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맥세트 1만3천원, 주유 15만원.."이런 살인물가 처음"[르포]

김기정 2022. 10. 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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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직격탄 유럽을 가다
15년째 파리사는 이민자 가족
"난방비 무서워 온수샤워 못해"
정유사 시위 겹쳐 연료대란
디젤가격 단숨에 60% 치솟아
독일은 '더 추운 겨울' 예고
식빵·감자값 파리보다 비싸
물가공포 틈타 극우세력 득세

◆ 글로벌 인플레 현장 ②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전례 없는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유럽 전역이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프랑스 남부 니스에 위치한 슈퍼마켓에서 한 노인이 힘겹게 채소를 고르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영업용 미니버스를 운전하는 야신 야유니 씨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파리에서 북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솜(Somme) 지역에 위치한 볶음밥 공장을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그는 유럽의 '살인 물가'에 대해 "프랑스에서 15년을 살면서 이번 같은 물가 상승은 처음 경험해 본다"면서 거침없이 말했다. 그는 2007년 튀니지에서 프랑스로 온 이민자다. 아내, 아이 2명 등 네 가족이 파리 인근에서 살고 있다.

야유니 씨는 휴대폰에 생활비 목록을 꼼꼼하게 적어놓고 있다. 그는 "지금은 1유로, 1유로가 중요하다"면서 "올겨울엔 난방비가 폭등할 수 있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예산을 짜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야유니 씨 휴대폰 속 가계부에 따르면 쇠고기는 1㎏에 10유로 하던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4유로로 40%가 올랐다. 점심에 먹는 샌드위치와 음료수 세트 가격은 6.5유로에서 8.5유로로 올랐다.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는 그는 "가스·전기·물 사용량을 매일 휴대폰 앱으로 확인한다"면서 "와이프가 샤워를 했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라고 자조적으로 웃었다.

프랑스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5~6%대로 다른 유럽 지역보다 양호한 상태다. 정부가 일반 가정용 전기료 인상을 막고, 휘발유와 디젤 등 자동차 주유 비용도 보조를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유니 씨처럼 서민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단순한 수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정부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공공기관의 실내 온도를 제한하고 스웨터 등 보온에 도움이 되는 옷을 입을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각종 물가가 수직 상승한 가운데 슈퍼마켓의 식료품 중 가장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은 빵이었다. 밀가루 가격이 오른 탓이다. 프랑스인의 주식인 바게트 가격은 정부의 통제로 1유로로 고정돼 있었지만 일반 빵 가격은 40% 이상 급등했다. 시리얼과 파스타류 등도 가격이 치솟았다. 파리에 있는 한 슈퍼마켓의 매니저인 모하메드 레시가 씨는 "프랑스산 식빵이 전쟁 전에는 1봉지에 1.95유로였지만 지금은 2.44유로로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가스와 전기요금뿐 아니라 디젤과 휘발유 등 자동차 기름값도 폭등했다. 파리는 정유사 노동조합의 파업 사태로 주유소가 연료 공급난을 겪으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프랑스와 접한 국경도시 독일 자르브뤼켄 지역 주유소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주유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디젤 가격은 ℓ당 2.39유로. 현대차 투싼 SUV에 가득 주유하니 111.78유로가 찍혔다. 한국 식품기업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업소장으로 일하는 정솔 씨는 "예전에는 70유로면 가득 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주유소 3분의 1이 파업으로 기름을 팔지 않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프랑스 국경을 넘어야 했다.

독일의 장바구니 물가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20일 유명 슈퍼마켓 체인인 에데카(EDEKA)의 프랑크푸르트 매장을 찾았다. 물가 상승률이 프랑스의 2배에 가깝기에 예상은 했지만 대부분 품목의 가격이 파리보다 훨씬 비쌌다.

가장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품목 중 하나는 식용유로 사용하는 해바라기 기름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공급받던 해바라기 기름은 전쟁과 함께 유럽 전역에서 가격이 급등했다. 프랑크푸르트의 해바라기 기름 가격은 1ℓ에 4.99유로로 파리의 3.7유로보다 1유로 이상 가격이 높았다. 전쟁 전 유럽에선 해바라기 기름 1ℓ를 1.2유로에 구할 수 있었다. 이 밖에 달걀, 감자, 식빵 등도 프랑크푸르트가 파리보다 단위별로 1유로 이상 비쌌다. 프랑크푸르트 맥도널드 매장의 빅맥 세트는 8.49유로로 파리보다 가격이 낮았지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는 3.49유로로 파리보다 50센트가량 높았다.

유럽인들에게 이번 겨울은 큰 고비가 될 전망이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말까지는 가정용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전기료를 올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독일 역시 한 달에 9유로를 내면 대중교통 수단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9유로 티켓' 정책이 지난달 종료되면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상승 압박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국가에서는 경제적 불안감을 자극하고 기성 정치집단의 '대응 실패'를 부각한 극우 세력이 돌풍을 일으키며 유럽 정치 지형마저 바꾸고 있다. 유럽인들이 느끼는 물가 상승은 공포 이상이었다.

[파리·프랑크푸르트 =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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