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 가족, 동굴서 들소 사냥하며 살았다

곽노필 2022. 10. 2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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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동굴서 발견된 13명 화석 분석한 결과
아버지와 딸, 손자와 할머니 등 가족공동체 추정
들소 사냥 등 실패로 같은 시기에 굶어 죽은 듯
5만여년 전 시베리아에 살았을 네안데르탈인 가족의 아버지와 딸 상상도.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아버지와 10대 딸, 가까운 친척들로 구성된 5만여년 전의 네안데르탈인 가족 화석이 발견됐다.

43만년 전 유라시아에 정착해 4만년 전 멸종한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지금까지 14곳에서 18명이 발견됐으나 이렇게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는 “러시아 남부 시베리아의 알타이산맥 남서쪽 동굴 2곳에서 5만1000년~5만9000년 전의 네안데르탈인 13명의 화석 DNA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가족 공동체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2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곳은 데니소바인이 발견된 동굴과 매우 가까운 곳이다.

2010년 네안데르탈인 게놈을 해독해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일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고인류와 현대인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공로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스반테 페보 박사도 이번 연구에 참여했다.

11명의 화석이 발견된 차기르스카야동굴.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화석이 발견된 곳은 차기르스카야동굴(11명)과 인근의 오클라드니코프동굴(2명)이다. 시작은 2007년 러시아 과학자들이 발견한 차기르스카야동굴의 화석이었다.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뼈, 치아 조각과 9만점의 석기, 도살된 들소뼈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들이 초원을 찾아 이동하는 들소를 사냥하기 위해 이 동굴에 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2020년 이 동굴에서 발견된 한 여성의 손가락뼈에 대한 첫번째 게놈 분석 결과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이 여성의 유전자가 100km 거리의 동굴에서 발견된 데니소바인보다 수천km 떨어진 크로아티아의 네안데르탈인과 더 밀접했기 때문이다. 이는 유라시아의 네안데르탈인이 한 번이 아닌 여러차례에 걸쳐 동쪽으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발견된 곳들. 맨 오른쪽 점선 안에 있는 곳이 이번에 분석한 화석이 발견된 곳이다. 네이처 제공

고립된 공동체는 아니지만 부계 중심인 듯

연구진이 지금까지 이 동굴에서 확인한 게놈은 성인 6명, 어린이 5명을 합쳐 모두 11명이다. 모두 같은 퇴적층에서 발견됐다.

이들 화석 가운데 성인 남성의 척추와 10대 여성의 치아 유전자 변이와 미토콘드리아를 분석한 결과 둘은 아버지와 딸 관계로 추정됐다. 다른 두 남성은 이 아버지의 가까운 친척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성인 여성과 소년은 할머니와 손자 또는 이모와 조카 정도의 가족관계로 추정할 만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었다.

공동연구진인 버클리캘리포니아대 로리츠 스코프 박사는 “전체 게놈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모두 혈연관계를 갖고 있으며 모두 한꺼번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집단적으로 죽음을 맞은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스코프 박사는 동굴 붕괴 같은 재난 징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장기간 들소 사냥을 하지 못해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인근에 있는 오클라드니코프동굴에서도 2명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발견해 두 동굴 화석의 전체 게놈을 비교 분석했다. 13명의 네안데르탈인은 남성 7명, 여성 6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5명은 어린이 또는 청소년이었다.

분석 결과 남성에게 있는 Y염색체는 서로 비슷했으나, 어머니한테서 물려받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매우 다양했다. 연구진은 이는 남성은 출생시의 집단에 계속 머무르고 여성은 출산 등을 위해 다른 집단으로 이동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 사회가 고립된 공동체는 아니었지만 부계 중심이었음을 뜻한다.

차기르스카야동굴에서 발견된 치아 화석들. 네이처 제공

20명 이하 소규모 공동체 생활…멸종위기종 처지 비슷

연구진은 이들의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적은 점으로 보아 네안데르탈인은 20명 이하의 작은 규모로 집단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시베리아 전체에 살던 네안데르탈인 인구도 1천명이 안 됐음을 의미한다고 스코프 박사는 말했다. 그는 오늘날의 멸종 위기종인 산악고릴라와 비슷한 처지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네안데르탈인의 집단 생활에 관한 비밀의 문을 열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히 가족공동체의 한 단면을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네안데르탈인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와 더 비슷한 존재임을 알려줬다.

그러나 트리니티칼리지더블린의 라라 캐시디 교수(유전학)는 이번 연구가 동쪽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의 사회 구조만을 드러냈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혹독한 시베리아 겨울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인구가 적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캐시디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이정표이며, 중동이나 유럽의 네안데르탈인 그룹 유전자를 분석하면 더 명확한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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