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기계제품과 미술작품의 경계는

2022. 10. 1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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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국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사람이 어렵게 여기는 일을 기계는 쉽게 하고, 사람에게 쉬운 일이 기계가 하기엔 어렵다고 지적했다.

'초콜릿 분쇄기(No.1)'는 원기둥 세개가 맞물려 움직이는 단순한 기계인데 뒤샹은 이것을 마치 미술가의 초상처럼 화면 가득히 그렸다.

급기야 기계가 활동하는 세상에서 미술품은 굳이 사람 손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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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초콜릿 분쇄기(No.1)’, 1913년, 캔버스에 유화, 61.964.5㎝ 이미지 제공=Association Marcel Duchamp

1970년대 미국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사람이 어렵게 여기는 일을 기계는 쉽게 하고, 사람에게 쉬운 일이 기계가 하기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를 ‘모라벡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가령 기계는 사람에게 골치 아픈 수학적 계산을 순식간에 해내지만, 사람이 잘하는 상상에는 서투른 편이다. 모라벡의 역설은 가장 인간다운 능력이란 느끼고 표현하는 예술적 창조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드디어 인간의 지능을 기계에 구현한 인공지능(AI)이 예술가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9월3일, 미국 콜로라도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게임기획자인 제이슨 앨런이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로 만든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디지털 예술 부문에서 1위를 수상한 것이 좋은 예다.

만약에 출품할 사람이 그림에 문외한이더라도 핵심어를 몇개만 입력하고 기계 속 소프트웨어를 작동하면 인공지능이 대신 이미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는 지금까지 수많은 미술작품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에 의존해 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져 이를 표절이라고 간주해야 할지 판단 기준이 모호한데, 그 이유는 인공지능을 거친 이미지를 어떻게 이해할지를 먼저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기준에서 이것은 미술품이라 부르고, 저것은 그냥 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놀랍게도 이미 백년여 전에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1887∼1968년)이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구한 바 있다. ‘초콜릿 분쇄기(No.1)’는 원기둥 세개가 맞물려 움직이는 단순한 기계인데 뒤샹은 이것을 마치 미술가의 초상처럼 화면 가득히 그렸다.

그는 초콜릿 덩어리를 갈아내는 분쇄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기계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다. 급기야 기계가 활동하는 세상에서 미술품은 굳이 사람 손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뒤샹 이전에는 미술에 재능이 있고 오랜 기간 숙달된 사람이 고민을 거듭하고 열정을 쏟아내 창조한 원본이라야 미술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뒤샹은 미술가가 직접 그리지 않아도 본인 아이디어가 깃들어 있으면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성 제품 중에서 안목 있게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 자체를 미술 행위로 여기기도 했다. 그 생각대로라면 인공지능이 생산한 여러 이미지 가운데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 만든 생산품도 미술품 성립 조건을 만족한다. 아직은 쉽게 인정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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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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