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복잡한 셈법.."푸틴·에르도안에 EU 눈치까지"

김태훈 2022. 10. 2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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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스웨덴 나토 가입안 비준 무작정 미뤄
野 의원 "오르반, 나토 적대하는 푸틴과 친밀
에르도안과의 '의리' 때문에 행동 함께하는 듯"
10조원대 EU 지원금과 맞바꾸는 '빅딜설'까지

‘헝가리는 지금 러시아, 튀르키예(터키), 그리고 유럽연합(EU)이란 3가지 변수를 가진 고차방정식 해법에 도전하고 있다.’

뚜렷한 이유 없이 핀란드·스웨덴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안 비준을 미루는 헝가리의 태도에 국제사회의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를 두고 여러 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가급적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노림수가 그 배경이란 분석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자칫 핀란드·스웨덴이 내년 중반까지도 나토 정식 회원국이 못 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2018년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왼쪽)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 게티이미지 제공
19일(현지시간) EU 뉴스 전문매체 EU옵서버(EUobserver)에 따르면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헝가리 여당 ‘피데스’에 맞서는 야당 민주연합(DK)의 아그네스 바다이 의원은 최근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헝가리가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안 비준을 미루는 이유로 크게 3가지를 들었다. 먼저 러시아와의 관계다. 헝가리는 나토 회원국인 동시에 EU 회원국이지만 러시아와도 끈끈한 편이다. 오르반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이며 최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장례식에 유럽 국가 정상으로는 유일하게 직접 참석했다. 헝가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EU가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려 할 때마다 반대해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바다이 의원은 “헝가리 정가에선 의회가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안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오르반과 푸틴의 친밀한 관계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며 “푸틴, 그리고 오르반의 관점에서 보면 핀란드·스웨덴의 합류는 나토를 더욱 강하게 만들 텐데, 이는 러시아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러시아, 그리고 푸틴을 의식해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안 비준을 하염없이 붙들고 있다는 얘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게티이미지 제공
두 번째로 튀르키예와의 관계다. 헝가리와 튀르키예는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오르반 총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다. 앞서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반대했다가 ‘조건부 찬성’으로 후퇴한 튀르키예는 두 나라, 특히 스웨덴이 튀르키예에 약속한 사항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며 언제든 다시 반대로 돌아설 수 있다는 태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얼마 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핀란드만 먼저 가입시키고 스웨덴은 좀 더 지켜보자”는 기상천외한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현재 나토 30개 회원국 중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안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가 튀르키예와 헝가리 단둘이란 점이다. 바다이 의원은 오르반 총리가 튀르키예 정부와 맺고 있는 긴밀한 관계를 거론한 뒤 “에르도안은 핀란드·스웨덴의 가입을 막는 유일한 나토 국가로 혼자 남겨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며 “이 문제에서 헝가리가 공조를 취해준다면 국제사회에서 튀르키예의 외교적 입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튀르키예, 그리고 에르도안 대통령을 의식해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안 비준을 하염없이 붙들고 있다는 얘기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AFP연합뉴스
바다이 의원은 마지막으로 EU와의 협상을 꼽았다. 헝가리는 오르반 총리 취임 후 사법부 독립성을 축소하는 개헌과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입법으로 EU와 마찰을 빚었다. 결국 EU는 헝가리를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나라’로 지목해 올해 헝가리 몫으로 배당된 지원금 75억유로(약 10조4000억원)의 제공을 중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지원금이 절실한 오르반 총리로선 어떻게든 EU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하는 처지다. 바다이 의원은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처리하는 대가로 EU 지원금 지급 중단을 푸는 일종의 타협을 모색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바다이 의원에 따르면 헝가리 정부와 의회 모두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이견이 없는 상태다. 오르반 총리와 여당이 끝까지 비준안을 붙들고 처리를 막을 순 없다는 게 바다이 의원의 예상이다. 다만 관건은 헝가리가 아닌 튀르키예다. EU 관계자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내년 6월 대선까지 비준안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만약 헝가리가 튀르키예와 보조를 맞춘다면 핀란드·스웨덴은 내년 중반까지도 나토 정식 회원국 지위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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