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문화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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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말과 해방 후 사회상을 보여주는 '낙하산 블라우스(사진)' 등의 유물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7일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등 의복 관련 3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예고한다고 밝혔다.
'낙하산 블라우스'는 한국전쟁 직후 대구 피난시절 디자이너 최경자가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병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도 등록예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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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해방기 시대상 담겨"

문화재청은 17일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등 의복 관련 3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예고한다고 밝혔다.
‘낙하산 블라우스’는 한국전쟁 직후 대구 피난시절 디자이너 최경자가 만들었다. 최경자는 폐낙하산을 재활용해 블라우스를 만들어 팔다 인기를 얻자 수입 나일론 원사를 편물로 제직해 이 블라우스를 만들었다. 당시 사치품으로 분류돼 수입이 금지된 나일론 섬유가 여성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 시대상황과 편물 및 봉제 기술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라고 한다.
‘1960년대 신생활복’은 국민의 의복생활을 개선하고, 재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신생활복장’을 제정하고, 이를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전개한 국민재건운동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 또한 최경자가 디자인한 것으로, 당시 생활복식사 및 한복의 현대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정부가 제시한 신생활복의 표준안을 재해석해 저고리와 치마를 분리하지 않은 원피스형과, 저고리는 단추로 여미고 탈부착형 고름을 다는 등의 디자인을 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병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도 등록예고된다. 강제 징집되는 아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어머니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이는 한 조각 천에 천 명의 여성이 붉은 실로 한 땀씩 박아 천 개의 매듭을 만들어 무운 장구와 무사함을 빌며 출정 군인에게 주었던 당시 일본의 ‘천인침’ 풍습이 반영됐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일본 풍습이 일제강점기 말 징집되는 조선청년인 아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조끼를 제작하는 데 사용된 점은 국권침탈이 우리 문화의 깊숙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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