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때문에 전쟁 안 끝난다" 헝가리와 EU의 계속되는 엇박자 행보
유럽연합(EU) 회원국 헝가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끝나지 않는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경제 위기에 직면한 헝가리 정부가 EU 차원의 대러 제재를 탓함으로써 대중들의 이목을 돌리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헝가리는 지난 14일 EU의 대러 제재에 관한 “대국민 협의”를 명분으로 여론조사를 개시했다. 해당 설문조사가 공개된 직후 일각에선 헝가리 정부가 EU의 대러 제재를 비난하는 데 국민 여론을 조작해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설문조사 문항들부터 편파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컨대 한 문항은 “유럽 전역에선 전기·가스·수도 요금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올랐다. 러시아는 유럽 제재에 대응해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가정 난방과 유럽 경제를 살리는 데 필요한 가스 공급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기술한 뒤 “당신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에 대한 제재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해당 설문조사는 이처럼 EU 차원의 대러 제재가 헝가리 국민의 삶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관해서만 설명한 문항 7개로 구성됐다. 헝가리 국민은 오는 12월9일까지 우편이나 온라인상에서 설문조사에 답할 수 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이 조사는 공식 국민투표가 아니며 법적 구속력도 없다. 하지만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해당 조사 결과를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의 싸움”에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헝가리 정부는 조사 참여를 독려하며 국민이 “정답”을 고르길 바란다면서 전국 곳곳에 거대한 광고판들도 함께 내걸었다. 광고판에는 “브뤼셀의 제재가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문구와 함께 “제재”라는 글씨가 적힌 폭탄의 그림이 실렸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제재의 목적은 우크라이나에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제재를 폭탄이나 미사일과 관련짓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불만을 표했다.
헝가리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EU 차원의 공동 행보에서 계속 엇박자를 내고 있다. 지난 5월엔 EU의 러시아산 석유 금수 제재를 반대했고, 핀란드·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안 비준도 미루고 있다. 지난 17일엔 EU가 내달 실시하기로 한 대규모 군사훈련에 불참까지 선언했다. 정부 안팎에선 EU에 대한 비판을 넘어 반미국 발언까지 쇄도하고 있다. 예컨대 라슬로 꾀비르 헝가리 국회의장은 “미국이 동서양에 손을 뻗고, 우크라이나가 이 ‘유럽-태평양 제국’의 주가 되어버리면 어떡하냐”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BBC는 헝가리 정부가 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국의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헝가리는 지난해 대비 물가가 20%나 상승했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기금 지출은 전부 중단된 상태다. 경제 위기를 목전에 둔 지금 정부로서는 성난 민심의 눈길을 외부로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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