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50엔'의 거대한 의미, 일본열도 위기일까?

서영민 2022. 10. 2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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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러 = 150엔" 찍었다

엔화가 달러당 150엔 선을 넘어섰다. 1990년 이후 처음이다. 32년 만이다. 엔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30% 넘게 떨어졌다. (115엔 → 150엔)


우리 원화도 그렇고 달러에 대비하면 가치가 다 떨어지지 않았냐고? 그렇긴 한데 좀 다르다. 일단, 원화 가치 하락 폭은 20% 선에 그친다(1,190원→1,430원).

그래서 원·엔 환율은 100엔당 950원 선까지 내려왔다. '일본 여행가기 좋은 때다.' 이런 말이 나온다. 꼭 가겠단 말이 아니다. '해외 여행을 가면 여행경비가 가장 적게 들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물가 참 싸졌다' 이런 말이다.

근본적으로는 더욱 진정한(Real) 환율의 지표로 보면 차이는 극명하다. 한 나라 화폐의 가치를 제대로(Effective) 보여주는 환율지표가 있다. 실질 실효환율(REER : Real Effective Exchange Rate)이다. 단순 명목환율이 아닌 교역 상대국가들의 '물가'와 비교한 환율을 보여준다. 다이아몬드처럼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영원한' 비교의 잣대로 평가받는다. 실질실효환율이 100이면 유지, 그 아래면 쇠락, 그 위면 강화다.

그래프를 보자. 여기서 일본의 지표는 도드라진다. 주요국과 비교해 도드라지는 추세가 2020년 이후 더 분명해졌다. 9월 월간 기준으로 58을 기록했다. 지난 반세기(50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추락'이라 말하지 않고 표현할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 2. 더 놀랄 일이 생길 수 있다

올해 연말 지나고 나면 정말 깜짝 놀랄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 순위가 바뀔 수 있다(구매력평가,PPP가 아니다). 1주일 전에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 경제전망을 보면 올해 1인당 국민소득 예상액은 한국 33,590달러, 일본 34,360달러다. 아직은 일본이 앞서지만 차이는 770달러에 불과하다.

그런데 작년엔 이 숫자, 한국은 35,000달러, 일본은 39,300달러였다. 한국이 4% 정도 줄 때, 일본은 12.6% 줄었다. 경제 상황과 엔화 약세가 동시에 작용했다.


그리고 엔화 추락은 진행형이다. 올 해는 아직 두 달 이상 남았다. 일본 국민소득 기준으로 2% 살짝 넘는 770달러는 엔화가 조금만 더 가파르게 떨어지면 역전될 수도 있다.

■ 3. 왜 그렇게 된 건가?

① 우선은 일본 산업의 쇠퇴가 가장 큰 원인이다

성장이 없다. 반도체같이 부가가치 높은 중간재 산업은 한국과 타이완이 가져갔다. TV나 냉장고도 삼성, LG가 전 세계 휩쓴다. 일본의 브랜드는 퇴화하고 있다.

아, 우리에게 무기로 사용했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은 여전하다. 여전하고 잘하고,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 있긴 하지만 소재·부품·장비일 뿐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② 디플레이션 늪에 빠졌다

1990년대 부동산값 폭락 이후 디플레이션 늪에 빠졌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뼈아픈 것은 정책 실패다. 인위적 환율 상승(1985년 플라자 합의)을 용인하면서 내수부양 성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미국도 이겼다'는 경제적 자신감의 발현이었지만 거대한 오판이었다.

경기 부양이 지나쳐 거품이 커졌다. 또 너무 급하게 꺼트려서 디플레이션이 왔다. 디플레이션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 노벨상 받은 버냉키가 왜 '헬리콥터 벤'이 되었나? "디플레이션이 올 것 같으면 하늘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막겠다"고 말해서다. 일본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 가기 좋다는 이유가 다 있다. 10년 전 밥값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20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지간한 점심은 늘 900엔 아래다.

임금, 월급도 그대로다. 그래서 대졸 초임에서 한국이 일본 역전한 지는 오래되었다. 성장이 없고 디플레이션은 장기 지속하니 백약이 무효다.

③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엔저는 국가적 목표였다 : 아베노믹스, '세 개의 화살'

이제는 일본도 플라자 합의가 실수였고, 내수 부양도 실수였고, 너무 과감한 거품 진압도 실수란 걸 안다. 그래서 이젠 그 전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엔화 가격이 안정되고(낮아지고), 산업엔 경쟁력이 넘치고, 수출은 너무나 잘 되던 시절.

모두들 일이 잘 안되고 나면 '좋았던 요순시절'로 돌아가려고 한다. 인간 본능이다.

