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여행은 지독한 슬픔…아무 신비도 없었다, 신비는 지구였다”

곽노필 2022. 10. 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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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살 노배우 준궤도여행 체험 담은 에세이집 출간
“차가운 우주와 온기 뿜는 지구의 대비…압도적 슬픔
거친 우주에서 생명 보호해준 허약한 오아시스, 지구”
올해 91세인 할리우드의 노배우 윌리엄 샤트너가 지난해 10월13일 블루오리진의 뉴셰퍼드를 타고 고도 100km의 우주경계선에 올라 지구를 조망하고 있다. 블루오리진 제공

“사납도록 차가운 우주와 저 아래 온기를 뿜어내는 지구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며 나는 압도적인 슬픔에 잠겼다.”

지난해 90살의 고령으로 생애 처음 준궤도 우주여행을 했던 할리우드의 원로배우 겸 작가 윌리엄 샤트너가 당시의 체험담을 기록한 에세이집 ‘대담하게 가라 : 경이롭고 경외스러운 삶에 대한 반추’(Boldly Go: Reflections on a Life of Awe and Wonder)를 최근 펴냈다.

1960년대 미국 인기 드라마 ‘스타트렉’에서 우주함대 USS엔터프라이즈호의 선장역을 맡았던 그는 어린 시절 ‘스타트렉’ 열혈팬이었던 제프 베이조스의 초청으로 지난해 10월13일 블루오리진이 마련한 준궤도 우주여행을 다녀왔다.

준궤도 여행은 고도 100km 남짓한 우주경계선까지 올라가 3~4분간 무중력을 체험하면서 우주와 지구를 조망하고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출발에서 돌아오기까지 불과 10분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에 펴낸 책에서 그는 ‘왕복 10분’이라는 극히 짧은 우주여행에서 느낀 심리

적 경험을 다채롭게 풀어냈다.

윌리엄 샤트너(오른쪽 두번째)와 일행이 준궤도 우주여행 중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블루오리진 제공

“축하 행사가 아닌 고별식 같았다”

미국의 연예잡지 ‘버라이어티’가 발췌해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우주경계선에 다다라 다른 승객들이 공중제비를 하며 무중력을 즐기는 사이, 곧바로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자신이 타고 온 우주선이 지구를 둘러싼 푸른빛의 산소층에 뚫어버린 구멍이었다. 그는 “그것은 마치 우리가 방금까지 있었던 자리에 남겨진 흔적 같았으며, 곧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윌리엄 샤트너가 펴낸 에세이집 표지

그는 이어 고개를 돌려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순간 그는 오랫동안 품어온 우주의 신비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마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우주를 응시했을 때 거기엔 아무런 신비도 없었다. 경외감을 갖고 바라봐야 할 장엄함도 없었다…내가 본 모든 것은 죽음이었다.”

그는 시를 읊조리듯 이 순간의 감정을 풀어헤쳤다.

“내가 본 것은 차갑고 어둡고 검은 공허였다. 그것은 지구에서 보거나 느낄 수 있는 암흑과는 전혀 달랐다. 깊숙이, 모든 걸 덮어버리고, 사방을 에워쌌다. 나는 지구의 빛을 향해 돌아섰다. 둥그런 지구의 곡면과 베이지색 사막, 흰색 구름과 파란색 하늘이 보였다. 그건 생명이었다. 양육하고 보듬어주는 생명. 어머니 지구. 가이아.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내버려 둔 채 떠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그리고 보기를 기대했던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고 말했다. 대신 이번 여행을 통해 지구와 자신의 연결은 훨씬 더 깊어졌다고 덧붙였다. 우주로 가면 자신이 찾던 모든 살아있는 것들 사이의 연결에 대한 궁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우주의 조화를 이해하는 아름다운 다음 단계로 올라서게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름다움은 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함께 이 아래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우주의 경험을 ‘슬픔’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내 생애에서 가장 지독한 슬픔이었다. 사납도록 차가운 우주와 저 아래 온기를 뿜어내는 지구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며 나는 압도적인 슬픔에 잠겼다. 우리는 매일 우리 손에 의해 지구가 더 파괴된다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 50억년에 걸쳐 진화한 동물종, 식물종의 멸종을… 그리고 인류의 개입으로 갑자기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나는 우주 여행이 축하행사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론 고별식처럼 느껴졌다.”

고도 400km의 국제우주정거장 조망창에서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주비행사.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지구를 조망하며 가치관 변화를 경험

샤트너가 느낀 복잡다단한 감정은 그동안 우주비행사들이 토로한 이른바 ‘조망효과’ 현상이다.

조망효과란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서 지구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취약성을 느낀 뒤 일어나는 가치관의 변화를 말한다.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비롯해 많은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를 다녀온 뒤 가치관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토로했다.

지난 2020년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닉 카나스 교수(정신과)는 우주비행사 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이 우주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 지구에 대한 인식에서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내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그들에게 지구는 소중히 다뤄야 할 아름답고 허약한 대상으로 비쳤다”며 “이런 인식의 변화는 응답자들이 지구로 돌아온 후 환경 문제에 관여하게 된 것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1968년 아폴로 8호 우주비행사들이 달 상공에서 찍은 지구 사진.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조망효과의 진정한 가치는?

조망효과란 용어는 1987년 미국의 작가 프랭크 화이트(Frank White)가 펴낸 ‘조망효과 : 우주 탐사와 인간 진화’(Overview Effect: Space Exploration and Human Evolution)에서 처음 등장했다.

화이트는 우주비행사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저술한 이 책에서 “지상에 있는 우리를 갈라놓는 모든 관념과 개념은 궤도와 달에서는 희미해진다. 그 결과는 세계관의 전환, 그리고 정체성의 전환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주에 머무는 사람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경험하지 못한 것, 즉 지구가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걸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시스템의 일부다.”라고 말한다(플래니터리 컬렉티브 제작 비디오 ‘조망’).

나사 우주비행사 출신의 론 개런도 샤트너와 비슷한 조망효과 경험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2015년 펴낸 ‘궤도 관점’(The Orbital Perspective)이란 책에서 2008년 국제우주정거장에 체류할 당시의 감정적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우주정거장의) 꼭대기에 오르자 시간이 멈춰 선 것 같았다. 강렬한 감정과 깨달음이 충만했다. 그러나 거친 우주로부터 모든 생명체를 보호해준 놀랍고도 허약한 오아시스 같은 지구를 내려다보자 슬픔이 밀려왔다.”

그가 느낀 슬픔의 실체는 지구의 불평등이었다. 그는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광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파라다이스 같은 지구에는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조망 효과의 진정한 가치는 지구의 아름다움이나 지구의 현실에 대한 슬픔보다는 지구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데 있다. 샤트너는 책에서 “조망효과는 지구를 바라보는 태도뿐 아니라 국가, 민족, 종교를 바라보는 태도도 바꿀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우리는 지구에, 그리고 서로에게, 우리 모두의 삶과 사랑에 다시 헌신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짧은 우주여행에서 강렬한 충격을 받은 데는 오랜 기간 지구 환경에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낸 이력이 큰 몫을 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960년대 ‘스타트렉’에 출연하고 있을 당시 읽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환경 문제에 관한 인식을 일깨운 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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