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제 전략 게임, 마니아 벽 깨고 대중적 인기 노린다
턴제 전략 게임이 틈새시장 공략에 나선다. MMORPG, FPS 등 주류 게임을 상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려는 신작이 속속 나오고 있다.
턴제 전략 게임은 대세 장르로 보기 힘들다. 하스스톤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전례가 있지만 "하는 사람만 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전략 요소를 좋아하는 게이머도 턴제보다는 실시간 전투를 선호한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RTS나 리그오브레전드 등의 AOS 장르처럼 말이다.
반면, 마니아층은 탄탄하다. 충성도가 매우 높아 한 번 게임에 정착하면 이탈률이 낮다. 사이게임즈의 CCG 섀도우버스가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하스스톤을 밀어내지 못한 것도 유저들의 높은 충성도와 낮은 이탈률 때문이다.
결국 턴제 전략 게임 시장은 마니아 확보를 위한 시장 선점과 유지가 중요한 장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턴제 전략 게임의 숙원는 자연스럽게 '대중화'가 됐다. 마니아층을 놓고 벌이는 파이 싸움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행히 시장 전망은 좋다. 특히 모바일 게임 시장을 위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게임 산업 동향 분석 매체 'WePC'는 모바일 전략 게임 시장 매출의 우상향을 점쳤다. 2016년 67억 달러였던 모바일 전략 게임 시장 규모가 2023년까지 133억 달러로 약 2배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매체는 2020년도 이후부터 전략 게임을 게이머 4명 중 1명꼴로 즐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가볍게 즐기고 있다. 하위 장르로 하이퍼 캐주얼, SRPG, 시뮬레이션이 인기다. 이는 매우 좋은 긍정적인 지표다.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턴제 전략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 판 당 15분 내외로 짧다. 생각을 얼마나 깊게 하냐에 따라 더 길어질 수 있어도 타 장르에 비하면 부담없는 편이다. SRPG도 RPG 장르와 비교했을 때 콘텐츠 호흡이 짧다.
각종 수집형 게임을 중심으로도 빠르게 확산 중이다. 소녀전선2, 붕괴: 스타레일 등 인기 IP의 후속작이 턴제 전략 게임으로 나온다. 오픈월드 RPG, ARPG, 방치형 RPG 등은 레드오션인 만큼 SRPG 시장을 개척해 보겠다는 의지다.
블루오션인 전략 게임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자가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띌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4분기부터 23년 1분기까지 벌써 다양한 턴제 전략 게임이 포진되어 있다. 이미 나왔거나, 나올 턴제 전략 게임들의 면모를 살펴봤다.
■ 하스스톤의 아버지, 밴 브로드의 노하우가 담긴 '마블스냅'
하스스톤의 아버지 밴 브로드가 새로운 카드 전략 게임을 출시했다. 마블스냅은 글로벌 인기 IP '마블 멀티버스'를 기반으로 제작되며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었다.
카드 게임은 기본적인 규칙과 카드 밸런스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전에 더 중요한 요소가 카드에 담긴 '서사'다. 지금까지 흥행한 카드 게임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원작 IP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블리자드 하스스톤은 워크래프트, 사이게임즈 섀도우버스는 신격의 바하무트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카드에 담긴 이야기와 캐릭터를 아우르는 세계관이 곧 게임의 경쟁력이다. 이런 점에서 마블 스냅은 흥행 조건 중 하나를 갖고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블만큼 인기 있는 IP를 찾기란 쉽지 않다. 히어로 대 빌런이라는 원작의 대결 구도 역시 카드 게임을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다. 기존 카드 게임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 게이머들에게도 구미가 당기는 포인트다.
마블 스냅은 한 판이 5분 내외로 종료될 만큼 짧은 호흡이라고 예고했다. 최근 하스스톤, 섀도우버스 등 기존 카드 게임은 솔리테어 덱이 늘어남에 따라 소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호흡이 길어지는 메타에 피로를 느끼는 유저들에게 마블 스냅은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블스냅과 기존 카드 게임과의 차별점은 승리 조건이다. 대부분의 게임이 상대를 공격하여 체력을 모두 깎는 것이 조건이었다. 반면 마블스냅은 땅따먹기 방식을 채택했다. 게임 필드 중앙에 있는 세 개의 장소 중 두 곳에서 더 높은 포인트를 얻는 쪽이 승리한다. 더 많은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해 카드 효과를 활용한 다양한 전술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 미니어처 게임과 CCG의 만남 '문브레이커'
크래프톤의 글로벌 기대작 문브레이커는 미니어처 게임과 CCG가 결합된 턴제 전략 게임이다. 미니어처 게임만의 독특한 감성을 게임에 잘 녹여냈다. 하스스톤과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 만큼 적응하기 쉽다. 턴제 전략 게임이 생소한 유저의 입문작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문브레이커는 '워해머'와 '하스스톤'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워해머 40K: 배틀섹터'와 같이 유닛을 배치하여 전투를 치르는 구조다. 진행 방식은 하스스톤과 같은 CCG의 '마나 시스템'을 사용했다. 문브레이커에서는 이를 '신더'로 부른다.
최대 10개의 유닛까지 배치할 수 있는 부대를 구성하여 매 턴마다 총량이 1씩 증가하는 신더를 소모해 개체 수를 늘린다. 유닛마다 개성적인 스킬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여 상대 지휘관을 먼저 처치하면 승리한다.
