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 60년..또다시 전세계 엄습한 '핵 전쟁' 공포
바이든 '아마겟돈' 언급하며 긴장 최고조..협력으로 공포 타개
(서울=뉴스1) 이유진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류 멸망을 뜻하는 '아마겟돈'을 경고하며,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반세기 만에 전 세계는 또다시 최대의 핵 전쟁 공포 위협에 휩싸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더불어, 북한의 핵 도발 수위도 극에 달하고 이란 역시 2018년 미국의 핵 합의(2015) 탈퇴 후 핵폭탄 1개를 제조할 분량의 우라늄 농축분을 확보하는 등 얽히고설킨 복합한 국제 정세 속, 최근의 핵위협과 긴장 관계를 60년 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교훈 삼아 풀어가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최악의 핵 전쟁 막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는 1962년 10월22일부터 11월2일까지 약 2주 동안 소련의 핵탄도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대치해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를 말한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러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흐루쇼프 소련 정권은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군사 전력상 미국 등 동맹국에 크게 뒤처지고 있던 소련은 미국 플로리다 반도 끝에서 불과 230㎞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쿠바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했다.
사실상 미 본토를 자국의 미사일 사정거리 내에 놓으려고 한 것이다. 실제 후르쇼프 당시 소련 정권과 카스트로 쿠바 정권은 미사일 기지 건설에 합의하고 군사 인프라 등을 쿠바에 운송하기 시작했다. 1962년 9월 미국 언론은 소련 선박이 쿠바로 무기를 호송 중이라고 보도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에 대한 공격 등은 피하고 격리를 결정하는 등 소련과 협장을 여지를 남겼지만, 소련이 핵 미사일 기지 철거와 파괴에 응하지 않으면 전면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등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상황 속 소련은 10월26일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을 것으로 약속하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다음날인 27일엔 쿠바의 소련 미사일기지와 튀르키예의 미국 미사일기지의 상호 철수를 제안했다.
결국 미국이 10월 26일의 제안을 수락할 것을 결정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는 겨우 마무리됐다.
이 같은 쿠바 사태를 계기로 1963년 미-소련 간 핫라인(hot line:긴급통신연락선)이 개설됐고, 핵전쟁 회피라는 공통의 과제 하에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모스크바조약)'이 체결됐다.
◇ 쿠바 사태 60년…미-러 갈등 극으로, '핵 전쟁' 공포 엄습
8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푸틴 대통령이 '핵 공격' 카드를 꺼내들자,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도 인류 공멸 가능성을 언급하며 국제 사회의 긴장감은 극에 치달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일 1962년 케네디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로 ‘아마겟돈(인류 최후의 전쟁)’의 가능성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며, 위협 수준이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는 푸틴의 핵위협이 "농담이 아니었다"며 "우리는 푸틴의 출구(off-ramp)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 존립이 위태롭다고 판단되면 선제 핵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한 러시아 군 독트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0년 마지막으로 개정된 러시아 군 독트린은 '국가 존립에 위협이 있을 때'는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전력으로 공격해오는 적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파괴력이 약한 전술핵이라고 해도 한쪽이 핵무기를 쓰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바이든 대통령은 거듭 경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4개 점령지와 합병 조약을 체결한 뒤 한 연설에서 "러시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토를 지킬 것"이라며 과거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에 핵무기를 사용한 전례를 언급하며 핵 위협을 더욱 고조시켰다.
◇ 60년 전보다 더 복잡해진 '셈법'…푸틴의 향후 계획은 전문가들은 쿠마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의 서기장 흐루쇼프가 원했던 것은 분명했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 소련 간 핵 격차를 줄이고 서방을 압박하고 싶었던 흐루쇼프의 뚜렷한 목적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쿠바 혁명 정부의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는 1959년 쿠바 혁명 성공 이후 유나이티드 후르츠로 대표되던 여러 서방계 자본을 추방하고 토지를 국유화하는 등, 미국이 중남미에 다져놓은 정책적 기반을 흔들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CIA를 통해 피델 카스트로 제거를 시도했고, 피그만 침공을 진행하는 등 쿠바에 대한 물리적, 경제적 압박 수위를 높였다.
쿠바 정부는 피그만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지만, 세계 최강국 미국의 앞마당에 있는 현실상 미국을 혼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소련에 협력을 요청했던 것이다.
1961년 베를린 위기로 인해 위상이 낮아진 후루쇼프는 소련 내에서는 국내 기관 재배치 문제와 22차 소련공산당 당대회를 통해 위신 추락을 경험했으며 외부적으로는 마오쩌둥의 도전으로 위기를 느끼게 됐다.
이에 흐루쇼프는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쿠바의 신생 공산 정권인 카스트로 정권을 보호하며, 서방 세계와의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쿠바에 장거리 미사일 기지 설치를 비밀리에 추진하게 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발발하게 됐던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팍스 아메리카'로 상징되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대신 신(新) 냉전 시대를 열고 러시아의 경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복잡한 푸틴 대통령의 셈법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60년 만에 전 세계를 엄습하고 있는 '핵 전쟁' 공포. 제 3차 세계대전과 핵 전쟁을 막은 쿠바 사태를 교훈 삼아 케네디와 후르쇼프와 같이 미국과 러시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 물밑으로 뿐 아니라 적극 협력 테이블로 나와 오늘날의 핵 전쟁 공포를 타개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rea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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