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열여덟 살 어른'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

김다은 기자 2022. 10. 20.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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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서 생활했던 두 청년이 최근 연이어 숨졌다. 시설보호아동의 인권은 한국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시설'을 중심으로 한 보호가 사각지대를 만든다.

‘열여덟 살 어른은 없다.’ 지난 6월22일 보건복지부가 낸 보도자료 제목이다. 아동복지법은 만 18세 미만을 아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에 따라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보호대상아동)들은 만 18세가 되면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해야 한다. ‘열여덟 살 어른’이라는 단어가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6월22일부터 시행된 아동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이제 보호대상아동은 본인이 원할 경우 만 24세까지 아동복지시설(이하 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머무를 수 있게 됐다. 시설은 아동양육시설(보육원), 아동일시보호시설, 아동보호치료시설, 공동생활가정(그룹홈), 자립지원시설 등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지난 8월, 보육원에서 생활했던 두 청년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두 청년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숨진 ㄱ씨(19)는 만 18세가 된 후 자립을 원했지만 보육원에서는 시설을 나가지 말 것을 권했다. 그는 시설 소속의 ‘보호연장아동’이었다(〈시사IN〉 제784호 ‘모두가 잘못 알고 있던 두 청년의 죽음’ 기사 참조). 또 다른 청년 ㄴ씨(19)는 우울증을 겪었고 원가정 복귀(보육원 퇴소)를 여러 차례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ㄴ씨는 원가정이 있는 광주에서 고창에 위치한 아동보호치료시설로 보내졌다. 시간이 지나고 아동보호치료시설에서 나온 ㄴ씨는 만 18세가 되기 보름 전에 원가정으로 되돌아갔다. 시설에서 만기 퇴소를 하지 않은 ㄴ씨 같은 이들을 ‘중간 보호종료아동’이라고 부른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ㄴ씨처럼 보호가 중단된 아동은 1367명이다. 연 2500명 수준인 ‘보호종료아동’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아동탈시설연구모임 활동가 5명이 대담을 진행한 서울 관악구의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회의실 벽에 게시된 문구. ⓒ시사IN 신선영

ㄴ씨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 받는 자립정착금이나 자립수당 등을 수령할 수 없었다. 현행 자립지원제도에 따르면 ‘만 18세 이후 시설에서 퇴소하고, 보호 종료 직전 2년을 연속해서 시설에서 지내야’ 자립정착금, 자립수당 등 자립 서비스의 대상이 된다.

두 사람은 각각 ‘보호연장아동’ ‘중간 보호종료아동’ 등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삶의 중요한 결정이 시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9년간 아동인권 분야에서 활동해온 ‘사단법인 두루’의 강정은 변호사는 나이가 아닌 ‘시설’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을 다시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자립 후의 죽음을 막기 위해선 자립 전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 조사를 위해 시설에 방문한 경험이 있다. 지역의 경우 산골짜기에 시설만 덩그러니 있기도 했다. “근처 학교에 그 시설 아동 절반 이상이 다닌다. 누가 시설 아이인지 동네 사람들이 다 안다. 시설 아동들은 ‘탈출’만을 바라며 자란다. 하지만 그런 고립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시설 밖 삶을 어떻게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겠나?”

도시에 있는 시설 역시 엄격하게 통제되는 고립된 환경이기는 마찬가지다. 식사·청소·기상 시간 등이 정해진 시설에서는 외출도 자유롭지 않다. 강정은 변호사와 함께 아동탈시설연구모임에서 활동하는 정찬송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는 자신이 만나온 시설 청소년들의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시설 내 선생님의 판단이 입소 아동의 많은 걸 좌우한다. 용돈 금액, 핸드폰 사용 시간까지 결정되기도 한다.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늘 긴장해야 한다. 편하게 쉴 수 있는 내 공간도 없이 규칙 안에 자신을 맞추면서 살아야 하는 곳이 시설이다.”

