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를 붕괴시키고 있다" WSJ

강영진 2022. 10. 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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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러시아 민족 인구감소 막으려 비러 민족 위주로 징집
우크라 점령지 슬라브인 강제 납치도 러민족 감소 대책
1차대전 때 회교도 징집하려다 제국 붕괴 전철 밟을 듯

[볼고그라드=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부분 동원령에 따라 징집된 예비군들이 29일(현지시간)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기차에 오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2.09.30.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련을 부활시키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오히려 러시아를 해체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글쓴이는 마이클 호다르코프스키 미 로욜라대 역사학 교수다.

서방 언론들은 수십년 동안 푸틴을 대단한 전략가로 치켜세워왔다. 그러나 지난 8개월 동안의 과정은 전략적 꼼수가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나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푸틴은 많은 것들을 약속했다. 2020년까지 러시아를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이 그중 하나다. 그런데 수백만명의 러시아인들이 서방으로 탈출했다. 러시아 경제는 여전히 석유와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1인당 국내총소득(GDP)는 2013년 대비 60% 가량 줄었다. 인구감소를 막으려는 정부 노력이 실패했고 30만명을 동원하겠다는 징병령을 피해 30만명 이상이 해외로 도피했다. 탈출하지 못하거나 뇌물로 징병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러시아 동부와 남부의 가난한 지역 출신들이다.

이런 암울한 장면들이 의미하는 건 분명하다. 푸틴은 러시아의 위대함을 부활시키기는 커녕 마지막 러시아 제국의 붕괴를 이끌고 있다. 러시아는 부정할 수 없는 식민 제국이다. 여러 곳을 정복한 러시아지만 난폭하게 식민지를 정복했던 서방과 달리 원주민들이 러시아의 보호를 원하며 러시아의 통치는 순수하다고 강조해왔다. 이같은 현실과 수사의 차이는 현재의 "러시아 연방" 지명에도 나타난다.

러시아에는 21개 공화국이 있다. 각각 명목상 비러시아 민족국가들이다. 소련 시절 중앙정부가 영토 경계선을 긋고 각 공화국에 자치권을 부여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 이들 소공화국들이 진정한 행정적, 정치적 자율권을 요구했다. 보리스 옐친의 새 민주주의 정부가 이를 대폭 받아들여 체첸을 제외한 나라들과 조약을 체결했다. 체첸공화국이 완전한 자치권을 요구하면서 타협을 거부하자 옐친 정부가 파병해 1994~1996년 1차 체첸전쟁이 벌어졌다.

몇년 안되는 민주주의 기간 동안 금기 사항이 다시 거론됐다. 한 여론조사에서 러시아가 원주민들을 복속시키면서 팽창해온 제국주의라는 점이 부각된 것이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자유와 공개 토론을 금지했다. 그는 체첸의 독립을 잔인하게 진압하고는 원주민들의 "자발적 러시아 가입 결정"을 축하하는 행사를 열도록 지시했다. 원주민들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자치 공화국의 국경을 지워 러시아 행정기관으로 통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 정부는 원주민 언어 사용을 줄이도록 지시했으며 러시아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지방관으로 임명했다. 2017년 7월 러시아 정부는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된 자치 공화국 타타르스탄을 폐지했다.

푸틴과 지지세력들로선 이른바 러시아화의 속도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러시아정부는 러시아 민족의 인구감소가 큰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러시아민족의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반면 비러시아 민족의 인구는 빠르게 늘었다. 2050년이면 러시아에 회교도 인구가 다수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푸틴은 "특별하지만 위험해진" 러시아 유전자에 집착했다. 그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슬라브인을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모든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모스크바 정부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이같은 푸틴의 생각은 1930년대 나치와 닮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주로 아이들 위주로 우크라이나인들을 납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의 다민족국가적 특성이 단일국가의 이상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전부터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면서 러시아화의 해법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러시아인을 대거 학살하면서 말이다. 2월 침공 이래 러시아 정부는 불법 합병한 크름반도의 타타르인 등 비러시아인들을 주로 징집했다.

그러나 비러시아인 지역들이 모스크바 정부의 비양심적 계획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최근 몇 주 새 다게스탄과 바슈코르토스탄, 시베리아 등지의 회교도 지역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체첸이 징병 할당량을 모두 채웠다고 선언하자 시베리아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야쿠티아가 뒤를 따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같은 시위의 중요성을 놓칠 리 없었다. 지난 9월2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19세기 북코카서스 지도자로서 30년 동안 대러 항전을 이끈 지도자 이맘 샤밀 기념관 앞에서 연설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코카서스 주민 등 비러시아 민족을 향해 자식들이 우크라이나의 들판에서 목숨을 잃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그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같은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역사를 살펴야 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정부는 중앙아시아 회교도를 징병하려 하다가 1916년 여름 반란을 촉발했다. 이를 진압하는데 수천명의 러시아군이 투입돼 몇달 동안 고전해야 했다. 결국 참전한 회교도는 한 사람도 없었다. 내부 소요에 대처하기 위해 군대를 최전선에서 빼야했던 러시아는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다. 6개월도 채 안 지나 차르 정부가 붕괴했다.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군인들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있는 러시아 정부도 머지않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수백년 동안 모스크바의 통치에 억눌렸던 비통과 울분이 군사적 갈등과 내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 작금의 러시아군 패배를 감안하면 그리 멀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제든 그런 일이 벌어지면 러시아는 차르 제국이나 소련처럼 산산조각날 것이다. 소련을 부활시키려던 사람이 러시아 최후제국의 황혼을 재촉하는 건 아이러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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