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채 발행 사상 최대..왜
기사내용 요약
1~7월 기업 조달 자금조달 76.6%가 대출
9월 기업대출 9조4000억↑…사상 최대폭 증가
회사채 금리 상승에 기업 대출로 몰려
금융당국 LCR 규제 정상화로 은행채 발행 늘어
금융위 "LCR 규제비율 정상화 6개월 유예"
한은, 은행채 적격담보증권 포함 여부 고려 검토중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회사채 시장 한파로 기업대출이 급증하자 은행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면서 지난달 은행채 발행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은행채 발행량이 늘면, 수급 불균형으로 채권금리를 끌어올려 대출금리가 오르는 등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9월 한 달 간 은행들의 은행채 발행액은 25조8800억원으로 전체 채권 발행액의 40.1%를 차지했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해 들어 지난 20일까지 은행채 발행액은 168조6490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발행액(183조2123억원)의 92.1%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전체 채권대비 은행채 비중도 25.8%로 지난해(22.15)보다 높다.
9월 은행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도 7조4600억원을 기록해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이번 달 들어서는 순발행액이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기준 10월 은행채 순발행액은 마이너스 200억원을 기록했다. 만기도래 등으로 상환액이 13조8000억원으로 발행액(13조7800억원)보다 더 많았던 영향이다.
올들어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회사채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기업의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 지고, 발행 규모도 줄어들면서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 대신 은행 대출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들은 은행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면서 은행채 발행이 급증했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자금조달 시 자체 보유자금이나 회사채 발행, 은행대출 등 외부자금을 조달해 활용한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7월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조달한 자금규모는 93조4000억원으로 지난해(91조8000억원)나 2013~2019년 평균(41조5000억원) 보다 많다. 이 가운데 은행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이 71조7000억원으로 나타나는 등 전체 자금조달의 76.6%를 대출을 통해 했다. 반면 이 기간 회사채 발행은 1조8000억원 감소했다.
실제로 기업대출은 매달 사상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9월 기업대출은 전월 말 대비 9조4000억원 늘어난 1155조5000억원으로 집계돼 9개월 연속 증가했다. 회사채 시장 위축에 따른 기업 대출 수요와 은행의 기업대출 취급 노력 등이 맞물리며 큰 폭 증가했다. 9월 기준으로 2009년 6월 관련 통계 속보치 작성 이후 가장 큰 폭 증가했다.
한은 관계자는 "회사채 금리가 상승하고 발행도 어려워지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회사채 대신 은행대출을 활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며 "통상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중소기업의 대출 뿐 아니라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대기업도 은행대출 의존도를 높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과거 발행한 회사채가 만기도래 했지만 재발행이 어려워지자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으로 만기도래 회사채를 상환하는 경우도 있다"며 "올해 회사채 만기도래 기업의 회사채와 은행대출 조달상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 중 상당수가 회사채를 순상환하면서 비슷한 규모로 은행 대출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융 당국이 코로나19 대유행 때 완화했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를 정상화하자, 규제 준수를 위해 은행채를 발행해 자금을 충당하고 있는 점도 은행채 발행을 늘리는 작용을 하고 있다. LCR은 급격한 외화 유출 상황에서 신속하게 매각해 외화를 확보할 수 있는 미 국채 등 안전 자산의 비율을 말한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유동성 위기 발생 시 금융사가 정부 지원 없이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에 따르면 신한·국민·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6월 말 기준 평균 LCR은 97.7%로 기준치인 100%를 밑돌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LCR 규제 미달 은행들이 LCR을 높이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면서 은행채 순발행 규모가 확대됐다"며 "은행채의 대규모 발행이 계속 이어질 경우 회사채, 여전채 등 여타 신용채권 수요를 위축시키는 구축(驅逐) 효과가 나타나거나 이들 채권의 스프레드를 확대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금투협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과 회사채(AA-등급) 3년물 간 차이인 '신용스프레드'가 19일 125bp(1bp=0.01%p)로 벌어지면서 2009년 8월 13일(129bp) 이후 13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과거 장기평균(2012~2021년중 43bp)과 코로나19 위기시 고점(78bp)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은행채 발행이 급격하게 늘자, 금융 당국과 한국은행도 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 논의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20일 오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과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은행권의 자금조달·운용 현황 및 단기자금시장 등 금융시장의 동향을 점검했다. 금융위는 현재 진행중인 은행 통합 LCR 규제비율 정상화 조치를 6개월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85%로 완화했던 LCR 비율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하기로 하면서 올해 말까지 LCR 비율을 92.5%로 높여야 하지만, 이번 조치로 내년 6월로 늦춰졌다.
한국은행도 지난 18일 열린 자금시장협의회 회의에서 은행채 발행 확대에 따른 시장 불안 해소를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은행채를 한은의 적격담보증권, 차액결제이행용 적격담보증권과 공개시장운영 대상증권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격담보증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에 대출할 때 인정해 주는 담보물이다. 현재는 국채, 통화안정증권, 정부보증채만 포함된다. 한은은 은행채를 적격담보증권, 차액결제이행용 적격담보증권과 공개시장 운영 대상증권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놓고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은행채를 한은의 유동성 공급 수단의 적격 담보로 인정하는 것과 관련 시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며 "적격 담보 문제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사항으로 여러가지 시장 안정 방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앞서 한은은 2020년 코로나19 이후 금융권에 유동성 공급을 위해 한시적으로 은행채를 대출 적격담보증권, 차액결제이행용 적격담보증권, 공개시장운영 대상증권에 포함시킨 바 있다. 이후 지난해 3월 말 이를 종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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