9월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사무실에 아동탈시설연구모임 활동가 5명이 모였다. 사단법인 두루의 강정은·마한얼 변호사, 김희진 전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변호사), 김시연·정찬송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다. 아동탈시설연구모임은 보호아동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아동 탈시설 운동의 구심점이 되고자 학자와 연구자, 법률가, 현장 활동가가 머리를 맞대 지난해 출범한 모임이다.

9월21일 대담을 진행한 아동탈시설연구모임 활동가들. 정찬송 활동가, 강정은 변호사, 김희진 전 사무국장, 김시연 활동가, 마한얼 변호사(왼쪽부터). ⓒ시사IN 신선영

“돌봄이 어렵다는 이유로 입소 거부”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내년 하반기까지 ‘보호아동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명시했다. 이전 정부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국정 계획이다. 정부가 ‘보호아동 탈시설 로드맵 계획’을 명문화한 원년으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지금, 아동탈시설연구모임과 함께 시설 중심의 아동보호체계 실태 및 과제를 짚었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아동복지시설 현황에 따르면, 2020년 12월31일 기준 총 274개 시설이 운영 중이다. 지난 4월 보호아동 탈시설 로드맵 마련을 명시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이행계획서가 공개되자 시설 단체들은 “탈시설은 시설 아동들을 길거리에 내모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시설이 없어지면 보호대상아동들은 자신을 학대한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길거리를 헤매게 될 거라는 주장이다.

김시연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는 ‘가정 밖 아동이 갈 수 있는 곳은 시설 아니면 거리밖에 없다’ ‘위험이 도사리는 거리보다 시설이 낫다’는 생각에 물음을 던졌다. “우리가 아동·청소년의 시설 밖 삶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건 현재의 아동보호체계가 시설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의 인권이 보장되는 ‘집다운 집’이 무엇인지 사회가 상상하고,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아동보호 체계가 시설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 보호대상아동들은 시설을 만기 퇴소해야 자립정착금을 받을 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설을 중도 퇴소하거나 시설이 아닌 대안적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들도 있는데, 대부분 정부의 자립지원 서비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김시연 활동가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라는 점은 같지만 ‘시설’을 기준으로 한 보호 체계 탓에 사각지대가 생기는 거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도입된 즉각분리제도 역시 시설 중심의 해법이다. 즉각분리는 2020년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한 이후 생긴 제도로,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아동을 현장에서 즉시 분리할 수 있다. 그런데 가해자는 집에 남고 피해자인 아동이 대부분 시설로 옮겨진다. ‘왜 피해자가 시설로 가야 하느냐’는 아동의 목소리는 ‘보호’라는 명분에 가려 묻히기 쉽다.

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9월13일 충남 아산시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지금의 시설이 아동보호라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2021년까지 시설 입소를 거부당한 아동들을 지원하며 많은 사례를 접해왔다. 정찬송 활동가는 “효율적인 시설 운영을 이유로 정작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이 입소를 거부당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입소 거부 사례는 다양하고 흔하다. 자해를 한 적이 있어서, 이미 검정고시를 치러 다른 보호대상아동들처럼 학교를 다니지 않기 때문에, 몸이 허약하니까, 성소수자라서 거부당한다. 학대 피해 아동, 성폭력 혹은 성착취 피해 아동들도 입소가 쉽지 않다. 상처가 있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는 거다.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이 정작 ‘보호’를 명분으로 한 시설에서는 관리하기 어려운 ‘문제아동’으로 취급받는다.”

