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붕괴 수준의 엔저'에도 일본서 곡소리 안 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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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일본 도쿄 증권가 니혼바시 가부토초.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대규모 완화 정책 유지 방침을 고수하는 건 조금이라도 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단번에 식을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며 "엔화 가치가 버블 붕괴 후 최저 수준이 된 것은 일본 정부가 구조적 경제 문제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이 누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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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일본 도쿄 증권가 니혼바시 가부토초. 전날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찍고 1990년대 버블 붕괴 때 수준으로 내려앉은 터라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나 싶었지만, 평온했다.
출근하는 증권회사 직원들을 붙잡고 "금융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듣는 얘기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같은 답이 돌아왔다. 이들의 걱정은 인플레이션이었다. 엔저 때문에 수입 물가와 소비자 물가가 올라 기업 채산성이 떨어지고 국민의 삶이 팍팍해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본발 아시아 환란이 닥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 귀 기울이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도 그렇다. 왜일까.
'역사적 엔저' 불구 심각한 위기 상황 아냐
엔·달러 환율이 147엔을 넘은 것은 사상 세 번째다. 주가·채권 가격·엔화 가치가 모두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난 1990년과 일본 버블 붕괴와 아시아 금융위기가 겹쳐 일본 금융회사들의 줄도산으로 '일본 매도'가 발생한 1998년, 그리고 올해이다.
이번 엔저가 역사적 수준이긴 하지만, 일본 경제에 심각한 위기 경보가 켜진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1990년 트리플 약세 때는 주식·채권 가격이 폭락해 금융시장이 휘청거렸다. 1998년엔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닥쳤다. 두 번 모두 일본 금융시장 위기가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번 엔저를 유발한 건 '킹달러 현상'이다. 미국의 긴축 정책으로 달러화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통화 가치가 동반 하락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과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리며 통화 방어에 나섰지만, 일본은행은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엔저를 가장 먼저 꺼야 하는 급한 불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올해 9월 말 기준 1조2,380억 달러)이다. 버블 경제 때 세계 곳곳의 자산을 사들인 결과 지난 30년 동안 대외순자산(대외 채권·대외 채무)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영국, 스위스, 캐나다, 유럽연합(EU)과 함께 미국과 무제한·무기한 통화스와프를 체결 중이어서 이들 달러발 외환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
엔화 '안전자산' 지위는 변해
다만 달러에 버금가는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엔화의 영광도, 일본 경제의 호시절도 저문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발 금융위기 등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선 엔화 가치가 치솟으며 엔고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요즘 엔화는 신흥국 통화와 나란히 가치 하락을 겪는 중이다. 일본 경제의 체질이 약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대규모 완화 정책 유지 방침을 고수하는 건 조금이라도 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단번에 식을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며 "엔화 가치가 버블 붕괴 후 최저 수준이 된 것은 일본 정부가 구조적 경제 문제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이 누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도 "통화는 한 나라의 경제력을 반영한다"며 일본 경제의 취약성이 이번 엔저로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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