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들 '누드', 탈의가 아닌 탈피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2. 10. 2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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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사진출처=(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스틸컷

(여자)아이들은 걸그룹의 기준을 스스로 다시 설정한다. 신곡 '누드' 뮤직비디오 2분 20초 가량에서 전소연은 돌아선 채 과감하게 상의를 탈의한다. 긴 머리카락에 몸의 대부분이 가려졌지만 옷을 벗는다는 행동 자체만으로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장면을 단순히 옷을 벗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건 어설픈 접근이다.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자, 그 공간이 SNS를 빗댔다는 점이 이 장면의 핵심이다. 그리고 옷은 벗었지만 대부분 가려진 맨살과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 전소연의 뒤통수가 의미하는 것은 고차원적이다. 

신곡 제목이 '누드'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은 파격 노출이나 섹시 콘셉트로 점철된 음악과 퍼포먼스를 예상했을 지 모른다. 실제로 걸그룹의 '섹스 어필'은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건 은근하게 드러내건 대부분의 팀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해오던 하나의 수단이다. (여자)아이들은 이러한 '섹스 어필'이 흔하게 자행되어온 걸그룹판에 스스로 미끼가 되어 '소비자'에게 매서운 일갈을 날린다. 그리고 이들의 낚시는 성공적이다. '섹스 심볼'인 마릴린 몬로 분장까지 해가며 야한 것에 대한 온갖 기대감 내지는 상상력을 유발하고는, "야한 작품을 기대하셨다면 Oh, I'm sorry 그딴 건 없어요"라며 외설에 기대를 품은 이들을 대놓고 힐난한다. 심지어 "환불은 저쪽"이라며 쿨하기 그지없는 애티튜드까지 보여준다. 

'누드'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겉치레는 벗어 던지고 꾸밈없는 본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장 화려하게 꾸미고 제 자신을 버려야 생존할 수 있는 이 판에서,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누드'라는 단어는 누가 봐도 외설의 의도가 충분하게 담긴 단어지만, 이 곡의 영문은 'Nude'가 아닌 'Nxde'다. 스펠링 U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X를 집어넣으며 풀이를 과감하게 비꼬았다. U는 곧 You가 되어 '당신' 내지는 '대중'이라는 범위로 대상을 확장하고, 그 자리에 "틀림"을 뜻하는 X를 집어넣으며 대중의 바람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미로 곡의 풀이를 확장한다. 

사진출처=(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스틸컷

"싸가지없는 이 story에 무지 황당한 야유하는 관객들", "다신 사랑받지 못한대도 yes I'm a nude" -(여자)아이들 '누드' 가사 중

(여자)아이들은 이 낚시가 야유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도, 혹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한 상태로 자신들의 맨 모습을 꺼내놓았다. 물론 이들의 화장, 커스튬, 퍼포먼스는 떼깔이 곱다. 이들이 의미하는 맨 모습이라는 건 굳이 예쁘거나 섹시한 걸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응당 걸그룹이라면"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던 대중의 니즈를 더이상 따라가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큐트, 섹시, 크러시 등 자신들이 내고짓는 모든 행동의 주체는 대중이 아닌 이제 자신들에게 있다는 포고다. 

멜로디에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 '하바네라'의 멜로디를 차용한 것도 무릎을 치게 만든다. 너도 나도 할 것없이 샘플링이 대세가 된 요즘 가요판에서 (여자)아이들이 '하바네라'의 멜로디를 차용한 것은 단순히 대중성을 위한 접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시 여인 카르멘이 상징하는 자유와 비극의 스토리를 염두에 둔, 샘플링마저 고차원적인 접근을 통해 매끈한 음율을 만들어낸다. 뮤직비디오에서 마릴린 먼로의 유명 영화 장면을 오마주한 것도 같은 원리를 따른다. 마릴린 먼로는 섹스 심볼로 불리며 화려하면서도 백치미 이미지의 페르소나를 지녔으나, 실제로는 매우 똑똑했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여배우 최초로 독립적인 프로덕션을 설립했을 정도로 진보적이었고, 여러 지식에 해박한 지성인이도 했다.

(여자)아이들의 의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양산형으로 기획돼 키워지면서 온몸으로 느꼈을 그 괴리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게 됐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멤버이자 그룹의 프로듀서인 전소연은 생각을 넘어선 행동력으로 그룹의 정체성을 매듭하고, 이를 멤버들과 좋은 합으로 함께 완벽하게 이행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걸그룹이 되어가고 있다. 현직 걸그룹 중 작곡가나 작사가가 아닌 앨범 전체를 관장하는 프로듀서라는 직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는 전소연일 것이다. 한국에서 아직은 많지 않은 여성 음악 프로듀서의 등장이기도 하다. 게다가 다방면으로 능력을 보여주면서 효과적으로 판을 벌릴 줄 안다. (여자)아이들의 '누드'는 탈의가 아닌 허물과 허울을 벗겨낸 탈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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