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에 '나비약'까지 구매 가능..'댈'에 빠진 10대 [청정국? 마약민국?]

2022. 10. 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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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구매, 온라인에서 성행
수수료 '담배 한개비 500원'
'디에타민 한개당 6000원'
식욕억제제 구매 행태 '심각'
'댈' 때문에..성인 만나기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리구매 판매자(왼쪽). 다이어트약으로 불리는 일명 '나비약'도 대리구매로 유통되고 있다. [트위터 캡처]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미자(미성년자)이시면 문화상품권으로 거래해 주세요. 아니면 제가 경찰 조사 받을 때 같이 받을 수 있어요.” 기자가 트위터에서 전자담배를 ‘댈(대리 구매)’을 해 준다는 판매자에게 담배 구매를 문의하자 답변이 왔다. ‘거래 추적이 어려운 문화상품권을 이용해 달라’는 판매자는 미성년자에게 여러 번 담배를 판매한 듯 했다. 해당 판매자는 액상 전자담배기계와 액상을 수수료 1만원을 받고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다.

트위터에서는 ‘OO샵’처럼 대리 구매를 가게처럼 운영하는 판매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본격적으로 대리 구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한 판매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OO샵’ 글을 리트윗(다른 사람의 글을 내 계정으로 퍼뜨리는 전달하는 기능)하면 추첨을 통해 액상 전자담배기계를 준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이러한 ‘댈’은 청소년 사이에서 흔한 거래 방식이다. 성인부터 구입 가능한 술·담배부터 다이어트 한약, 마약류 의약품인 디에타민, 일명 ‘나비약’까지 대리 구매하면 쉽게 ‘성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신체적·정신적 성장이 끝나지 않는 청소년들이 각종 약물에 노출되면서 지난해 약물 오남용중독으로 진료받은 10대는 1678명으로. 전년에 비해 41.4% 증가했다.

‘500원’ 낮은 수수료에 쉽게 입문

20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SNS 상에서 대리 구매 비용은 천차만별이었다. 연초 담배는 1개비당 500~1000원, 디에타민은 개당 6000~80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디에타민은 성인을 대상으로 허가돼 16세 이하는 복용이 금지된 약물이다. 식욕억제제뿐만 아니라 다이어트 한약, 수면제도 대리 구매를 통해서 구매가 가능하다.

청소년들은 간접 판매 방식이고, 수수료가 큰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대리 구매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학술지인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 실린 ‘흡연 청소년은 담배 판매 금지를 어떻게 뚫는가?’ 논문 관련 연구에 참가한 청소년 70%가 대리 구매를 통해서 담배를 획득했다. 논문은 “구매를 원하는 청소년의 나이, 담배 관련 규제 정도, 담뱃값과 같은 다양한 요인에 따라 ‘뚫값(대리 구매 비용)’은 바뀌었다”며 “고등학생보다는 중학생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비용을 냈다”고 설명했다.

대리 구매 판매자는 성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미성년자도 상당했다. 내과에서 디에타민을 처방받았다는 한 온라인 판매자는 판매글에서 미성년자지만 “예체능 입시를 준비한다”, “살이 너무 쪄서 극단적 생각을 한다” 등의 말로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며 절박한 사람을 위해 약을 판매한다고 했다. 미성년자 판매자는 담배나 약물 복용 후기를 트위터, 창작 플랫폼 ‘포스타입’ 같은 폐쇄적인 블로그에 작성하기도 한다.

‘댈’하는 성인 만나거나, 사기 당하기도
경찰이 압수한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경남경찰청 제공]

입문은 쉽지만 한 번 발을 들인 약물의 세계는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약물 오·남용중독으로 진료받은 10대는 늘었다. 지난해 진료받은 10대는 1678명으로, 2020년 1187명과 비교했을 때 41.4%나 증가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에 비해서도 28.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리 구매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청소년도 있다. ‘보건사회연구’ 게재 논문에 참여한 한 10대 여성 청소년은 “성인 남성을 만났다”며 “같이 (담배를) 피기도 하고 사주기도 하고, 만나면 그 대가로 담배를 그냥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혹은 불법이라는 점을 악용한 사기꾼에게 피해를 입기도 한다. 구매자들은 물건을 받지 못해도 금액이 소액인 데다, 청소년이라 쉽게 신고를 하지 못하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수준에 그친다.

경찰도 청소년 약물 문제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올해 8월부터 이달까지 3개월 간 전국 단위로 ‘마약류 유통 및 투약 사범 집중단속’을 벌이고 있다. 앞서 올해 6월 경남경찰청은 병원에서 디에타민을 불법 취득한 뒤 SNS 광고를 게시해 판매하고 투약한 중고생 등 59명을 검거했다. 이달 19일에는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고속버스터미널 수화물 서비스를 이용해 필로폰을 배송하거나 텔레그램 등을 통해 마약을 사고판 69명을 무더기로 검거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은 호기심이나 실수로 단 한 번만 경험해도 파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신분을 철저히 보장하므로 적극적인 마약 신고와 자수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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