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까웠는데..美中 20년 세월 무너뜨린 사건은[BOOKS]

김유태 2022. 10. 2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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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충돌 / 훙호펑 지음 / 하남석 옮김 / 글항아리 펴냄 / 1만6000원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때는 1990년대 초, 주미 중국대사관 경제고문 황원쥔은 다음 내용의 서신을 미국 기업들에 보냈다.

'미국 정부와 의회에 귀사가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고, 양국의 이익 손실 방지를 위해 중국의 최혜국대우(MFN) 지위 유지를 위한 활동을 해달라.'

소련 붕괴와 중국 개혁·개방으로 세계 질서의 지축이 전환되던 당시, 중국 MFN 지위 유지는 무역 자유화의 핵심이었다. 미국 정부는 인권을 이유로 중국의 MFN 지위 갱신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AT&T·엑손모빌·보잉 등 미국 기업들은 '중국 인권 조항과 무역 자유화를 연관시키지 말라'는 서한을 백악관, 상·하원 의원실에 보냈다. 미국 기업이 중국의 '대리 로비스트'였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 미·중 관계는 어떤가. 1990~2000년대 겪은 양자의 조용한 동행은 2010년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분열된 차이메리카, 그사이 무엇이 바뀐 걸까.

훙호펑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신작 '제국의 충돌'은 제2의 신냉전으로 불리는 현대 미·중 갈등이 미소 분쟁식 이데올로기 대립이 아니라 2008년 이후 중국 국유기업의 과잉 생산과 부채 문제에서 빚어졌음을 논증하는 책이다. 미·중의 20년 공생 관계가 깨져버린 원인과 미래를 진단한다. 미국 AT&T의 임원들은 1990년대 중국 손을 들어줌으로써 중국에서 5억달러 이상의 계약을 확보하고 중국 국가계획위원회와 업무협약(MOU)을 맺는 등 이익을 거뒀다. 훗날 중국 정부로부터 '팽' 당하긴 했어도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중국을 대변했음을 부인할 순 없다. 휴스일렉트로닉스도 중국 제재를 재고해달라고 자국 정부에 강력하게 요청했다. 1994년 5월 26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인권 개선과 무관한' MFN 지위 갱신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와 미국 기업 간 '연합'이 거둔 승리였다. 무역 자유화로 이익을 보던 양자의 밀월 관계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변곡점을 맞는다. 저자의 혜안은 여기서부터 나타난다. 중국은 국유기업들의 생산물 과잉 축적과 되풀이되는 부채 문제로 위기에 봉착한다. 중국 정부의 선택은 이랬다. 미국 시장에서 외국 기업을 압박해 공격적으로 나서고, 아시아권 개발도상국에 추가로 진출해 수익성 회복에 나서기. 문제는 중국의 불가피한 선택이 미국 기업의 쇠퇴와 동일시된다는 점이었다. 이제 중국의 성장과 미국의 이익 사이엔 제로섬 관계가 형성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도 중국을 압박했다. 두 제국의 충돌이 본격화된 것이다. 세계 경제에서 미·중 G2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40%, 국방비는 절반에 달한다. 세계 질서의 혼돈은 예정된 바였다. 혹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거침없는 선택을 미·중 갈등의 불씨로 보기도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이 갈등이 종결될 기미는커녕 확전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트럼프 탓만 해선 곤란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제 저자는 미·중 신냉전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우리는 신냉전이란 단어에서 자유시장과 권위주의 사이의 갈등을 예견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자본 간 경쟁이 신냉전 핵심이다.'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저자는 미·중 양국의 경쟁을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 관계의 재연으로 분석한다. 중국의 불안감은 과거 독일과 닮았다는 것. 저자는 시진핑 정부가 공격적으로 나설수록 중국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일이며, 동시에 자본 간 경쟁은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본다. 다행히 독일보다는 중국이 '덜' 군국주의적이란 점에서 낙관론을 잃지는 말자고 덧붙인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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