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대란에 약가 인상..서두르는 식약처, 부담스러운 복지부

김양혁 기자 2022. 10. 2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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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들, 이르면 이번 주 감기 약가 인상 신청
약가 인상 신청 절차 본격화..정부, 수용 가닥
감기약 품절 대란에 악순환 반복
약국서 단가 비싼 일반용, 조제용으로 처방
약국 찾은 소비자 일반용 구매 못해
약값 올려도 물량 한정..제약사 배불리기 지적도
서울 시내 한 약국에 각종 감기약이 진열돼 있다. /뉴스1

국내 제약사들이 이르면 금주 중 감기약 약제 가격 인상을 정부에 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올 겨울 코로나19와 감기 유행으로 감기약 ‘품절 대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증산 조건인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 들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와 약가 인상에 대해 사실상 동의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선 현재 생산 설비 규모로는 약가를 올려도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자칫 세금으로 제약사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보건복지부 역시 이런 지적을 인식하고 있어 최종 결정이 어떻게 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약사, 감기약 약제 인상 신청 나선다…정부 인상안 수용 가닥

20일 본지가 복수의 아세트아미노펜 생산업체를 취재한 것을 종합해보면 이들 업체들은 이르면 이번 주 중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값 인상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제약사들은 앞서 이달 18일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간담회를 가진 직후 본격적인 인상안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정부도 아세트아미노펜 약값 인상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약사들이 비슷한 시점에 인상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도 “제약업계는 당초 정부가 인상을 안 해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최근 해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약국 진열대에 어린이용 타이레놀(가루형, 시럽형)이 놓여있다. /조선비즈DB

아세트아미노펜은 타이레놀로 대표되는 해열진통제와 감기약의 주 성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장기화에 인플루엔자(독감) 우려까지 커지는 ‘트윈데믹’으로 전국 약국에선 감기약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는 이 같은 대란이 재현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약값 인상을 포함한 대응책을 찾고 있다.

심평원에 따르면 약가 인상 제도로는 퇴장방지의약품 제도와 약가 조정 신청제도가 있다.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는 환자의 진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경제성이 없어 제조업자가 생산이나 수입을 기피하는 저가필수의약품을 지정해 사용장려금을 지급하거나 원가인상을 통해 생산 원가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상한금액 인상 조정신청 제도의 경우 약제의 제조업자 등이 고시된 약제의 상한금액이나 요양급여 결정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조정을 신청하는 제도이다.

두 제도 모두 제약사가 신청하면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평가와 건보공단 협상을 거쳐 복지부가 최종 결정한다. 이와 관련해 심평원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약가 인상을 요청하거나 조정을 신청하면 신속하게 검토한다는 내부 방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련한 감기약 신속 대응 시스템. /식품의약품안전처

◇감기약 공급 ‘악순환’…물량 부족에 일반용으로 조제용 돌려막기

최근 발생한 감기약 공급 부족의 원인은 조제용과 일반용의 약가 차이에서 발생한다. 보통 일반용 약품은 조제용보다 단가가 비싸다.

코로나19에 김기 환자가 늘면서 조제용 약품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약국에서부터 혼란이 시작됐다. 병원 방문 후 처방전을 가지고 온 환자에게 내어줄 조제용 약품이 없자, 일부 약국은 일반용 약품을 뜯어서 제공했다. 그 결과 일반용 약품을 구매하러 약국을 찾은 사람에게 제공할 약이 없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이달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해열진통제 중 특수 조제용 성분, 아세트아미노펜 650㎎이 부족하다”며 “일반용은 한 정당 200원인데 조제용은 현재 51원으로 생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제약사의 공급 확대도 여의치 않다. 올해 3월 타이레놀을 만드는 한국얀센 공장이 철수했고, 여기에 지난 9월 감기약 원료의약품 공장인 화일약품이 화재로 생산을 중단해 공급 물량이 더 줄었다. 오유경 처장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썼다”라고 밝힌 배경이다.

한 대형 의약품 판매 사이트의 타이레놀 수급 상황. 대부분 품목들이 품절 처리돼있다. /인터넷 캡쳐

◇서두르는 식약처, 부담스러운 복지부…제약업계 배불린다 우려도

식약처는 오 처장까지 나서 감기약 약값 인상 추진의 불가피성을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복지부는 인상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 약값 인상이 모두 세금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현재 아세트아미노펜 650㎎ 기준 조제용과 일반용 가격 차는 149원이다. 제약사의 생산 증대를 유도하려면 가격 차를 얼마나 좁혀야 할 지 숙제로 떠오른다. 제약사들도 저울질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 관계자는 “아세트아미노펜 제제 생산 증대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복지부와 약가 인상과 관련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다만 약가 결정은 복지부 소관 업무라서 식약처가 답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약가 인상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생산 업체들이 약가 조정 신청을 하면 절차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제약 업계 안팎에선 약값 인상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대형 제약사에서 약품 생산을 관리하는 한 직원은 “회사는 물론, 위탁제조를 맡기 회사들도 현재 생산할 수 있는 최대치로 생산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물량이 바로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약국 출입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상비용 약으로 사용되는 감기약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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