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미생물 먹이가 된 플라스틱 쓰레기
동방 정복에 나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서 제우스 신전 기둥에 밧줄로 묶여있는 전차를 마주한다. 이 도시를 건설한 왕 고르디우스가 바친 것으로 그는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사람들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어떻게 해서든지 풀어보려고 했지만, 워낙 꽉 묶어놔서 요지부동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뒤로 물러서더니 칼을 휘둘러 매듭을 잘라냈다.
그 뒤 해결이 안 될 것 같은 난제를 마주했을 때는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며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난주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을 읽으며 이 문구가 떠올랐다. 플라스틱 재활용 과정에서 골치 아픈 문제를 화학과 미생물학 기술을 조합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는 내용이다.
○ 분리하는 게 일
사용량을 줄이고 여러 번 쓰고 재활용하라(reduce, reuse, recycle).
오늘날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 사태를 맞아 인류가 실천해야 할 세 가지 행동이다(‘3R 운동’으로 불린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히려 플라스틱 사용량이 늘어났고 한번 쓰고 버리는 비율도 오히려 늘어났다. 최근 코로나19가 독감화되면서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규제가 다시 시작되고 있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결국 재활용이 문제인데 쓰레기 분리수거로 플라스틱을 따로 배출하더라도 이걸 또 종류별로 분리해야 재활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생수병인 페트(PET) 플라스틱을 따로 모아 버리면 약간의 보상금을 주는 장치가 설치돼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회수한 플라스틱은 여러 종류가 섞여 있어 재활용 비율이 14%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가 주축이 된 미국 공동연구자들은 혼합 플라스틱 쓰레기 재활용이라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기 위해 종류별 분리라는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화학반응으로 고분자인 플라스틱을 단위체로 잘라낸 뒤(물론 단위체도 혼합물 상태다) 이걸 먹이로 삼는 미생물에게 주면 미생물이 대사 과정을 통해 특정한 물질로 바꿔 토해내고 이를 분리해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드는 재료로 쓴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오늘날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 종류인 폴리에틸린(PE, 전체 생산량의 34%)과 페트(12%), 폴리스티렌(8%) 혼합물을 모두 분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코발트와 망간 아세테이트를 촉매로 쓰는 자기산화 반응을 택했다. 폴리에틸렌은 우리가 ‘비닐’이라는 콩글리시로 쓰는 플라스틱 필름을 만드는데 널리 쓰인다. 폴리스티렌은 스티로폼이라는 상표명으로 불리는 발포성 플라스틱이 주된 용도다.
이 반응에서는 이들 플라스틱이 먼저 반응성이 큰 라디칼 상태가 된 뒤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해 유기산으로 바뀌며 고분자가 해체된다. 폴리에틸렌에서는 다이카복실산이, 폴리스티렌에서는 벤조산이, 페트에서는 테레프탈산이 만들어진다. 이들 유기산은 배양액에 녹기 때문에 손쉽게 미생물의 먹이가 될 수 있다.
다음 작업에 투입된 미생물은 토양 박테리아인 수도모나스 푸디다(Pseudomonas putida)로 유기산 혼합물을 먹고 특정한 분자를 만들어내도록 게놈에 손을 대 대사경로를 조절한 상태다. 실험에 쓰인 두 균주 가운데 하나인 AW304 유기산 혼합물을 먹고 베타-케토아디페이트라는 분자를 만든다. 베타-케토아디페이트은 헥사메틸디아민과 반응시켜 나일론과 물성이 비슷한 폴리아마이드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
또 다른 균주인 AW162는 같은 먹이를 먹고 폴리히드록시알카노에이트(PHA)라는 일종의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들어낸다. PHA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쓰일 수 있다. 실제 PHA의 하나인 PHB는 이미 1982년 상업 생산이 시작됐고 비닐(플라스틱 필름) 등 일부 제품에서 폴리에틸린을 대신해 쓰이고 있다. 플라스틱 혼합물 쓰레기가 두 단계를 거쳐 하나의 화합물로 바뀌어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될 수 있게 된 것이다.
○ 상용화까지는 먼 길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해 알렉산드로스는 매듭을 푼 게 아니라 끊었기 때문에, 예언의 효과도 얼마 가지 못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 제국은 칼질로 끊어진 밧줄처럼 여러 나라로 쪼개졌다. 복잡한 일을 쉽게 처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해결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연구 결과 역시 지금 수준에서는 두 번째 의미에서의 고르디우스의 매듭에도 해당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직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단계로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플라스틱이 섞여 있는 상태에서 반응을 하므로 아무래도 셋 모두에게 최적의 조건이 될 수 없다. 그 결과 유기산 수율이 폴리스티렌과 페트는 60%이고 폴리에틸렌은 20%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율을 좀 더 높일 수 있는 반응 조건을 찾아야 상업성이 있다.
한편 플라스틱 쓰레기에는 위의 세 종류와 함께 폴리프로필렌과 PVC 등 다른 종류도 섞여 있으므로 이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반응 조건을 찾는 연구도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경제성을 높이려면 생산물인 유기산을 그때그때 제거하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다시 투입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연속 반응 공정을 구축해야 한다.
미생물이 유기산 혼합물을 먹고 만드는 분자로 만들 수 있는 재활용 플라스틱 종류가 쓰레기인 원료 플라스틱보다 쓰임새가 적다는 것도 문제다. 반응 효율을 높여 상용화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재활용 플라스틱을 쓸 데가 없다면 가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좀 더 쓸모있는 재활용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는 미생물을 찾거나 대사회로를 재설계하는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이 보여줬듯이 상황이 절박하다고 느끼면 인류는 놀라운 실행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지구촌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역시 코로나19 수준의 위기의식으로 대한다면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놀라운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실제 최근 수년 사이 이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고 이번 연구 역시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런 과학자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우리 역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가능한 여러 번 쓰는 습관을 들여 내보내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생활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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