그런데 엔저가 잘 안 온다. 그래서 나온 게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이다. 화살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동시에 세 개를 쏘면 안 부러진다.
1. 대담한 금융정책(양적 완화)
2. 정부 재정 지출 확대
3. 성장 추진


1, 2번으로 엔저를 만들고 디플레를 탈출하며 3으로 수출 경쟁력을 되찾는다. 된다!! 된다!! 이게 원했던 그림이다.


■ 4.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나 원하던 봄은 아니다. 우선 미국의 금리 인상기, 글로벌 긴축기에 혼자 금리를 못 올린다. 그뿐 아니라 장기금리 고정을 위한 무제한 금융완화 개입(YCC·중앙은행이 금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채권을 사거나 파는 정책)도 계속한다. 세계 경제에서 고립되고 있다.

내수 물가가 여전히 2% 대여서기도 하고 나랏빚이 너무 많아서기도 하다. 우리는 50% 안팎의 부채비율에 걱정하는데 일본은 250% 안팎이다. 국채 금리 1% 오르면 나랏빚은 가만히 둬도 해마다 2%p 안팎 늘어난다. 한국은 가계부채 때문에, 일본은 나랏빚 때문에 걱정한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엔저가 소용없는 수출환경이다. 잃어버린 30~40년 사이 상황이 너무 변했다.

① 제조 대기업들이 생산시설을 국외로 뺐다(토요타 빼고). 즉, 어차피 제3국에서 생산해서 제3국으로 수출한다. 엔저와 무관하다.

② 기업이 번 돈을 엔화로 환전하지 않는다. 엔화 가격이 계속 내려가니 엔화 보유할 이유가 없다. 즉, 일본기업이 번 돈도 일본 열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환전한 순간부터 손해인데 왜 바꿔?

③ 공급망 악화 때문에 수입물가가 오르는데, 엔저 때문에 더 오른다.

올 상반기 일본은 11조엔(우리 돈 약 105조 원) 이상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역시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근본 문제는 국제 경쟁력이고 정책실패다. 엔화 가치만 떨어진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다.

■ 5. 정말 한국과 일본의 순위가 바뀌나?

1인당 국민소득 순위는 바뀐다. 올해가 아니어도 조만간 바뀐다. 일본 안에서도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과 비교하니 정말 부끄럽다. 이런 목소리다. 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몇 년 전부터 계속 경고하고 있다.
'일본은 가난해지고 한국은 부자가 된다.'
'이제 G7 자리를 한국에 뺏긴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돈 많은 일본인들이 열도를 버리고 떠나고 있다.'


말 그대로 '팩폭' 중이다. 이 석학의 계산 기준으로 엔화가 150엔이 되면 한일 1인당 GDP가 역전된다. 물론 원화도 같이 약해지고 있으니 상황이 꼭 이 석학 말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 6. '엔저' 부른 장본인도 우려한다

지난달 일본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했다. 단 2~3일 개입했지만, 우리 개입의 3배 규모였다. 21세기에는 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엔저를 용인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지만, 그 뒤로 오히려 엔화 하락은 가속화 했다.


이제 중앙은행장 구로다도 우려하는 언급을 한다.

"최근의 엔화 약세 진행은 급속하고 일방적이다. 미래 불확실성을 높이고, 우리 경제에 마이너스(부정적)로 바람직하지 않다."

구로다는 고 아베 전 총리를 도와 엔저를 만들고, 중앙은행이 국채는 물론 일본 주식까지 사게 한 정책의 주인공이다(일본 주식시장 가장 큰 손은 일본 중앙은행이다).

위기 때마다 엔을 산다던 '와타나베 부인'(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외화로 환전한 뒤 해외의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 투자자)도 이번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일본 투자자들도 이제는 엔화가 더 내릴 것으로 보고 손해 볼까 봐 관망한다.

■ 7. 혹시 큰일 나는 거 아닐까?

큰일 나면 안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은 왜 '탐욕적인' 금융기관을 죄다 살렸을까? 결제 시스템의 중요한 행위자가 흔들리면 시장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위기를 막으려면 중요 행위자(은행 등 금융기관이다) 안전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어야 한다. (버냉키가 올해 노벨상 받은 게 대략 이 점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으로 보자면 일본이나 중국이 그런 중요 국가다. Too big to fail

아시아가 다 넘어갈 수 있다. 우리도 위험할 수 있다. 1997년이 그랬다. 일본도 좀 위험했고 나머지 아시아 국가는 위기로 갔다.

환율은 오묘한 지표다. 수출·입 경쟁력을 좌우하고, 또 한 나라의 경제 상태도 보여준다. 일본의 환율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쇠퇴하기만 하는 것 같은 일본의 국운이 너무 급하게, 너무 빨리 쇠퇴하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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