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6·25 전쟁 최대 미스터리: 중 · 소 있는데 유엔군 참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북한이 도발을 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 결의안이 채택되기 어렵습니다.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중국, 러시아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50년, 소련은 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나?
결론부터 말하면, 소련이 안보리 회의에 불참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6.25 전쟁 최대 미스터리인 소련의 '안보리 거부권 행사 포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950년 6월 당시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 가운데 중국의 대표권은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공산당 정부가 아니라 중화민국, 지금의 타이완 정부에 있었습니다. 민주 진영이었던 만큼 중화민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리 없었고, 거부권 행사 여부의 관건은 소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은 한반도로의 유엔군 참전을 결정하는 이 중요한 안보리 회의에 불참했습니다. 중화민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대표권을 가지고 있는 것에 항의한다는 명분이었는데, 한반도로의 유엔군 참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소련이 살리지 않은 것은 '6.25 전쟁 최대의 미스터리'로 일컬어집니다.
명분에 얽매인 소련의 전략적 실수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오신 분은 지금은 고인이 된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입니다. 이세기 전 장관은 2015년 『6.25 전쟁과 중국: 스탈린의 마오쩌둥 제압전략』이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을 보면 왜 소련이 당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한반도로의 유엔군 참전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소련, 치밀한 계산 하에 안보리 불참
소련의 스탈린은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마오쩌둥의 중국이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미소의 양대 진영 속에서 사회주의권은 소련을 중심으로 위계가 형성돼야 하는데, 마오쩌둥이 소련의 큰 지원 없이 공산혁명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소련과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스탈린은 중국이 미국과 접근할 가능성도 우려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이 남침을 하겠다는 의사를 스탈린에게 전해옵니다. 스탈린은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지만, 마오쩌둥과 중소동맹조약 체결을 놓고 만만치 않은 협상을 이어가던 1950년 1월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합니다. 김일성이 전쟁의 불길을 당겨놓으면 미국과 중국이 참전하도록 유도해 미국과 중국의 힘을 빼고, 중국을 미국과 서방세계로부터 완전히 격리되게 함으로써 소련에 의존하도록 만들겠다는 계산이었다는 것이 이 전 장관의 주장입니다.
"우리는 네 가지 이유로 안보리에 불참했다. … (중략) … 넷째, 미국 정부가 안보리 다수결을 이용, '프리핸드(free hand)'를 갖고 어리석은 짓을 마음대로 저지르도록 함으로써"
"더구나 미국이 극동에 묶여 현재 유럽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이 같은 사실은 세계의 세력균형에서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는가? 의심할 바 없이 그렇다.
미국 정부가 극동에 계속 묶여 있고,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 중국을 끌어들인다고 가정해 보자. 이로부터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첫째, 미국은, 그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방대한 병력을 보유한 중국과 싸워 이길 수 없다. 미국은 이 투쟁에서 전선을 지나치게 넓히게 될 것이다.
둘째,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은 가까운 장래에는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은 연기될 것이고, 이는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강화하는 시간을 줄 것이며, 더구나 미국과 중국의 투쟁이 극동의 전 지역을 혁명화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에게 '프리핸드'를 주겠다는 문구에서 보듯, 스탈린은 한반도로의 유엔군 참전을 용인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미국이 극동에 묶여 유럽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스탈린은 중국군이 참전하기 전인 8월 27일의 비밀전문에서 이미 미국과 중국의 전쟁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볼 만합니다.
'스탈린 기획설' 뒷받침하는 김지성 특파원 보도
지난 16일 김지성 베이징 특파원이 보도한 내용도 이 전 장관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 [단독] "6.25 때 소련이 조기 참전한 건 중국 발목잡기")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934380&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
1950년 10월 11일 중국이 참전을 앞두고 소련에 공군 엄호를 요청했지만, 소련은 파병 준비에 두 달은 걸린다며 소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참전한 지 13일 만인 11월 1일 소련은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연이어 미군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언뜻 보면 북한과 중국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중국의 참전 사실을 공개해 중국이 전쟁에서 발을 빼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베이징대 연구원의 주장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은 참전 사실을 비밀로 한 채 미군과의 충돌도 피하는 중이었는데, 소련이 미군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임으로써 이를 중국 전투기로 오인한 미국이 중국의 참전을 기정사실화하게 됐고 중국도 결국 참전을 인정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당시 소련 전투기들은 자국 표식을 달지 않고 소련이 아닌 중국에서 출격했다고 합니다.
북중러, 끊임없는 갈등과 협력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구 소련)가 연합해 자유민주세계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두 나라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알력을 빚어왔습니다. 중러와 사회주의 블록을 이루고 있는 북한 또한 역사적으로 두 나라와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며 복잡다단한 관계를 가져왔습니다.
미중, 미러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북한은 북중, 북러 간의 우호관계를 강화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 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영구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우리의 국익을 증진시킬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안정식 북한전문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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