 데에만 한 달 이상이 필요하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2001년)된 행사다. 황사손의 역할에는 문화유산의 보호와 전승도 포함돼 있다.
―황사손으로 17년의 세월을 보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철저한 준비 없이 의욕만 갖고 도전한 프로젝트도 많았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일회성 이벤트보다 황사손으로서의 본질을 보여주는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사손의 브랜드화'는 그 같은 맥락에서 시작한 활동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황사손과 같은 존재는 그 자체로도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더하느냐에 따라 존재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현시대에 황사손은 어떤 의미가 있나.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황사손으로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세우는 데 기여하고 싶다. 조선왕조 500년 안에는 영욕의 순간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할 필요가 있는 문화와 예술이 있다. 그 같은 전통을 계승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일각에서는 황사손으로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는 걸 두고 황실 재산 등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며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딱 잘라 말하겠다.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문화재 환수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처음 문화재 환수 운동을 시작했을 무렵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되기 전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국 문화재를 되찾을 수 있는 체계적인 활동이 전무했다. 어떤 면에서는 정부가 문화재 환수를 민간에 일임하는 느낌도 받았다. 활동 초기에는 불교 성향의 단체와 문화재 환수를 자주 추진했다. 당시 경험을 통해 다양한 단체들과 연대하며 이슈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배웠다. 이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종 황제의 투구·갑옷 등 의미 있는 문화재들을 돌려받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으로 문화재 환수에 성공했을 때가 그렇다. 2017~2019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관계자들과 고종 황제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앨런 박사 후손들을 만난 사연이 대표적이다. 이를 계기로 명성황후가 쓰던 '화조도접선'이라는 이름의 부채를 되찾아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도록 기증했다. 일본 국회의원들과 의기투합했던 경험도 인상적이었다. 일본 내 일부 기관들은 시민단체 소속 신분으로는 유물을 관람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황사손으로서 직계 조상들의 유물을 보러 왔다고 말하면 적어도 실체는 확인할 수 있어 환수 활동에 도움을 받았다.
―꼭 환수하고 싶은 문화재는 무엇인가.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고종 황제의 익선관(왕이나 세자가 평상복으로 정무를 볼 때 쓰던 관)과 투구·갑옷이다. 특히 투구는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는 유물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환수하고 싶다. 지난 5월부터는 영친왕과 영친왕비가 살았다는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 클래식 하우스 환수를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은 이구 황태손이 출생하고 영친왕 부부가 대한제국 황실 사람들과 소통한 곳이다. 이 주택은 현재 전범기업인 세이부가 갖고 있으면서 연회장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환수해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에게 관심이 많다.
▷지난 2월 영친왕 부부 성혼(成婚) 100주년 기념식이 앞서 언급한 클래식 하우스에서 열렸다. 본래 결혼 100주년은 2020년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2년 미뤄진 것이다. 이 저택은 볼모처럼 일본에 끌려간 영친왕의 삶이 깃든 문화재다. 전주 이씨 종친들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벌이고, 기업 후원도 요청할 계획이다.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처럼 환수한다면 일본에서 한국을 알리는 거점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영친왕 부부는 일본 안에서도 두 사람을 기리는 움직임이 잡힐 만큼 인지도가 높다.
―타국의 왕실과도 교류하고 있나.
▷영국과 일본 외에도 전 세계에 걸쳐 70여 개 왕실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들과 거점별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기획하고 있다. 2009년 인도네시아 왕실 초청으로 인도네시아를 공식 방문했다. 2015년에는 태국 왕실을 한국에 초청해 창덕궁에서 왕실다도회를 시연했다. 다음달 11일 운현궁에서 대한황실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시민은 물론 각국 대사와 외교관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롯해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역사 갈등이 주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황사손의 역할은 이렇게 복잡하게 꼬인 상황을 조금이라도 풀고 갈등의 압력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일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메타버스에 황실과 관련한 콘텐츠를 구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황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좋은 지식재산이라고 믿는다. 슬하에 두 아들이 있다. 언젠가 황사손의 자리를 이어받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최근에야 진정으로 알게 됐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것이 황사손이라는 자리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이원 황사손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2년 미국 뉴욕공대(NYIT)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미국 케이블 회사인 HBO에서 6년간 PD로 일했다. 1990년 귀국 후엔 광고회사 금강기획에서 5년 동안 방송 제작업무를 담당했다. 이후에는 케이블 채널 현대방송에서 PD로 일했다. 2005년 황사손이 됐다. 이때 '이상협'에서 '이원'으로 개명했다. 2005년부터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총재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대한황실문화원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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