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 쪼그라든 러시아..눈치 보던 이스라엘 "우크라 지원해볼까?"

장수현 2022. 10. 2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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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최근 시리아 배치 군사·무기 우크라로 이동
"중앙 아시아 이어 중동에서도 영향력 감소"
눈치 보던 이스라엘, 우크라 지원 점점 키워
올해 4월 1일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주 비니시 마을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시민들이 든 대형 현수막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을 한 문어가 조지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을 움켜쥐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비니시=AFP 연합뉴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며 중동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밀리자 시리아에 투입된 병력을 대거 유럽 전선으로 옮기는 등, 중동 지역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눈치를 보며 전쟁에서 '중립'을 지켰던 이스라엘은 최근 태도를 바꿔 우크라이나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데다가 숙적 이란이 최근 러시아 지원에 나서자, 반대편에 서기로 한 것이다.


'중동 중재자' 푸틴 위상, 우크라 침공 후 추락

지난 8월 22일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지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전날 이 지역에서 친러 성향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러시아는 이 지역을 7번 공격했다. 이들리브=AFP 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관료 등을 인용해 최근 러시아가 시리아에 배치했던 최소 1,200~1,600명의 군사와 여러 지휘관, S-300 지대공 미사일을 우크라이나로 옮겼다고 보도했다. 이들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에 대한 러시아 중앙정부의 관여도 줄고 있다. 지난 5월 시작된 시리아 내 러시아 병력 유출은 우크라이나에 전세가 밀리는 최근 두드러진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인 1970년대부터 미국에 대적하는 시리아를 지원해왔다. 2010~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2015년 공군을 보내 정부군을 지원하며 본격 개입을 시작했다. 2019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협상하고 튀르키예군이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내며 '중동의 중재자'로도 불렸다.

하지만 그 위상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빠르게 무너졌다. NYT는 "중앙아시아에 이어 중동에서도 러시아가 전통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지난달 옛 소련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무력 충돌 후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격분한 아르메니아가 러시아 주도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하자 러시아는 뒤늦게 조정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전쟁 관망하던 이스라엘, 달라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줄어든 중동에선 특히 이스라엘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이스라엘은 친서방 성향이지만,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관망해왔다. 러시아가 이란과 우호 관계임에도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전에서 '앙숙' 이란을 공격하도록 눈감아줬기 때문이다. 또 우크라이나를 도우면 러시아에 사는 18만 명 규모 유대인 공동체가 피해를 볼 것도 우려했다.

그러던 이스라엘에서 최근 "우크라이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①러시아가 시리아에서 병력을 일부 철수해 이란을 과하게 공격했다가 러시아에 보복당할 우려가 줄었고 ②대놓고 민간인을 학살한 러시아를 규탄해야 한다는 국제사회 압박이 커졌기 때문이다. ③특히 러시아가 숙적 이란과 가깝게 지내며 무기를 대거 공급받은 게 변수였다.

나흐만 샤이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담당 장관은 지난 16일 '이란의 대러 무기 지원' 보도가 나온 직후 트위터에 "이 분쟁에서 이스라엘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고민이 사라졌다"며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처럼 이스라엘도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앞서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총리도 우크라이나 전역이 폭격당한 이달 10일 "러시아가 자행한 민간인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개전 후 처음으로 러시아를 공개 비판했다.


위기 느낀 러, 위협 시작했지만…"우크라 지원 확대 기조"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19일 텔아비브에서 열린 선거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텔아비브=EPA 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랜 기간 이란과 전투를 치러 온 탓에 자폭 드론 등 이란산 무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요격 성공률이 90%를 넘는 이스라엘 최첨단 방공망 '아이언 돔'도 우크라이나에 절실하다.

정세 변화를 감지한 러시아는 이스라엘이 우크라이나를 돕지 못하도록 위협하기 시작했다. 지난 17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스라엘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매우 무모한 행동으로 러시아·이스라엘의 모든 정치적 관계를 파괴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전엔 눈감아줬던 이스라엘의 시리아 내 이란군 공격에 대해서도 앞서 7월 "공습을 무조건 중단하라"고 했다.

러시아가 압박하자 이스라엘도 속도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19일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방공 시스템을 제공해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거절하고, 조기 경보 시스템만 지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점차 확대되는 기조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NYT는 "전쟁 초기 인도주의적 도움에 제한됐던 이스라엘의 지원이 커지고 있다"며 "이미 러시아가 이용하는 이란 드론에 대한 정보를 우크라이나에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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