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앞에 수천개 일회용 컵이?
수천 개의 일회용컵이 땅바닥에 흩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탈을 쓴 사람이 든 손팻말에는 “일회용컵 완전 좋아 이 좋은 걸 왜 안 써”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로고를 단 사람들이 든 종이상자에도 “일회용컵으로 돈 벌어야지, 쓰레기는 가맹점이 알아서 해”라고 쓰여있었다.
서울환경연합,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 등 환경단체와 알맹상점 등 제로웨이스트 가게,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등 80여개 시민단체는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지역을 축소한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 단체들은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전국에서 시행할 것을 명문화하라고 요구했다.
환경부는 지난 6월 10일 시행 예정이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오는 12월 2일 시행하기로 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내용을 담은 자원재활용법 부칙에서 시행 시기를 정해뒀음에도 법을 어기고 제도 시행을 유예한 셈이다. 이어 환경부는 지난달 23일 전국에서 동시에 시행 예정이던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대상 지역을 줄여 세종, 제주에서만 우선 시행하기로도 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행정가로서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용기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법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고 답했다.
환경단체들은 ‘시간이 촉박했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고장수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이사장은 “주어진 2년의 시간 동안 프랜차이즈 본사와만 소통하며 시간을 끌다가 한달 남겨둔 시점에서야 카페 사장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며 “제도 시행 유예 이후에도 마지막 회의에서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제주, 세종에서만 시행한다고 통보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환경부에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의지가 있냐’고 물었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지역을 확대할 건지, 전국 시행은 구체적으로 언제 할 건지, 컵 교차 반납은 어떻게 하겠다는지 계획을 발표해야 하는데 어느 것도 명확히 밝힌 바 없다”며 “정부가 국정과제로 정한 정책에서 퇴행에 퇴행을 반복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발행하는 MIT테크놀로지리뷰(Techonology Review)에서 탄소 배출, 에너지 전환, 녹색 사회, 기후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국가별 순위를 매긴 ‘녹색 미래 지수 2022’(Green Future Index 2022)를 보면 한국은 10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녹색 사회’ 분야로,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을 지난 6월 도입했다고 적혀 있다.
이날 회견에서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는 “해외에서 한국이 환경 제도에서 잘하고 있다는 판단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사실상 시행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몇 위로 떨어질지 의문”이라며 “한국이 문화적으로 세계에 영향을 주는 만큼 보증금 제도로도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단체들은 이날 지난 4개월간 시민 711명이 수거한 1만990개의 일회용컵 중 일부와, 지난 152일간 1만194명이 서명한 ‘쓰레기 줄이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지켜주세요’ 캠페인 결과를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이들은 “자원 재활용법 개정으로 전국 시행 일정을 명문화하고, 소비자와 소상인에게 모두 편리한 반환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촉구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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