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는 누가 키우냐고? AI 로봇이
온·습도, 광량, 재배 간격까지 원격제어… 디지로그 서현권 대표
[주간경향] 네덜란드 와게닝겐대학은 세계적인 농업 연구 대학으로 꼽힌다. 그곳에서는 2018년 이후 2년 간격으로 ‘세계농업 인공지능(AI)대회’가 열린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모티브로 해 인공지능과 사람 농부 중 누가 더 농작물을 잘 키우는지를 겨루는 대회다. 첫 대회에서는 오이, 두 번째 대회에서는 방울토마토가 주제였다. 올해 6월 끝난 3회 대회에서는 상추 재배를 두고 인간과 인공지능이 대결을 벌였다. 세 대회에 모두 한국팀이 참가했는데 2020년 열린 2회 대회에 참가한 디지로그팀은 21개 팀 중 최종 3위에 오르며 역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다수의 팀원은 대회가 끝난 후 팀명을 사명으로 삼고, 창업했다. 지금은 자금 사정으로 잠시 중단했지만, 딸기 농가에서 농약을 뿌리고 수확까지 자동으로 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인공지능 기술을 고도화해 소규모 농가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농업용 로봇을 개발하는 일이다. 팀장에서 대표가 된 서현권 디지로그 대표를 지난 10월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만났다. 그는 “인공지능을 농업에 접목하면, 누구나 유능한 농부가 될 수 있다”면서 “이를 위해 농업과 정보통신(IT) 기술을 모두 잘 이해하는 인재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AI로 작물 생산성 상향 표준화 가능
서현권 대표는 미국과 한국, 네덜란드에서 농업 로봇과 인공지능을 연구·개발한 농업 공학 분야의 전문가다. 와게닝겐대학에서 농식품로봇그룹 연구원으로 일했고, 스스로 돌아다니며 잡초를 제거하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해충 모니터링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유럽연합(EU) 첨단농업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는 세종대학교 스마트생명산업융합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며 농업 인공지능 관련 연구와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세계농업 AI대회’는 서현권 대표를 비롯해 당시 와게닝겐대학에서 함께 연구하던 동료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바둑도 인공지능이 더 잘한다는데 작물을 키울 때도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걸 대회로 확인해보자는 취지였죠.” 대회 참가자들은 가상의 농장에서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데 누가 가장 우수한 결과를 내는지를 기준으로 본선 진출자를 뽑았다. 디지로그팀은 인공지능 전략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예선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에선 실제 방울토마토를 재배했다. 원격으로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재배한 참가팀과 토마토계의 ‘이세돌’이라 할 만한 숙련 농부가 재배한 결과를 비교했다. 참가팀은 처음 내부 상황을 파악할 센서와 카메라를 설치할 때 외엔 농장 출입이 금지된다. 디지로그팀도 이후 한국에 돌아와 6개월 동안 원격으로 온·습도, 광량, 이산화탄소 투입량, 재배 간격 등을 제어하면서 재배했다. 결과는 재배한 토마토를 시장에 팔았을 때의 이윤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2회 대회에선 사람 전문가팀이 꼴찌였다. 서 대표는 “중국팀과 우리팀은 모두 현업에서 일하고 있어서 이 대회에만 매달릴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이윤 측면에서 사람 전문가보다 더 높은 성과를 냈다”면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지금도 이미 더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고, 그 격차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대회는 중국 텐센트 그룹의 후원을 받지만, 우승 상금이 따로 있진 않다. 그럼에도 이 대회에는 매년 굴지의 AI 연구그룹이 참여한다. 올해 대회에서 우승한 ‘코알라’ 팀은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 연구소 출신의 연구자를 중심으로 꾸렸다. “이런 수준의 국제대회에 왜 상금이 없는지는 저도 의아하지만 이런 조건에도 많은 사람이 몰린 이유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가면 농업과 인공지능에 관한 전 세계 전문가들을 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업 분야의 세계 최고 대학인 와게닝겐대학이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의 브랜드 가치도 높게 봤을 겁니다. 전 세계적인 홍보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죠.”
이어령 선생이 선물한 이름 ‘디지로그’
인공지능을 이용한 원격 농업은 국내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디지로그팀의 일부가 따로 창업한 아이오크롭스라는 회사가 지난해 김해에서 원격 농업 시범사업을 했는데 성과가 좋아 올해 1만2000평 규모로 확대했다. “농사는 서울 사무실에 있는 우리가 대신 지어드릴 테니 ‘농민분들은 휴가를 떠나세요’라는 거죠. 농가 입장에선 손해 볼 게 별로 없습니다. 손해를 보면 회사가 메꾸고, 이윤이 남으면 공유하는 모델이기 때문이죠.”
서 대표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재배 전략의 자동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생산성의 상향 평준화가 나타나리라고 예상했다. 물론 농업은 아직 인공지능이나 로봇만으로 이뤄질 순 없다. 수확하거나 약을 뿌리고, 병든 잎을 잘라주는 작업은 여전히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서 대표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센서와 카메라가 24시간 식물을 모니터링하면서 식물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판단해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선 사람보다 더 우위에 있다”면서 “홍수가 났을 때도 우리는 한참 뒤에야 알지만, 센서로 이상을 감지하고 그에 맞게 대응할 수 있다면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로그는 소규모 농가의 손과 발이 돼줄 수 있는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테슬라의 알고리즘을 활용해 저렴한 센서로도 고도의 자율주행이 가능한 형태로 개발 중이다. 국내 최대 깻잎 생산지인 금산에서 깻잎 생산을 자동화하는 시범 사업도 하고 있다. 서 대표는 “센서와 카메라로 자동으로 작물의 상태를 판단하고, 농가의 이윤을 높일 수 있는 최적의 재배법을 농가에 제안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농업 알고리즘 개발은 농업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농업에 대한 도메인 지식이 있어야 좋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디지로그는 올해 초부터 농업인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교육을 시작했다. 소농이 많다는 특징을 공유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모여 농업 AI대회를 열어도 좋겠다고 그 자리에서 제안했다. 서 대표는 “네덜란드는 농업 AI대회 개최로 별 어려움 없이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면서 “동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이 중심이 돼 농업 AI대회를 연다면 농업 인공지능 기술을 국내에서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의 말대로 제1회 ‘스마트농업 AI경진대회’가 개막해 본선이 진행 중이다.
서 대표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작물 재배를 할 때 일어난 사고의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스마트 농장 해킹을 막을 대비책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인공지능이라는 디지털 기술과 농업이라는 아날로그 기술의 접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작고한 이어령 선생이 회사 이름을 ‘디지로그’라고 정해준 이유입니다. 선생은 태극 문양을 생명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차가운 기계 기술을 상징하는 파란색의 조화로 해석하셨습니다. 그런 조화를 농업에서 만들면 ‘우리나라가 농업 선진국이 될 수 있지 않겠냐’라고 하셨죠.”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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