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에서 못잡았던 '투기꾼', 尹정부 되자마자 사라졌나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한국 부동산원이 시세 조사를 시작한 2012년 5월 이후 가장 가파른 기울기를 보이며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로 매물이 늘어난 이후 그달 마지막 주부터 시세 반영되며 21주 연속 하락했다. 정권 교체와 동시에 집값에 끝 모를 하락세가 나타난 것이다.
매매가가 크게 하락하자 깡통전세 우려까지 나오는 등 전·월세 시장의 모습도 변했다. 집값 폭등에 임대차 3법을 도입, 폭탄을 2년 뒤로 미뤄둘 때와는 부동산 시장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는 특별할 것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폭등했던 집값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처럼 20여 회씩 부동산 정책을 우수수 쏟아내지 않았다. 다만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배제' 하는 등 내는 정책마다 문재인 정부 지우기라는 평가만 꾸준히 받았다. 정책을 원상복귀 했더니 집값도 원상복귀 하는 격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설명을 빌려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호승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해 4월 1일 "국민들께서 실망하고 어려운 점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적인 현상만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기존의 투기를 억제하는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동산 공급에 있어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증가해 돈이 부동산에 몰리면서 가격이 올랐고, 투기꾼까지 나오면서 정부가 집값을 통제하기 어려워졌다는 투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소수 부자가 다주택을 보유하는 것이 집값을 올리는 원인으로 보고 다주택자를 겨냥해 규제했다.
여기에 문 전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가구 수가 급증하면서 우리가 예측했던 수요가 더 초과하게 됐다"는 말도 했다. 과거에는 2명, 3명이 한 가구를 살았다면 1인 가구 증가로 필요한 주택 수가 급증한 것도 주요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 말대로라면 윤석열 정부에서 집값 하락은 '금리 인상 영향'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전대미문의 역대급 성과가 된다. 1인 가구 급증 추세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5월부터 갑자기 사라지거나 다인 가구 급증 추세로 변했을 리 없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여전히 다주택자는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계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는 국내 보유주택 수 상위 1%에 속하는 14만 6966명이 소유한 주택 수가 106만 3608채(1인당 평균 7.2채, 전체 주택의 5.7%)라고 집계했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수 있다며 미뤘던 민간 주도 재개발·재건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집값이 떨어졌으니 부자 입장에서는 집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기 좋은 환경까지 마련됐다. 윤석열 정부가 이 모든 악조건을 뚫고도 집값을 잡아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11일 임기 만료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의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인수위의 부동산 정책 전면 수정 움직임에 집값 상승이 예상된다는 듯 "어렵게 안정세를 찾아가던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반적인 규제 완화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문 전 대통령은 퇴임을 직전인 지난 5월 4일에는 당시 윤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해 "다음 정부의 경우에는 우리 정부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거의 부정하다시피 하는 가운데 출범을 하게 됐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정부의 성과·실적·지표와 비교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5달이 지난 지금 부동산 정책만큼은 지표에서 뚜렷하게 비교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우리와 많은 점에서 국정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고 느끼고 있지만 철학이나 이념을 떠나 오로지 국민과 국익, 그리고 실용의 관점에서 우리 정부가 잘한 부분들은 더 이어서 발전시켜 나가고 우리 정부가 부족했던 점들은 거울삼아서 더욱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했던 부동산 정책을 다시 꺼내 들고 똑같은 방법으로 2번째 실패했다면, 이제는 국익을 위해 다음 정부에서 이어받지 말고 '폐기처분'해야만 하는 정책도 있지 않을까.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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