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난 '종북' '주사파' 이념 논쟁..자유한국당 시절로 돌아간 여권
'김일성주의', '종북', '주사파' 등 잊혀진 줄 알았던 색깔론을 쏟아내며 정부여당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하는 동시에 전통 보수층에 소구력이 높은 이념 논쟁을 통해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것이지만, 21대 총선 참패 이후 이어왔던 중도 확장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도로 자유한국당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전날 국민의힘 소속 원외 당협위원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나온 '주사파' 발언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며 "어느 특정인을 겨냥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오찬간담회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한 원외 당협위원장이 '종북 주사파 세력에 밀리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이에 호응한 발언이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출근길 답변은 주사파 비판에 '주어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의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 발언과 이를 옹호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논리와 연결해 보면, 민주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위책원장은 김문수 위원장의 국정감사장 발언 이후 연이어 페이스북을 통해 "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김문수 한 사람뿐인가"라거나 "굴종적인 대북 저자세, 친중 사대 외교, 소득주도 성장, 아파트 값을 폭등시킨 주택정책, 탈원전 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들은 모두 낡은 좌파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 대통령은 경제를 살릴 외교는 전혀 하지 않고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좌파천국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던 것과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이 꺼내든 이념 논쟁의 배경에는 지지율 하락세에 대구·경북 등 텃밭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거론하며 민주당을 압박하는 동시에 '종북' 이야기를 꺼내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는 분명하다는 인식"이라고 말했다. '집토끼'라도 확실히 붙잡을 수 있도록 '주사파', '김일성주의자'와 같은 선명한 표현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의 강경보수화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지지층을 결집하며 하락세를 일시 반전시키는 '진통제'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중도층의 민심 이반을 막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명에게 정당별 호감도를 질문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국민의힘에 대한 호감도는 36%로 지난 4월 조사보다 10%p 하락했다. 비호감도는 59%로 나타났는데 같은 기간 9%p 상승했다. (자세한 결과는 전국지표조사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금 저희 당이 보면 굉장히 우클릭을 하는 메시지들이 전반적으로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에 대한 지지가) 감소한 유권자층을 우리가 대강 분석해 봐도 상대적으로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대로 간다면 도로 한국당보다 더 못하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수도권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여권 관계자들은 21대 총선 참패 이후 국민의힘이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과 결별을 선언하고 중도 확장을 지향했던 모든 노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의원은 "완전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차기 총선이 중요한데, 지금 정부·여당의 방향성은 걱정스럽다"라며 "강경 보수층이 듣고 싶은 말만 해준다면 '영남당'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의원도 "친일 논쟁, 주사파 논쟁과 같은 말초적 논란에 당 핵심들이 휩쓸릴 경우 당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의 영역"이라며 "이러한 이야기를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21대 총선 이후, 당 체질 개선을 진두지휘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비대위 때 태극기 세력과 결별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다시 돌아간 것"이라며 "지금 현실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철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이렇게 가면 총선도 다 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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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황영찬 기자 techan9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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