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토사구팽’이 욕이라고?
정치 관련 뉴스에는 사자성어가 간혹 등장한다. 최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린 ‘지록위마(指鹿爲馬)’ ‘삼인성호(三人成虎)’ 같은 말들을 보면, 사자성어는 무언가에 빗대어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기에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간혹 비유를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양두구육(羊頭狗肉)’을 놓고 ‘어떻게 대통령을 개고기에 비유하느냐’는 논란이 벌어진 경우다. 원래 중국 전국책(戰國策)에는 소머리[牛首]를 걸어두고 말고기[馬肉]을 파는 고사가 나와 있는데, 후대에 소머리가 양머리로, 말고기가 개고기로 변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도 사자성어 때문에 봉변을 당한 경우를 알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기업의 계약 협상을 자문해 준 적이 있는데, 한창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 상대방 대표가 크게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어쩌다 그리 되었냐고 묻자, 의뢰인은 황당해하며 “제가 그쪽에 막말을 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무슨 막말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상대방은 협상 막판에 계속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의뢰인 입장에선 요구를 그대로 따라주다가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런 식이면 토사구팽(兎死狗烹) 아닙니까”라고 했단다. 장기간 업무 협상을 진행하면서 쉽게 구하기 힘든 수많은 관련 자료를 제공해줬고, 협업을 전제로 조언도 많이 했는데 이제 와 무리하게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상대방이 야속해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이냐’는 뜻을 전하고자 한 말인데, 협상 상대방은 이내 얼굴이 붉어지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것. 당시로선 상대방 대표가 미국 유학파라 사자성어에 약했고, 하필 ‘팽’이라는 발음의 한자어가 욕설 비슷한 어감을 주지 않았을까 추정만 했을 뿐이다(뒤에 밝혀진 바로는 실제 그랬다고 한다). 이후 사자성어를 쓸 때는 상대방을 잘 파악한 뒤 쓰려고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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