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재무장관, 감세안 대부분 폐기..'양상추 총리' 트러스 위기

김혜리 기자 2022. 10. 1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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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장관이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경제정책을 대부분 폐기하면서 트러스 총리의 입지가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트러스 총리는 본인의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자리를 지킬 것이라 강조했지만 조기 퇴진 압박은 계속 커지는 상황이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헌트 장관은 17일(현지시간)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을 대부분 되돌릴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트러스 내각은 최저 소득세율을 20%에서 19%로 낮추는 시기를 1년 앞당기고, 표준 가구 에너지 요금을 2년간 연 2500파운드(약 400만원)로 제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헌트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소득세율 인하를 취소하고 에너지 요금 지원을 내년 4월까지만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당세율 인하, 관광객 면세, 주세 동결 계획도 뒤집었다. 헌트 장관은 지금까지 취소된 감세안 규모가 연 320억파운드(약 51조7000억원)라고 설명했다.

이날 개정된 정책이 공개되면서 영국 국채 가격은 상승했다. 파운드화는 장중 최고 1.4%까지 오르며 1파운드당 1.13달러 수준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이미 대대적인 전환을 겪은 트러스 총리의 정책이 추후 더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헌트 장관은 이날 오후 의회에서 경제 자문위원회를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로 확대하겠다는 총리의 계획에 대해선 확답하지 않았고, 막대한 이익을 거둔 에너지 기업을 상대로 횡재세를 걷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레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장관이 17일(현지시간) 영국 의회에서 경제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옆에 있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의원들이 토론하는 시간에는 배석하지 않다가 헌트 장관이 발언을 시작하고 나서야 의회에 도착해 착석했다. AFP연합뉴스

트러스 총리의 핵심 정책인 감세안이 줄줄이 폐기되면서 그가 총리직을 지킬 명분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당에선 이날 총리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의원이 2명 늘어나 총 5명이 됐다. 보수당 경선을 주관하는 1922 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래디 위원장에게 트러스 총리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요청하는 의원들의 서한도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위원회 소속 의원은 위원회가 이번 주에 총리가 취임한 지 1년 내로 불신임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바꾸거나, 총리에게 “이제 끝났다”며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트러스 총리의 평판과 권위가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날 트러스 총리는 의원들이 토론하는 시간에는 배석하지 않다가 헌트 장관이 발언을 시작하고 나서야 의회에 도착해 착석했다. 이에 야당인 노동당 측에선 그가 왜 직접 정책 실패를 설명하지 않느냐며 비판이 쇄도했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총리가 “본인이 드리운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있다”면서 그가 문제를 피해 숨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 의원이 “총리가 책상 밑에 숨어서 문제가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냐”고 조롱했다.

일각에선 그를 두고 ‘허울만 남은 총리(Prime Minister In Name Only·PINO)’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데일리스타’는 트러스 총리와 유통기한 열흘짜리인 양상추 중 어느 쪽이 더 오래 갈 것 같냐는 여론조사까지 했다.

하지만 트러스 총리는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실책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다음 총선 때 보수당을 이끌겠다는 결심엔 변함이 없다”며 사임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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