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파장에 심각해진 건설현장.. "돈 구하기가 어렵다"

연지연 기자 입력 2022. 10. 20. 14:01 수정 2022. 10.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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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가 정말 난리였어요. 손꼽히는 대형 건설사가 기업어음(CP) 금리로 연 7%를 부르니 금리가 연쇄적으로 올랐어요. 그 전까지는 연 5% 수준이었는데, 순식간에 연 8~10%로 오르더라구요.”(A증권사 관계자)

“만기가 아무리 짧아도 지금 CP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죠. 자금 융통이 안 되다보니까 부르는 이율 수준이 계속 높아질 수 밖에요. 이제는 금리가 두 자릿수는 돼야 CP가 팔리는 상황입니다.”(B증권사 관계자)

정부가 채권안정펀드를 다시 가동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긴급하게 대책을 내놓은 것은 건설 현장에 수혈될 자금줄이 말라가면서 위험이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서 자금 경색이 시작된 주된 원인으로는 기준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오른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강원도)가 보증했던 레고랜드 테마파크 대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부도처리되며 건설업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것이 꼽힌다. 지자체 보증 ABCP도 부도를 맞은 마당에 무엇을 믿고 자금을 빌려주겠느냐는 의구심이 커진 것이다.

서울 시내 아파트 공사 현장./뉴스1

공사비가 확보되지 못하면 공사에 나서지 못하는 현장이 느는 것은 물론 진행 중이던 공사 현장도 멈추는 경우가 생긴다. 여기서부터는 우발채무가 늘어나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든다. 우발채무란 지금 상황에선 빚이 아니지만 특정 요건을 충족하면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있는 특수 채무를 일컫는 용어다. 건설업계에서는 미분양 사태나 공사 지연 등이 대표적인 우발채무 발생 요인으로 꼽힌다.

◇ “돈 구하기 쉽지 않다”… 부동산 PF 신규대출은 꽁꽁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건설·금융사가 발행한 채권에 잘못 물리면 답이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채권시장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건설사들도 소문 대응에 애를 먹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롯데건설이 2000억원의 유상증자 배경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롯데건설이 단기 자금흐름에 문제가 생겨 7일짜리 단기기업어음를 연 30% 금리로 자금을 융통하려다 회사 재무구조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급하게 유상증자를 결정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용등급 A+짜리 CP 3개월물을 15% 금리로 발행하기 위해 증권사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실시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 소문까지 보태졌다.

이에 대해 롯데건설은 모두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연 15%, 30%와 같은 수준의 금리로 CP발행을 추진한 적은 없다”고 했다.

현대건설도 지난 9월 1일 소문 때문에 장 중 주가가 급락하는 일을 겪었다. 파주 운정지구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바로 반응한 것이다. 당시 현대건설 주가는 결국 5.3% 하락한 채로 장을 마쳤다.

레고랜드 호텔 전경./뉴스1

금융업계에서는 이같은 자금경색 분위기를 가뜩이나 기준금리 급등으로 어려워진 자금 시장에 강원도 레고랜드가 불을 지른 결과로 해석했다.

강원도 산하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가 발행한 레고랜드 테마파크 대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지난 4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했던 강원도가 보증의무를 이행하는 대신 GJC의 법원 회생절차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ABCP 상환 실패는 부동산 PF 시장의 위험과 불안을 확대시켰고 대출시장 위축, 차입금리 급등을 불러왔다”고 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민간 PF에 대한 신규 자금 수혈이 거의 끊긴 상태다. 최근 시중은행들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주택금융공사(HF)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한 PF사업을 제외한 민간 PF사업에 참여하는 데 주의하라는 지도를 받았다. 저축은행들은 참여한 PF대출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올리라는 주문을 받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에서 민간 PF 사업장은 쉽게 자금줄을 찾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권(은행·보험·증권·저축은행·여신전문)의 PF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12조2000억원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다. 저축은행 사태 직후인 2013년 말(38조8000억원)에 비해서는 3배 규모다.

◇ 커지는 우발채무 경고음… “10년전 흑자도산 재현될라”

신용평가사들은 이미 우발채무에 대한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대출 등으로 공사비 확보가 안 되면 미착공 공사현장이 늘고 우발채무가 늘어날 수 있는데, 이미 우발채무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기업평가(KR)가 지난 9월 발표한 ‘건설업 PF우발채무의 실질적 리스크 범위에 대한 KR의 견해’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KR 유효등급을 보유한 22개 건설사의 PF 관련 우발채무 총 규모는 28조3000억원이었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기업평가는 롯데건설, 태영건설, HDC현대산업개발, GS건설, 대우건설 순으로 PF우발채무 규모가 크다고 분석했다.

배영찬 평가1실 실장은 “금리상승 시기의 자금조달에서 장기물 기피현상이 커지고 단기물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 만기구조가 더 짧아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금융비용 증가, 수익성 저하로 프로젝트가 착공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단기간 내 유동성 위험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자본시장에서는 2010년 시공능력평가 40위권 중견건설사가 줄이어 도산했던 당시의 악몽을 다시 되새기고 있다. 줄도산했던 시공사 상당수가 흑자도산인 경우였다.

17년 연속 흑자를 내고 미분양주택도 거의 없던 우량회사인 동양건설산업이 2011년 11월 기업회생절차를 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동양건설산업은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 PF대출을 절반씩 부담했던 삼부토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과 모든 금융기관이 계좌동결 조치를 취하자 결국 부도 위기를 맞았다. 금융권에서 비올 때 우산을 뺐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건설사 관계자들은 이젠 10년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건전하게 재무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2010년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그때는 시공사가 직접 PF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이젠 책임준공, 신용보강 형식이라 구조적으로 다르다”면서 “시장이 과하게 반응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채권안정펀드 가동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건설사들이 위기 1번지로 떠올랐지만 자금조달 경색은 업계를 불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채권안정펀드 대책을 빠르게 내놨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 “다만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11월 중순부터 북클로징(장부를 결산하고 거래를 마감하는 것)을 준비하기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동성 경색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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