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까지 내린 푸틴, 남은 카드는 전면전과 핵 공격 뿐

박세영 기자 2022. 10. 2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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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수호이(SU)-34 전폭기가 추락한 러시아 남부 도시 예이스크의 한 아파트에서 거대한 화염이 치솟고 있다. 오른쪽으로 탈출한 조종사가 보인다. AP 뉴시스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지토미르의 한 에너지 시설에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화재가 발생하자 우크라이나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비상대응청 제공·연합뉴스
영상 회의를 주재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푸틴, 대피령·계엄령 고육지책으로 수세 극복 ‘안간힘’

합병·동원령 효과도 ‘미미’…사실상 전시체제 돌입

점령지 빼앗길 위기 속 핵공격·총동원령 이외 대부분 카드 소진

러시아가 19일(현지시간) 개전 후 처음으로 점령지 4곳에서 대피령과 계엄령을 동시에 발동했다. 한편으로 자국 내에도 이동제한 조처를 내리고 동원 태세를 강화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제 전면전이거나 핵 공격 외에는 남은 카드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스푸트니크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영상으로 개최한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내 헤르손, 자포리자,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간스크(우크라이나명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등 4개 지역을 대상으로 이 같은 조처를 결정했다. 계엄령은 전시를 비롯한 국가 비상사태 시 국가 안녕과 공공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헌법 효력을 일부 중지하고 군사권을 발동해 치안을 유지하도록 한 국가긴급권으로, 대통령의 고유 권한 중 하나다. 포고령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계엄령은 20일부터 적용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들 지역의 안보 강화를 위해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 직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점령지 4개 지역 수반에 대해 지역 안보 보장을 위한 추가 권한을 부여하고, 영토 방어 본부를 만들게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역별 수반들의 업무를 조정할 수 있게 관련 본부를 구성할 권한이 부여된다”며 “정부와 국방부, 다른 부처들이 이들 본부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존 러시아 영토인 우크라이나 접경지역 8곳에도 이동제한 조치가 발령됐다. 대상지는 크라스노다르, 벨고로드, 브리얀스크, 보로네즈, 쿠르스크, 로스토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등이다.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은 2014년 합병한 지역이고, 나머지 6개 지역도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러시아 영토다. 이와 함께 전국 80여개 지역 수반에 대해 핵심 시설 방어, 공공질서 유지와 ‘특별 군사 작전’ 지원을 위한 생산 증대를 위해 추가 권한을 부여했다. 또한 러시아 전국의 국경 지역에는 중간 수준의 대응(response) 태세를, 중부와 남부를 제외한 전 지역에는 최고 준비(readiness) 태세를 발령했다. 중부와 남부 지역에는 고강도 경보(high alert)를 발령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들 조치로 군사적 노력을 지원할 경제 및 산업 생산의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우리는 러시아와 우리 국민의 신뢰할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매우 복잡하고 대규모의 과업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4개 지역 점령지의 합병을 선언했으나, 이후 남부 헤르손과 동부 LPR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영토 수복 공세에 고전하고 있다. 헤르손에서는 이날부터 6일간 6만 명 규모의 주민 대피 작전이 시작됐다. 헤르손 점령지 행정부 수반인 블라디미르 살도는 온라인 영상 성명에서 “보트를 통해 주민들의 대피가 시작됐다”며 향후 6일간 매일 약 1만명씩 이주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이미 전날까지 이틀간 대피한 주민은 5천 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헤르손주 드니프로강 서안 4개 마을 주민을 강 동안으로 대피시키기로 결정했고, 자발적 이주의 경우에는 비용이 지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민간인의 헤르손시 진입이 향후 7일간 금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7월 루한스크 점령 당시까지만 해도 더디지만 꾸준히 점령지를 확대했으나 이후로는 진격 속도가 더욱 느려졌고, 9월에는 동부 하르키우주 전선이 완전히 무너졌다. 여기에 남부 헤르손주 전선까지 흔들리자 러시아는 9월 말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를 전격 합병하고 예비군 대상 30만 명 규모의 동원령까지 발령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처음 내려진 동원령이었다. 그러나 이들 특단의 대책 이후에도 전세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점령지 합병 선언 직후 동부 요충지 리만을 탈환한 데 이어 이달 들어 헤르손에서 500㎢에 달하는 영토를 탈환했다. 우크라이나의 추가적인 대공세가 예고되자 러시아는 결국 6만 명 규모의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헤르손 점령지 행정부마저 주민들과 함께 대피에 착수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지역 합동군 총사령관인 세르게이 수로비킨은 전날 인터뷰에서 “상황이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며 “복잡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푸틴 대통령이 소집한 국가안보회의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2월, 그리고 침공이 진행 중인 지난 5월에 이어 세번째다. 그만큼 현재 상황이 위급하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지난 7월 정부가 노동자의 휴가와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하는 등 전시체제 전환을 위한 준비를 진행해왔다. 우크라이나에서 작전을 지원할 경제·산업 능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대한 이동제한령을 내리고 전국 지역별 수반의 권한도 강화했다. 그러나 동원령 발령에 이어 계엄령까지 사실상의 전시체제에 돌입하고도 전세를 뒤집지 못할 경우 전쟁을 더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경우 남은 선택지는 핵 공격 또는 실제 총동원령을 통한 전면전뿐인데, 이는 푸틴 대통령의 권력 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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