유닛 스킬은 전략 요소를 풍부하게 만든다. 종류도 다양하고 스킬 사용에도 신더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매턴 신더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중하게 코스트를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의 유닛의 스킬도 미리 파악하여 수를 읽는 것도 필요하다.
행운 요소도 게임을 더욱 즐겁게 한다. LoL도 패배의 원인을 팀원의 탓으로 치부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오래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문브레이커에도 이와 같은 '탓' 시스템이 있는데, 바로 '다이스 시스템'이다. 지형지물과 거리에 따라 공격의 명중률이 달라진다. 승리의 순간에 1% 확률로 전세가 뒤집힐 수 있다.
개발사 언노운월즈는 문브레이커만의 이색 콘텐츠로 '도색'을 꼽았다. 자신의 유닛을 취향에 맞게 꾸미는 기능이다. 미니어처 보드게임의 핵심인 '미니어처의 조립과 색칠'을 디테일하게 구현했다.
■ 대전 게임 못지않은 전투 연출이 일품 '아르케랜드'
SRPG 장르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한 '랑그릿사' 제작진들이 4년 만에 신작을 출시했다. 즈룽게임즈는 전작 랑그릿사의 전투 시스템을 기반으로 아르케랜드를 만들었다. 대전 게임 못지않은 부드러운 캐릭터 모션으로 출시 전부터 게이머들의 호평이 자자하다.
근본은 수집형RPG인 만큼 덱을 구성하는 다양한 영웅들을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형지물을 넘어 다닐 수 있는 영웅, 속성 반응을 이용한 상성 시스템, 가까운 타일의 영웅을 보호해 주는 탱커 등 다양한 전략 요소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각종 영웅을 조합하여 전장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아르케랜드가 추구하는 전략의 재미다. 전투 전 출전 영웅부터 출전 순서까지 유저가 직접 조작이 가능하다. 적의 속성과 특징을 파악하여 적은 턴 수 안에 클리어를 할 수 있는 덱을 조합해야 한다.
SRPG의 참맛은 실패에서 온다. 어떤 부분에서 턴을 낭비했는지, 영웅 간의 시너지가 잘 나고 있는지, 동선은 최선이었는지 등 무엇이 잘못됐는지 파악하고 수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주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육성의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장비를 파밍하고 레벨을 올려 하나의 완성된 영웅을 만드는 재미는 다른 턴제 전략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RPG만의 특권이다. 특성과 룬에 따라서 영웅의 성격이 달라진다. 다양하게 키워보며 여러가지 시도를 하는 과정은 아르케랜드의 몰입감을 한 층 높여줄 것이다.
■ 역대 주인공들의 어셈블, 파이어 엠블렘: 인게이지
전통의 강호 코에이테크모의 파이어 엠블렘: 인게이지가 23년 1월 출시된다. SRPG 마니아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게임 중 하나다. 다양한 병종을 활용하는 SRPG 요소와 함께 전투 시 캐릭터가 클로즈업되는 연출을 통해 더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래픽 퀄리티와 연출도 전작에 비해 한층 강화됐다. 인물 연출은 전작보다 매끄럽게 그려진다. 전투 시 캐릭터에 역량을 집중해 향상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SRPG는 일반 게이머들에게 모션과 타격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향상된 그래픽은 인게이지의 대중화를 이끌 가능성이 크다.
팬들은 인게이지의 가장 큰 매력으로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의 과거 영웅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닌텐도는 이들을 반지의 힘을 통해 소환된다고 설명했다. 시글드, 마르스 등 구작의 인기 영웅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는 것은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엔 충분해 보인다.
다만, 인게이지는 구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인 만큼 원작을 해보지 않은 신규 유저들이 쉽게 정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진 않으리라 본다. 훌륭한 그래픽으로 이목을 집중시켰으니 신규 유저를 정착시킬 장치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체스 보드와 CCG의 결합 '마스터 오브 나이츠: 일곱 개의 시련'
네오위즈의 SRPG 마스터 오브 나이츠는 전투 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5x5의 체스판 모양의 필드에서 캐릭터를 조종하고, 스펠 카드를 통해 수 싸움을 하는 독특한 방식의 게임이다.
마스터 오브 나이츠는 오토체스류 게임은 아니다. 체스판 위에서 캐릭터가 움직인다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다. 캐릭터의 특성을 파악하고 한정된 필요 비용 내에서 스펠 카드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오히려 CCG 장르 쪽에 가깝다.
오픈 스펙은 5가지 직업군과 50개의 캐릭터, 75종의 스펠 카드다. 이를 활용하여 다양한 조합의 덱을 구성하는 것이 마스터 오브 나이츠가 추구하는 재미다. 아르케랜드와 마찬가지로 출전 위치부터 전투 중 이동 동선까지 고민해야 하는 요소가 다양하다.
다만, 흥행을 위해서라면 진입 장벽을 허무는 것이 중요하다. SRPG 마니아들이라면 금새 적응하겠지만 신규 유저는 아니다. 오픈 스펙이 출중하다는 점은 마스터 오브 나이츠의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그만큼 신규 유저들이 느끼는 벽이 크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반대로 게임의 깊이감은 상당하다. 신규 유저들도 초반부를 잘 적응하기만 한다면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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