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과학기술 공약, 허공에 사라졌다

2022. 10. 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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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 중심에 두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과학기술 정책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 직속 민관 과학기술혁신위원회 신설과 과학기술인의 정부부처 고위직 중용 등 파격적인 약속도 내놨다. 무엇보다 전 정부가 '탈원전'이라는 과학적 영역을 정치화한 우(愚)를 범하지 않고, 정치와 과학을 철저히 분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연구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예산, 조직, 인력 등 연구기관 운영에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대하겠다는 소신도 밝혔다.

당시 윤 후보의 이런 발언과 공약에 과학기술계는 "파격적이다" "신선하다" "이제야 뭔가 바뀌겠구나" 등 기대 섞인 반응으로 화답했다. 이후 윤 후보는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새 정부 출범 5개월이 지났다. 후보 시절 약속과 소신에는 변함이 없을까.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은 전 정부와 비교해 뭐가 달라졌을까.

돌이켜 보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거의 전무하다.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과학기술 공약은 아직 출발선에서 출발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야심차게 제시했던 과학기술 거버넌스도 문재인 정부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이 그대로다.

그렇다고 국정 운영 중심에 과학기술을 두고 있는지 눈을 씻고 봐도 그렇지 않아 보인다. 국회에서도 눈에 보이는 건 여야 간 정쟁 뿐이다. 서로 비난하고 헐뜯고, 대립하는 국회의 민낯을 마주하는 국민들의 스트레스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갈아 치울 정도다. 그것도 모자라 경제, 안보, 외교, 민생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들을 전 정부와 현 정부 탓으로 '폭탄 돌리기'에 바쁜 상황이다.

대통령이 직접 과학기술을 챙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던 대통령 직속 민간 과학기술혁신위원회 설치는 '공약(公約)'에서 '공약(空約)'이 돼 버리는 듯싶다. 과학기술계가 그토록 요구했던 대통령실 과학기술 수석 격상은 '작은 정부' 지향을 이유로 과학기술 비서관으로 쪼그라들었다. 과학기술 비서관마저 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존재감이 없고,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엔 버거워 보이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그나마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와 달 궤도선 '다누리'의 잇단 발사 성공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과 지원이 다시금 커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우주경제시대를 열겠다는 공언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우리 손으로 우주발사체 자력 발사와 달탐사 시대를 이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자들에게 커피차와 격려방문으로 화답했고, 곧이어 연구자의 낮은 임금 등 처우 문제가 불거지자 억지 춘향격으로 42억원의 1회성 성과급 지급으로 입막음하려 했다.

공약이었던 항공우주청 역시 '우주항공청'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실체 없이 수면 아래에 있다가 최근 설립 추진단 구성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됐지만 준비 부족으로 정작 정부조직 개편안에 빠져 당분간 추동력을 얻지 못하게 됐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연구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라 과학기술 분야 연구기관도 일반 공기업, 공공기관과 동일하게 인력, 조직, 예산, 복지 등을 줄이도록 압박을 받았다. 일부 연구기관들은 연구장비와 설비 등을 팔아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계획안을 정부에 내기도 했다.

공공기관 혁신이라는 명분 아래 과학기술 연구기관이 사실상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거 아니냐는 우려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요국들이 기술패권 경쟁과 기술 안보 강화를 위해 국가 과학기술 자원과 인력, 역량 등을 확충하고 총결집하는 것과는 정반대 모습을 보여준다.

국회에서도 과학기술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지난 18일 국회 과방위는 53개 과학기술 분야 기관을 한꺼번에 불러 놓고, 반나절 만에 '초스피드 국감'을 지난해에 이어 2년째 지속했다. 수박 겉핥기 국감, 맹탕 국감, 졸속 국감 등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버젓이 자행된 것이다. 이마저도 오전 내내 '카카오 국감'으로 진행됐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대통령이 먼저 과학기술에 손을 내밀고 행동하면 된다. 과학기술이 사라지면 그 나라는 영영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의 시그널을 윤석열 정부는 하루 빨리 감지해야 할 것 같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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