김희진 전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시설의 입소 거부가 공적 아동보호 시스템의 빈틈이라고 지적했다. “법과 지침에 따라 아동의 보호조치는 지자체장이 결정한다. 공공의 아동보호 업무를 위임받은 시설은 지자체의 배치 결정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돌봄이 어렵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아동보호의 구심점이 여전히 지자체가 아니라는 실태를 보여준다.” ‘사고 칠 수도 있다’는 낙인과 편견으로 집에도, 생활시설에도 갈 수 없게 된 이들은 단기간만 머물 수 있는 청소년 쉼터를 떠돌거나, 거리로 내몰려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시설 밖 보호대상아동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 내몰린다고 해서 대형 양육시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마한얼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강조했다. “오히려 기존 양육시설이 아닌 보호아동의 상황과 욕구에 맞는 다양한 주거 형태, 대안적 양육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주거공간을 전문화·소규모화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희진 전 사무국장은 집단생활을 하는 대형 양육시설은 아동의 건강한 성장에 이로운 환경이 아니라고 말했다. “폭발적으로 자라나는 영유아 시기에는 끊임없이 양육자와 소통하고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며 자아와 사회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시설에서는 상호작용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먹고, 자고, 사고만 없으면 한국 사회가 보호대상아동들을 충분히 보살피고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한 ‘보호대상아동의 특성 및 정책 환경 변화에 따른 아동복지시설 기능 전환의 방향성’ 자료에 따르면 아동복지시설 아동의 69.9%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학습장애, 분노조절장애, 말더듬 등의 증상을 보이는 걸로 나타났다.

보호대상아동 3명 중 2명은 시설 생활

아동 탈시설은 국제사회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사안으로, 이미 많은 국가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2018년 기준, 영국의 보호대상아동 10명 중 8명은 시설이 아닌 가정위탁, 원가정 복귀, 입양 등으로 자신의 집을 찾았다. 시설에 머무르는 보호대상아동이라 해도 1~2년 안에 가정을 찾을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아동 탈시설이 거의 완벽하게 실현됐다고 평가받는 스웨덴은 보호대상아동을 친인척 위탁, 가정 위탁 또는 전문 직원이 있는 가정형 양육 환경에서 최대한 보호한다. 또한 아동을 위한 모든 시설은 5명 이하의 소규모 그룹홈으로 이뤄진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게 보호대상아동 중 아동복지시설에 배치된 아동이 가장 많은 국가다. 하지만 2016년 아동복지법을 개정한 뒤 시설 보호를 크게 줄이려는 계획을 세웠고, 특히 의식주를 지원하는 ‘단순 보호’를 넘어 아동들의 상처를 치유하며,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생활 경험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아동보호 현실은 수년간 제자리걸음이다. 2022년 5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1년 보호대상아동 3657명 중 2308명(63.1%), 즉 3명 중 2명이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했다(〈그림 2〉 참조). 문재인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2019)’과 ‘제2차 아동정책 기본계획(2020)’을 통해 보호아동의 ‘가정형 보호’ 확대와 ‘원가정 복귀’ 촉진을 선언했다. 하지만 아동복지시설 입소 인원은 2017년 2421명에서 2021년 2308명으로 소폭 감소에 그친 반면, 가정 보호 아동은 1704명에서 1349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시사IN 최예린

그렇다면 탈시설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현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탈시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두 가지 방안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시설 입소를 원천적으로 예방하는 것이다. 아동이 가족으로부터 분리되는 상황 자체를 예방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강조된다. 2021년 보호대상아동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전체 보호 대상 원인의 30% 이상이 부모의 이혼과 질병·빈곤·실직, 미혼 부모, 혼외자 등 경제적·사회문화적 이유다(〈그림 1〉 참조). 가족 기능을 강화하는 공적 지원을 통해 원가정과 분리되는 아동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시사IN 최예린

두 번째는 학대 등의 이유로 원가정과 분리되어야 하는 경우라도 아동·청소년이 안전하게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집다운 집’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재 장애인과 노숙인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지원주택’ 모델을 고려해볼 수 있다. 주거지원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살림과 금전 관리, 심리 지원 등 다양한 생활 지원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받는 방식이다.

강정은 변호사는 ‘시설 아동의 수’를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시설보호아동의 인권은 한국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한 해에 유입되는 신규 보호대상아동이 3000여 명 수준이다(2021년 기준 3657명). 3000명이면 자원을 투자해 우리가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자.”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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